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 연극 리뷰 <비명자들 3막 - 나무가 있다>

고통으로 연결하다

by 연뮤연뮤
638736575122034736_0.jpeg 극단 고래 제공

2024.11. 08~ 2024. 11. 17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극단 고래

박윤정, 사혜진, 김대진, 장원경, 김동완, 홍상용, 문종철, 이동형, 김주형, 변신영, 장인혜, 박윤석, 안소진, 양지운, 박형욱, 임영원, 전동훈, 이원석, 김민채, 임해빈, 김대호, 김재훈, 양정렬, 이상준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비명, 고통의 청각화

4. 비호감형 주인공, 선재

5.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다

6. 나오며


638740098505178542_0.jpeg @yeonmyu_0113

1. 들어가며

좋은 기회가 주어져 극단 고래에서 올리는 <비명자들 – 나무가 되다>라는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보기 드물게 1막, 2막, 3막으로 나누어진 작으로 이번 3막은 마무리하는 마지막 이야기다. 제각기 비명 지르는 사람이 많아진 최근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638736575339497452_0.jpeg 극단 고래 제공
638740095993475828_0.jpeg 극단 고래 제공

2. 스토리 라인

전 세계에 ‘비명자’라는 존재가 생겨난다. 이 비명자는 비명을 지르며, 그 소리는 반경 4km까지 고통을 준다. 백신을 만들거나, 승려들이 돌보는 등, 각 나라는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비명자들을 해결하려 하지만 별다른 차도를 보이진 못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속에서 비명자들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그래서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비명자들을 북한과 인접한 위치에 옮기려한다. 이에 페리호 침몰과 할로윈 참사로 가족을 잃은 선재는 막으려 한다.


선재는 비명자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던 기자로, 이제는 비명자이고 과거에 비명자들을 관리하는 팀장이었던 보현과 대화에 성공한다. 그런 선재이지만 비명자들의 몰살을 막으려 노력하지만, 그녀 개인으로서는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비명자들이 죽음을 피할 방법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들을 이끌고 도심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가족이면서 동시에 주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는 정부는 비명자들을 죽이기 전, 마지막으로 기도할 시간을 준다. 무당까지 와 그들의 마지막을 위한 의식을 하는데 비명자들에게로 빨갱이로 몰려 죽은 혼들이 빙의한다. 그리고 비명자들은 사람들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 나무로 자리 잡는다.


3. 연출

<비명자들>은 시각, 청각에 집중하여 연출했는데 초반에 전쟁 영상과 연구소, 전 세계 사람들을 대사로 넘어가지 않고 영상으로 보여줬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명은 보통, 괴로울 때 낸다. 즐거울 때는 그 명칭이 비명이 아니다. 작중 인물들은 괴로운 일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사회적으로 큰 아픔을 주었던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다.


6•25, 페리호 침몰, 할로윈 참사 그 밖에도 모두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다. 비명은 고통의 청각화이다. 무대 위 비명은 듣기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비명자들> 작품 속에서 비명자들 때문에 어떤 신체적 괴로움을 겪는지 관객들도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고통을 안겨 준 사건들을 영상으로 직접 보여준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로는 관객의 부담을 덜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비명자들>의 진입 장벽을 높인 건 작품의 판타지 설정이 아니라 불교 용어이다.


종교는 해당 신자가 아니라면 쉽게 접하지 못한다(프로그램 북에 이해를 위한 단어 설명이 수록되어있다). 그리고 본 작품에서 사용하는 불교 용어는 일상을 살아가며 익히 접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것에 집중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부분은 영상 등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보여줘 관객은 쉽게 받아들이고 넘어간다. 참고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깨닫기 쉬우니 너무 걱정할 건 없었다.


4. 비호감형 주인공, 선재

선재는 본 작품의 주인공이다. 목적이 있고 스스로 행동한다. 선재가 비명자들이 죽지 않게 노력하는 그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고, 사회를 살아가게 하는데 필요한 행위이다. 악을 쓰고 분노하고 처절하게 움직인다. 그렇지만 선재는 호감형 주인공은 아니다. 선재에겐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빠져있다.


