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문

제3화 누굴까? 가보면 알아

by 금그물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데도 은혜는 할 수 없었다.


“너는 참 고생을 사서 한다.” 이 말이 늘 친구들에게 듣는 또 다른 말이었다.


시간이 흘러서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은혜의 무의식 너머 서랍에 서운함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친구들에 대한 기억들이 차곡차곡 채워져 있었다.


친구들을 우주로 편하게 보내는 은혜였다.


다음에는 누굴까?







다음에는 검은 정장 옷을 말끔하게 입은 사람이 보였다.

알고 보니 동네 아는 언니였다.


그 순간 은혜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은혜 씨, 은혜 씨, 괜찮으세요?"

"눈 좀 떠보세요, 은혜 씨.."

부들부들 떨리는 은혜 한 손에 물컵 한 잔이 꽉 쥐어졌다.

은혜는 마른 목을 벌컥벌컥 냉수 한 잔으로 축였다.

"죄송합니다, 저 더 이상 못하겠어요, 흑흑"

"은혜 씨, 금방 끝날 거예요, 지금까지 너무 잘해 오셨어요."

"정말 이대로 계속 지내도 괜찮으세요?"

동네 언니는 안쓰러운 듯 은혜를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물어보셔도 되세요."

"은혜 씨, 지금이 기회예요."

입술을 깨물며 멈칫하는 은혜에게 들려지는 한 마디


"은혜야, 괜찮니?"

'칫, 언제부터 내 생각했다고..' 마음이 불편한 그녀였다.

오랫동안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하고 은혜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언니, 그때 왜 내게 모진 말을 했어?"


동네언니가 은혜에게 말했다.

"그동안 많이 아팠지? 너를 깨기 위해서 말했어."

오랜 시간 언니가 했던 말이 은혜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결국 동네언니와도 거리가 멀어졌고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도 두게 되었다.


그 당시 동네 언니는 자기 정죄와 자기 연민에 쌓여 있던 은혜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잘못에 대한 원망과 불화살을 첫째 딸과 지금의 남편에게 쏟고 있던 은혜였다.

자신을 자책하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지냈던 은혜였다.

은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이겨낼 수 있는 해결책으로 주변에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오래된 딜레마에서 벗어나려고 했었다.

진짜 자아는 밑바닥에 던져두고 종교인의 모습으로 옷을 껴입은 은혜가 동네언니는 늘 가여워 보였다.


그때 은혜에게 동네 언니 말은 추운 겨울날 돌부리에 넘어져있는 데 차가운 물을 뿌린 듯했다.

동네언니는 은혜를 처음 만났을 당시 벽안에 홀로 갇힌 것 같아서 구해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자신도 어려운 상황인데 동네 곁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그녀의 모습이 남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남다른 재능이 많아 보이는 데 다른 사람과 늘 비교하며 스스로 "나는 못해" 입버릇처럼 말한 그녀였다.

언니는 불타는 가시덤불에 갇혀 몸부리 치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리고 무거웠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종교인처럼 허례허식 속에서 지내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과거 모습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활발하게 웃으면서 포장된 자아로 자신을 잘 가리고 있는 같지만 그녀의 남모르는 아픔이 전해졌다.

자신도 같은 길을 걸어와서였을까? 동네언니는 어떻게든 진심으로 은혜를 도와주고 싶었다.


언니는 자신의 말로 굴착기가 도로 위 딱딱하게 굳어진 아스팔트를 깨트리듯 뼈 아픈 충고로 은혜의 무의식의 성벽이 깨지길 바랐다.

은혜 안에 어두운 모습이 드러나고 빛으로 나아오길 바란 언니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동네 언니는 자신도 지내온 과거의 모습이었기에 은혜가 마음이 아플 것을 알았지만 원망을 듣는 것보다

우선 사람과 가정을 살리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네 언니는 은혜를 친언니처럼 대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은혜가 혼자 하는 넋두리를 받아주면서 고민거리도 들어주고 동네 언니는 다른 이들처럼 해결책을 급히 제시하지 않았다.

그냥 은혜를 곁에서 말없이 보고는 때로는 바보같이 빙그레 웃어주던 동네 언니였다.

은혜에게 버릴 옷이라고 말하고 새 옷과 함께 사랑과 관심을 쏟아준 은혜에게 유일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은혜와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먹으면서 동네언니가 말했다.

"은혜야, 시간 되면 같이 만날 사람이 있는 데 꼭 같이 갔으면 좋겠어.

"누군데? 나랑 같이 가보면 알아, 은혜야 시간이 언제쯤 될 것 같니?"

"언니, 나는 목요일 시간이 될 듯하긴 해."



언니랑 헤어지고 어디로 갈지 궁금해하는 은혜였다.


드디어 목요일이 되었다.

'언니는 어디를 같이 가려는 걸까?'

'혹시.. 훗훗훗' 웃음이 나오자 손으로 얼른 입을 가리는 은혜였다.

"설마.."라고 은혜는 혼자 말하며 옷장 문을 열고 가장 눈에 띄는 핑크색 꽃무늬 원피스를 골랐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에 옷걸이에 걸려 있는 원피스를 걸치고 기분이 좋아져서는 괜히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돌았다.

"샤랄라 당신에게 꽃내음이 나네요."

은혜는 자신도 모르게 신이 나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와 그렇게 홀로 춤을 추고 있었다.

"따르릉" 미리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깜짝 놀라서 서둘러서 준비를 마치고 은혜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인 커피숍에 가보니 동네 언니가 먼저 와 있었다.

은혜를 먼저 알아보고 동네언니가 은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은혜야, 여기야, 여기"

"언니~"

은혜도 언니를 알아보고 자리에 앉았다.


"언니, 이제 우리 어디로 가?"

언니는 "응, 가 보면 알아."

"은혜야, 뭐 마실래?"

"아니, 안 마셔도 돼."

긴장하면 물만 마셔도 체하는 은혜였다.

"그래, 그러면 이제 같이 가자."

언니는 마시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한숨에 쭉 들이켰다.


둘은 문을 열고 커피숍을 나왔다.


언니랑 손을 붙잡고 붉은색 벽돌이 있는 건물 앞에 멈추었다.

앞에 계단이 있고 벽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가득했다. 미술학원이겠거니 생각하고 궁금해서 먼저 계단을

'콩콩'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은혜였다.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 베이지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져 있는 문 앞에 섰다.

"똑똑" 노크를 해도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는지 대답이 없었다.

"언니, 아무도 없나 봐, 우리 나중에 다시 올까?"

누군가가 자기들을 기다린다고 생각했는 데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아무도 없으니 영 불안한 기분이 들은 은혜였다.

"은혜야, 잠깐 기다려."동네언니는 은혜에게 말하고는 서둘러서 계단을 올라왔다.

언니는 익숙한 듯 은색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삐비빅'누르고는 문을 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하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