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너희들이 왜?
저벅저벅-
방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삐걱-
문이 열렸다. 쏟아지는 환한 빛.
눈이 부시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역광 때문에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다.
'처음에는 그들, 이번에는 누구?'
은혜는 가까스로 역광에서 실눈을 뜨고 보니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항상 힘내, 넌 할 수 있어”라고 풀이 죽은 은혜에게 말해주며 동네에서 든든한 은행나무 같은 친구들이 나와 은혜는 적잖게 놀랐다.
은혜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 와서 이젠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상태를 잘 아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벙벙한 상태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은혜를 보자 서로가 앞 다퉈서 울먹이면서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은혜야 정말 미안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무엇을 잘못했다는 걸까?’ 은혜도 기억너머 친구와의 추억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때 어렴풋이 들리는 말이 생각났다.
“이게 다 널 위한 거야”라는 말이 은혜에게 들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은혜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이었다.
알고 보니 은혜에게 가슴에 못 박듯 상처 주는 말을 심하게 해서 그들이 나온 듯했다.
친구라는 이름 아래 은혜에게 조언한답시고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은혜의 의견을 무시한 그들이었다.
한때는 자신을 가족처럼 도와주며 세세하게 신경을 써준 친구들이 있어 가슴이 벅차 오른 적도 있었다.
친구들은 은혜에게 결정 장애가 있다고 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머뭇거리고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혜는 성장과정에서 부모님께 칭찬을 받지 못했고 작은 선택을 스스로 해서 성취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
늦둥이로 태어나다 보니 물가에 내다 놓은 아이처럼 부모님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자라난 은혜였다.
마음이 착해서 부모님과 어른들의 심부름을 독차지한 은혜였지만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억울한 삶을 살아서 자기가 피해자라는 생각으로 가득한 부모 아래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눈치를 보면서 자라다 보니 잘 되면 남 탓 잘못되면 자기 탓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늘 자신에게 과녁을 맞히고 있는 화살로 인해 친구들과 혹시라도 마찰이 생기면 사과하는 쪽은 항상 은혜였다.
한날은 은혜는 옷을 사러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산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추천하는 옷들을 주로 사야 마음이 편했다.
은혜는 항상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마음이 놓이고 결정을 했다. 결정을 하고 나서도 은혜는 친구들에게 질문했다.
“이게 정말 나은 걸까?, 잘한 결정일까?”
“그래, 진짜 잘한 결정이야.” 은혜의 친구들은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와 대화를 나누는 마법을 가진 신비한 거울과 같았다.
은혜가 필요한 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기도 했고 은혜의 고민거리를 들어주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은혜는 삶의 운전대에 자신이 앉지 못했고 그 자리에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앉히곤 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음식점에 간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메뉴판을 보고 들떠서 음식들을 고르며 신나 하고 있었다.
“너는 어떤 거 먹을래?”라고 친구들이 은혜에게 물어봤다.
은혜에게 메뉴판이 건네졌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이 보였다.
“난 이거 시킬래”
“면류는 하나 시켰으니까 이번에는 피자로 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아”라는 소리를 친구에게 들었다.
“그래 난 이거”라고 결국 친구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메뉴판에서 손으로 짚어주고 환하게 웃는 은혜였다.
은혜 말을 듣고 친구들은 모두 기뻐하며 음식을 주문했다.
그녀는 다행히도 결혼 후 곁에 아이들이 생기면서 결정 장애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게 되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이 한 명 두 명씩 생기게 되면서 사소한 고민들을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결정들을 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은혜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전보다 더 단단해지게 설 수 있게 되었다.
첫 아이를 낳고서 은혜의 남편과 함께 유모차를 사러 간 적이 있었다.
백화점에서 유모차를 시연해 보고 사고 싶은 게 있었으나 남편의 권유로 결국 인터넷 쇼핑을 통해 구매하게 되었다.
사놓은 유모차는 얌전히 있다가 밖에 나가게 될 때 사용하게 되었다.
‘혼자서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게 가능할까?’
‘아이랑 같이 밖으로 나왔다가 유모차 바퀴가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안전하게 다니는 것에 막연함과 불안한 생각이 들었고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남편이 있을 때만 겨우 유모차를 사용했던 은혜였다.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데도 은혜는 할 수 없었다.
“너는 참 고생을 사서 한다.” 이 말이 늘 친구들에게 듣는 또 다른 말이었다.
시간이 흘러서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은혜의 무의식 너머 서랍에 서운함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친구들에 대한 기억들이 차곡차곡 채워져 있었다.
친구들을 우주로 편하게 보내는 은혜였다.
다음에는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