관계의 진실함과 그 안의 순수성
2023. 03. 04 ~ 2023. 04. 23
장소 :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제작사 : HJ 컬쳐
배우 : 정동화, 안재영, 동현, 이우종, 황민수, 정지우, 송영미, 정우연, 주다온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어린 왕자, 장미꽃, 여우 – 관계 형성과 순수성
4. 그림자 연출
5. 마치며
뮤지컬 <어린 왕자>는 널리 알려진 생택쥐베리의 작품인 어른 동화 <어린 왕자>가 원작이다. 오랜 명작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은 철학적이라 이해를 단번에 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어른 동화라 불릴 만큼 <어린 왕자>가 가지는 가치는 크고 이번 뮤지컬 <어린 왕자>는 그 기대를 충족하는 작품이었다.
뮤지컬 <어린 왕자>의 스토리는 원작 <어린 왕자>와 동일하다.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했다.
홀로 하늘을 비행하던 ‘나’는 사막에 추락하게 되고 그곳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고 양 그림과 장미꽃 에피소드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눈 뒤 자신의 별에 놔둔 장미꽃에게 되돌아가기 위해 다시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간다.
<어린 왕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보아뱀, 양, 장미, 여우일 것이다.
뮤지컬 <어린 왕자>도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매개체들을 잘 이용했고 이들이 의미하는 건 공통적으로 ‘순수성’이다. <어린 왕자>는 상대방과의 관계와 형성, 그리고 그것들로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막에 불시착 한 ‘나’ 앞에 한 어린 왕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어린 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여러 ‘양’을 그려주었지만, 어린 왕자는 전부 아니라며 부정했다. 결국 구멍 3개가 뚫린 상자를 그려준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 왕자는 만족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아이만의 넘치는 상상력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어린 왕자>는 변질된 어른들과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을 대조하고 있다. 어른들은 친구라 할지라도 친구의 경제 사정, 부모님 등 조건을 깐깐하게 따지지만, 어린이들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이 자신과 맞으면 친구가 된다. 친구가 어떤지, 좋은지 친구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보아뱀 속에 있는 코끼리를 보지 못한 어른과 그 안의 코끼리를 보는 아이처럼 순수한 어린 왕자가 그러하다. 그리고 그다음은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는 장미꽃과 여우다.
장미꽃은 어린 왕자와 많은 유대를 쌓은 존재다. 바람이 불어 유리돔을 씌워줬고, 목이 마를까 물을 주었다. 그러면서 장미꽃과 다투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쌓이고 쌓여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두고 행성을 떠난다. 이때 장미꽃과 어린 왕자는 미숙했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가시를 가져서 어린 왕자를 아프게 했다.
이 장미꽃은 후반부에 만나는 장미꽃들과는 다르다. 어린 왕자가 함께 지내면서 같이 시간을 보낸 장미꽃이라 많은 장미꽃들 중에서도 각별한 존재이다. 이 부분은 김춘수 시진의 <꽃>과 연결한다면 이해하기 한결 쉽다. 누군가에게 기억에 남는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장미꽃은 어린 왕자에게 이기적으로 굴었다. 이는 전혀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 그 이기심에 왕자는 상처받아 행성을 떠났었다. <어린 왕자>에서 왕자가 행성을 떠난 이유이면서, 다시 행성으로 돌아가는 이유이기에 장미꽃은 작품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행성의 한 송이 장미꽃과 어린 왕자를 통해 관계의 미숙함과 책임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나온 만큼 왕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설사 그 끝이 헤어짐이라 해도 관계를 정확하게 하는 것도 책임이다. 그것이 관계를 형성하고 가까이 지낸 사이에서 갖추어야 할 성숙함이다. 왕자도, 장미꽃도 모두 미숙했다. 그러나 이제 왕자는 책임감, 장미꽃은 소중함을 깨달았으니 둘은 달라졌을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 4시에 온다면 3시부터 기다려질 거라는 여우는 상대에게 다가감에 있어 지켜야 할 예의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 두근거림을 담고 있다. 아직은 가깝지 않은 상대와 거리를 좁히려면 천천히, 상대를 배려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여우는 왕자에게 가르침을 준다. 덕분에 왕자는 행성에 돌아가서 장미꽃과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도 어린 왕자처럼 순수함을 회복한다. ‘나’는 작가 생택쥐베리이면서 동시에 어린 왕자이다. 그래서 ‘나’가 비행 여행 중 사라졌지만 어쩌면 행성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순수성의 회복, 어린 왕자는 그렇게 전하고 있다.
제작사는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어린 왕자>의 이미지와 디자인을 연출에 사용했다. <어린 왕자>에 사용된 일러스트들은 작가 생택쥐베리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라 그 의미가 특별하다. 그래서 관객들은 어릴 때 읽었던 <어린 왕자>를 읽는 기분을 주어 거리감을 줄이면서 추억에 빠진다. 동시에 철학적인 내용의 <어린 왕자>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무엇보다 뮤지컬 <어린 왕자>에서 제일 도드라진 연출은 그림자를 이용한 연출법이었다. 작가의 일러스트를 이용하되, 검은 선과 몇으로 화려함보다는 간소함을 추구했다. 순수한 느낌이 더 와닿아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어린 왕자가 되어 행성으로 돌아갈 때의 연출은 특히 좋았다. 한 걸음 물러나 일부러 실체를 가려 검은 그림자처럼 보이게 화면 뒤로 넘어갔다. 대극장 작품이 아니어서 화려한 연출을 할 순 없으나 행성으로 떠나는 연출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익숙하고 대다수가 알고 있는 내용을 무대화하는 일에는 장점도 있겠지만 그에 따른 위험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HJ 제작사에서 올린 <어린 왕자>는 장점을 잘 취해 <어린 왕자>가 가지는 주제 의식을 잘 전달하였다.
어린 왕자는 깨달음을 얻고 한층 성숙해져 행성으로 돌아갔다. 다만, 어린 왕자는 선물을 남겼다. 책을 읽은 독자와 공연을 본 관객도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선물로 주고 행성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