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밈을 통해 세상의 불공평함을 받아들이는 법
2023.04.18 ~ 2023.06.11.
제작사 - 연극열전
공연장 - 예그린씨어터
배우 - 황한나, 정다희, 임진섭, 장윤석, 류찬열, 박새힘, 전혜주, 심수영, 정찬호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현대적 밈, 현대 기술
4. 마치며
모든 사람에게 시련이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시련에 좌절감을 느낄 때 자신의 출생에 대해 원망으로 원망하는 순간이 있다. 혹은 선천적으로 조금 더 타고났었다면, 더 잘나게 태어났었다면 아쉬움에 이런 만약을 가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신은 불공평해!’라며 절대자를 원망도 한다.
그만큼 인생이 불공평하니까
누군 죽을만큼 노력해도 안 되는 걸
누군 당연하게 타고나 고민도 안 해
내 인생 다 바친 주식은 자꾸만 떨어져
경제력 수명 외모 와르르 때려 넣어
다시 태어나게 해줘요
나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가
내 불행이 시작된 이런 빌어먹을 곳
- <신이 나를 만들 떄>
인간들을 창조하는 업무를 맡은 ‘신’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악상’에게 불행하기만 했던 자신의 삶을 보상해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사실 업무 중 실수로 ‘신’은 ‘악상’의 인생에 불행만 몰아줬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요절하게 된 ‘악상’은 불공평하다고 여겨 ‘신’에게 따지러 온 것이다. 한편 ‘악상’의 모든 좋은 점을 몰아받은 이가 있었고 그래서 그 사람이 죽어야 ‘악상’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악상은 과연 불행으로 가득했던 삶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신이 나를 만들 때>의 작품 기반은 ‘신이 나를 만들 때’라는 밈과 클라우드 시스템이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게임 캐릭터 생성과정을 생각하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신이 나를 만들 때’라는 밈은 창조주인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미모 한 스푼, 지능 조금...불행 으아악! 여러 재능을 제조하는 과정을 보여줬던 한때 유행했던 밈(meme) 이었다. 유행은 지났으나 공연을 보러온 대부분 관객은 알고 있던 밈이라 이해가 어렵지 않고 극의 분위기가 우울해지지 않도록 한다.
또 사후 세계를 클라우드 시스템에 도입해 새로운 세계관이지만 이해가 어렵지 않게 했다. 악상이나 호상과 같은 영혼들이 잘못을 지었을 때 파일 삭제, 하나의 영혼을 하나의 파일로 연결했다 (그래서 삭제 당하면 휴지통으로 가게되고 진짜 삭제도 있다)
클라우드 시스템이니 파일은 인간의 영혼에 대입할 수 있다. 육신과 영혼, 컴퓨터와 같은 기계는 인간으로 치면 육신이고 파일은 그것들을 작동하게 만드니 파일은 인간의 영혼이다. 인간의 육체나 영혼같은 설정은 이미 기존에 흔히 사용된 연출이라 지루할 수 있는데 현대 기술에 대입하니 새로운 포인트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악상의 부활 여부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대도 이런 세계관 설정을 잘 반영해 텔레비전을 여러 설치하였다. 덕분에 무대는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 아트를 연상케 하는데 이 모니터들은 단순 장식이 아니라 공연 중에 실제로 작동한다. 모니터는 현대 과학 발전으로 생겨난 대표적인 발명품이니 현대적 밈을 이용한 작품에 잘 어울리는 연출법이었다.
*인간을 만드는 신에게도 상관이 있다(!!!) 인간을 만드는 신도 중간 관리자인 셈인데 그래서 신도 잘못을 저지른 바람에 '뜬구름'형에 처하고 만다. 인간들의 직장 생활을 생각나게 한다. (작중 뜬구름은 개그 담당이다)
<신이 나를 만들 때>는 등장인물 호상이 락스타였던 만큼 중간에 관객이 참여하는 부분이 있다. 호상의 대표곡 ‘바이러스’를 같이 부르는 그 순간만큼은 호상은 옛날에 큰 인기를 구가하던 락스타가 되고 관객은 그의 팬이 된다. 팬은 그를 스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 때문에 즐거웠던 분위기는 호상이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과 대비되어 더 슬프게 다가온다.
악상은 극 후반에 이르면 정신적으로 성숙한다. 세상에 좋은 면만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아서다. 그리고 악상은 세상이 자신에게 나쁜 점만 몰아주는 불공평한 처사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기로 한다.
이런 악상의 태도가 <신이 나를 만들 때>가 전하고자 하는 말이다. 좋아 보이기만 한 타인의 삶에도 시련과 슬픔이 있고 세상은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도 있다. 세상은 어느 한쪽 면만 가질 수 없다.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의 시련을 준다는 말이 있다. 신이 반드시 시련을 준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건 힘든 시련이래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것엔 앞면과 뒷면이 있어
세상 모든 일엔 숨겨진 비밀이 있어
신이 너를 만들 때 넣은 것들에도 앞면과 뒷면이 있어
모두가 포기할때 포기하지 않는 오기
모두가 yes라 할때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
100번 부딪혀도 100번 달려가는 체력
변함없는 믿음
신이 너를 만들때 신이 나를 만들 때 넣은 것들에도 앞면과 뒷면이 있어
- <신이 나를 만들 때>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악상의 인생에 불행이 가득했던 것도 신이 의도적으로 만든게 아니라 실수였다. 조금 김빠질 수는 있는데 불행하고 행운이 가득한 건 누군가가 의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세상이 그렇다는 게 아닐까 싶다. 악상은 세상이 내가 바라는 걸 주지 않는다고 해도 생각한 대로 살아가 보는 것이 의미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며 유쾌하게 관객을 응원한다.
타인을 부러워만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타인은 타인, 나는 나이기 때문이며 타인의 인생은 타인의 것이지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 나를 만들 때>는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원하는 삶을 스스로 주도적으로 살아가자는 이야기다.
불공평한 건 어쩔 수 없다. 불공평도 세상의 일부분이니까. 하지만 어떻게 할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어차피 취소는 불가능하다. 환불도 불가능하다. 신에겐 인간을 만드는 과정이 인간이 파일 하나를 만드는 것처럼 간단하게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신에게 인생을 환불해달라고 요청하는 당당한 악상의 태도는 충분히 본받을만 하다. 그 당당함으로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주어진 것들이 예상을 빗나간 것들 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은 열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