타의로 가족을 잃은 선재는 소수들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에 분노한다. 선재가 호감형이 아닌 이유는 방법이 극단적이고 그 대안마저도 달리 현실성이 없으며 순수하게 비명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상처에 매몰되어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태어난 스페이스 노이드의 권리를 위해 극단적으로 지구에 핵겨울을 일으키려 했던 일본 유명 캐릭터 <역습의 샤아>의 샤아 아즈나블을 생각하게 한다.


무언가를 행할 때 무조건 선한 의지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선재 덕분에 100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한 소수자 비명자들의 생명을 조명했다. 그렇다면 비명자들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비명자들의 영향은 단순 통증이 아니라 심각하면 신체적 부상으로 이어진다. 선재는 비명자 보현과 접촉해도 고통스럽지 않게 변화했지만,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통한 변화를 요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선재 또한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마지막에 있다. 무당을 통해 비명자들에게 과거에 빨갱이로 몰려 사망한 혼들이 빙의될 때 선재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왜 지금? 라는 반응을 보인다. 똑같이 무고한 사람이 사망한 일인데도 그것을 연결하지 못한다. 선재라는 인물이 가지는 한계이자, 그녀의 정의가 완벽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완전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숙제로 던진다.

638736577114608546_0.jpeg 극단 고래 제공
638736576806401683_0.jpeg 극단 고래 제공

5.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다

보현과 비명자들은 결국 자연 속으로 들어가 나무가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고자 나무로 변한 다프네처럼 그들도 나무로 변해 자연의 일부분이 됐다.


비명자들과 접촉을 하면 고통이 있다, 고통의 원인이 있다, 고통의 소멸이 있다, 고통 소멸의 길이 있다를 외친다. 작중 등장인물들도 사성제를 언급한다. 이 외침은 불교의 수행법을 생각나게 한다.


해당 작품이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만큼 불교와 연계한 해석을 무시할 수는 없다. 불교에서는 윤회의 고리를 끊는 걸 목적으로 한다. 그들은 번뇌로 가득했던 인간 상태에서 벗어나 나무로 변해 고통, 슬픔, 괴로움에서 해방된 상태에 이른다(무여열반) <비명자들 – 나무가 되다>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장면일 것이다. 결국 연속되는 고통의 고리를 끊는 것이 누구에게 달려있는지 관객이 생각게 한다.


6. 나오며

시간이 흐르며 사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세대다. 미래에 희망이 보이질 않아서, 살기가 팍팍해서인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 같으면 견디지 못하고 날을 세운다. 극 중에서도 언급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우선이다. 안위가 위협될 것 같다면 날카로워진다. 살기 위해 내재된 생존 본능이다.


우리는 살면서 괴로운 일을 겪고 고통을 느낀다. 그러다가 왜 고통스러운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마음에 고통을 담아두고 있어서, 고통에서 벗어나려 원인으로 파고드는데 그럴수록 담아둔 고통에 더더욱 잠식된다. 벗어나려 할수록 오히려 삼켜지는 아이러니이다.


내가 편해지고자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라니,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것 또한 집착이기 때문이다. 집착하고 바랄수록 현실을 바꾸고자 하지만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진 않는다. 고통스러운 건 현실이 내 바람과 달라서다. 바라는 대로 된다면 고통에 몸부림칠 일도 없다.


하지만 고통을 무조건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그 고통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은 얻고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 끝에 해탈로 고뇌와 번외에서 벗어난 상태에 이른다. 사회도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비명자들로 괴로워 왜 그들이 생기는지, 비명자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쉽게, 금방 해결할 수 없어도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했더라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각각 다른 고통에 옆 사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삶은 더 윤택해져 가는데 어째서인지 자비없이 서로에게 더 각박하게 굴고 더 날을 세워 상대를 아프게 한다. 수많은 비극과 상처가 가득한 사회에서 이기적이지만 내가 괴롭지 않기 위해 올바르게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한다.

638736576585822267_0.jpeg 극단 고래 제공
638736577117108534_0.jpeg 극단 고래 제공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