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오이디푸스 마르틴이 걷는 정화의 여정
2024. 11.20 ~ 2024. 02. 09
쇼노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이석준, 정희태, 길은성, 김남희, 이주승, 손우현, 정택운, 강승호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성 마르틴, 모차르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오이디푸스
4. 연출
5. 안티고네 S와의 만남
6. 미아스마, 정화의 과정
7. 나오며
화제작 <테베랜드>를 다시 보았다. <테베랜드>는 존속 살해라는 무거운 주제와 배우 두 명이 3시간을 이끄는 많은 대사량과 많은 메타포를 포함한 작품으로 감동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작가 ‘S’는 존속 살인을 다루는 작품을 올리려 한다. 그래서 실제로 아버지를 살해한 ‘마르틴’이란 인물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 수많은 허락을 받아 공연을 준비하던 S는 그렇게 마르틴과 만나게 된다.
마르틴과 만난 S는 처음엔 삐걱거렸으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 대해 알아가고 천천히 공연을 준비해간다. 하지만 진행될수록 생각했던 것과 달라진다. 마르틴이 무대에 오르기로 했는데 반대로 무산되어 ‘페데리코’라는 배우를 섭외한다(이후로 극은 S와 마르틴, 페데리코 세 인물이 진행한다-<테베랜드>는 2인극으로, 마르틴과 페데리코 캐릭터를 한 배우가 연기한다)
성 마르틴이나 공연 예술, 마르틴의 어릴 적 이야기 등 여러 대화를 나누며 마르틴과 S는 가까워지고 페데리코도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쌓아간다. 그 과정에서 S는 마르틴과 싸우기도 하고 마르틴이 발작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기도 한다.
마르틴도 S와의 만남을 통해 변화를 겪는다.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연기 한다는 것에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무덤과 단 한 번 리허설 무대를 볼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걸 선택할 정도로 변화한다. S는 성공적으로 <테베랜드>라는 공연을 올리고 S와 마르틴의 만남에도 끝이 온다.
<테베랜드>에서 중심이 되는 키워드는 ‘존속 살해’이다. 마르틴은 포크로 아버지를 살해하여 감옥에 들어왔고 이것은 아버지와의 관계로도 이어진다.
성인이지만 종교로 갈등이 있었던 성 마르틴, 사이가 나빴지만 뗄 수 없는 사이였던 음악가 모차르트, 수전노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는지 마음이 흔들리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 그리고 그리스 비극의 정수, 존속 살해의 대표 아이콘 오이디푸스까지 모두 아버지와 관계있다.
마르틴은 존속 살해를 했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와 공통점을 공유하고 그 상대가 아버지임을 안다는 점에서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과 공통점을 공유한다. 부친과의 갈등, 친족 살인이 얼마나 오래 이어져 왔는지 이런 비교 예시들은 마르틴에게 접근해가는 접근 과정으로 보았다.
<테베랜드>의 무대는 철장을 세워 마르틴이 갇힌 감옥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테베랜드> 작품이 주로 어디서 진행하는지 장소에 대한 정보 제공과 마르틴에게 허락된 작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단에 배치된 모니터는 실시간으로 관객들에게 제공된다. 이는 카메라가 있다는 뜻인데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S가 올릴 작품을 연기하는 페테리코의 연기 확인용, 다른 하나는 마르틴의 말대로 24시간 그를 감시하는 CCTV이다.
또 <테베랜드>는 한 배우가 1인 2역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마르틴/ 페데리코 역을 한 사람이 맡는데 이는 페데리코가 무대에 오를 수 없는 마르틴을 연기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신분의 변화와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광고도 찍은 페데리코와 24시간 감옥에서 감시받는 마르틴. 그 차이는 크다.
S는 안티고네 적 인물이다. <안티고네>라는 작품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는 테바이 비극 3부작이다)
특히 S에게 안티고네 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장면이 바로 간질 발작으로 선글라스를 낀 마르틴에게 안약을 넣어주는 장면이다. 아버지 살해 장면에서 (페데리코인지 마르틴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의 경계에서) 발작을 일으켜 그 영향으로 스스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처럼 일시적으로 눈에 문제가 생긴 마르틴에게 안약을 넣어주는 S는 빛을 잃고 테바이를 떠난 오이디푸스의 곁을 지킨 안티고네다.
또한 작품 <안티고네>에서 오라비들의 장례식 문제에 관해 윤리적 도리에 관해 주장하는 안티고네의 모습은 살인을 저지른 마르틴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S와도 연결된다. 관객이 느낄 분노와 연민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마르틴을 이해하고 변호한다.
동시에 마르틴에게는 대화하는 첫 어른이기도 하다. 마르틴에게 S는 제대로 된 성인이자, 처음으로 깊게 교류한 인물이다. 언제 오는지 알아야 준비하는 <어린 왕자> 속 여우처럼 마르틴은 처음엔 온수를 이유로 시간이 몇 시냐고 물었지만, 마지막에는 S를 보내기 싫어 그 시각을 묻는다. S와 마르틴 두 사람 다 만남을 이어갈수록 S에게 농구 용어집을 만들어주거나, 책을 싫어하는 마르틴을 위해 전자기기에 음악과 그림을 넣어 선물할 정도로 존속 살해범과 작가에서 마르틴과 S로 서로를 대한다. <테베랜드>가 만남을 다룬 작품이란 작가의 말처럼 두 사람의 만남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아스마 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μίασμα에서 유래하였는데 동사형으로는 ‘오염시키다’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죄를 짓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마르틴은 아버지를 죽였다. 상대가 아버지인 걸 몰랐던 오이디푸스와는 달리 그는 명백히 알고 있었다. 죄수와 CCTV의 감시 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자유 의지 없이 정해진 대로 살아야 하는 ‘존속 살해범’이란 꼬리표를 단 마르틴은 죄수라는 이름으로 미아스마, 오염되어 모두가 그를 꺼리는 처지가 된다.
존속 살해에 대한 작품을 올리려는 S도 초반에는 마르틴과 관계가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다. 경멸하지 않는다지만 어딘가 거리가 있던 사이였다. 하지만 뒤로 가면 S는 마르틴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냐며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는 대사를 한다. 관객도 이 말에 동의와 마르틴이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살인은 하면 안 되었다는 갈등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스톡홀롬 증후군인가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된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찾는 데에서 온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가 사실 자신의 아들임을 먼저 알고 오이디푸스에게 조사를 그만둘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사실을 안 오이디푸스는 절망하나 운명을 탓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테베랜드>의 마지막은 마르틴이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대사를 읽는 것으로 끝난다.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는 죄인이었던 오이디푸스가 신들의 부름을 받는다. 추락했던 영웅은 다시 위로 오른다. <테베랜드> 초반부에 마르틴은 S에게 그럼 자신도 영웅이냐고 물었다. 마르틴도 그렇게 영웅이 됐다. 적어도 <테베랜드>를 본 관객들은 마냥 그를 오염된 죄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테베랜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고민을 했었다. 단순히 S와 마르틴의 만남, S와 만남으로서 달라지는 마르틴의 모습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 끝에 내린 결론은 미아스마, 정화의 여정이라는 것이었다.
<테베랜드>가 존속 살해 이야기라 오이디푸스라는 소재를 빌려온 것에서 멈추어 마르틴이 오이디푸스랑 비슷하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테베랜드> 속 마르틴이 겪는 과정이 오이디푸스가 겪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미친 장면이 마르틴이 선택하는 장면이었다. 작품에서 마르틴은 선택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선택은 정해진 대로 사는 감옥에 와서 그가 하는 첫 선택이다. 바로 한 번만 허락된 공연을 볼 것인가,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갈 것이냐는 선택이다. 의외라는 말처럼 마르틴은 아버지의 무덤을 가보기로 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삼거리’와 ‘삼거리 근처’와 같은 라이오스 죽음과 관련한 사실 확인하는 장면이 있다(오이디푸스는 무의식중에 진실을 말한다. 그가 범인이기 때문) 이는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이오카스테 말처럼 그냥 묻어두었다면 아내가 사실은 어머니라는 끔찍한 사실을 모를 수 있었다.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은 ‘발이 부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발로 재어서 아는 사람’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알다’의 오이다+‘발’의 푸스.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를 떠나올 때 발걸음을 재어서 갈 길을 잡았다) 두렵더라도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이 오이디푸스다. 현대의 마르틴은 무덤이 상징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대면할 정도로 변화한다.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 갈 길이 있다고 말하는 S와도 다음은 약속하며 좋게 헤어진다. 중간에 발작할 정도로 힘들었던 그 과정들은 감정 배출을 위한 카타르시스이고 앞서 설명한 오염됐던 마르틴의 정화일 것이다.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도 유명한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 중 비극의 정점에 있다. 아버지 라이오스, 어머니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남. 그러므로 원래 테바이 왕가 출신이지만 자식에게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두려워한 라이오스가 양치기에게 그를 죽이도록 했다. 하지만 양치기는 죽이지 못했고 이로 인해 코린토스로 넘어가게 된다.
*테바이 왕가의 비극
라이오스의 저주뿐만 아니라 테바이 왕가에는 비극이 흐른다. 이는 테바이를 세운 카드모스로부터 시작한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딸 하르모니아와 결혼한 카드모스는 용아병으로도 유명하다. 아르고스에서 암소로 변해 이집트로 건너온 이오의 후손으로 제우스에게 납치된 에우로페의 오빠다. 에우로페를 찾다가 에우로페를 찾는 것을 멈추고 새로운 도시를 세우라는 신탁을 듣고 테바이를 세운다.
그 과정에서 아레스의 샘을 지키던 그의 자식, 용을 죽였고 이 용의 이빨을 뽑아 땅에 뿌리자 용아병이 솟았고 그들은 카드모스를 돕는다. 이 일로 카드모스는 아레스의 종살이를 해 용서받고 하르모니아와 결혼하지만, 아레스의 저주로 카드모스부터 테바이 왕가는 아주 소수의 몇을 제외하고는 말로가 불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