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이 걷히고, 그들이 보였다.

두 개의 눈, 사라진 목소리

by 금그물

하늘 문(14화)


누구나 공룡들이 있기 마련이다.

온도에 따라 깨어나는 시기가 다를 뿐이지.

그들만 모르는 막이 오르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은혜는 친구와 옷을 사기 위해 아웃렛 쇼핑몰에 갔다.

매장에 코트들이 진열되어 있는 데 마음에 드는 옷들은 가격이 비싸서 선뜻 손이 가지 않고 있었다.

옷 가게 밖에 노란색 니트를 만지작 거리는 은혜에게 친구가 다가왔다.

“나가자, 은혜야, 살만한 물건이 없어 보여.”

친구랑 같이 쇼핑을 하고 있는 데 전화가 울렸고 그들은 급하게 문을 열고 건물을 나서게 되었다.

아는 지인이 근처에 있다고 해서 같이 만나기 위해 그들은 갔다.

“연주야, 어떻게 아는 사람이야, 누구니?”

“어? 나도 몰라, 근데 오늘 굉장히 재밌을 것 같아.”

“뭐라고? 아까 네가 아는 사람이라며?”

“맞아, 아는 사람, 오늘부터 진짜 알게 된 사람이야.”

“뭐라고?”

“일단 가보자.”

친구가 망설이던 은혜 손을 붙잡고 술 집문을 열었더니 주말 저녁이라 사람이 많았다.

어두컴컴한 조명을 지나가려는 중, 멀리서 친구에게 인사하는 사람이 보였다.


“아, 저기 저 사람들인가 봐.”

친구는 속삭이듯이 그녀에게 말하고 찡긋 윙크를 했다,

웃음기를 머금은 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은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화로 말씀드렸던 박정후입니다.”

“아, 박정후 씨.”


짧은 인사가 오갔고, 서로의 친구를 소개했다.

친구와 주선자는 SNS동호회에서 알게 된 후, 서로를 대면하는 자리였다.

박정후는 공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고, 친구는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을 돕는 중이라고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반말이 자연스레 오갔고, 처음 술을 마신 날에 대한 주제로 질문이 오갔다.


“난 친구들 집에서 처음 술을 마신 날이 기억나,”

“현관에 들어서니, 그대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어.”

“친척들이 와 있는 날이었어.”

“진짜? 우와, 대단하다.”

“엄마한테 안 혼났어?” 질문들이 이어지고 머쓱하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수의 모습이 어쩐지 은혜에게 와닿았다.


음악의 흐름 속에서 서로의 눈빛이 서서히 갈렸다.

주선자와 그녀 친구는 어느새 의자를 앞당기고 있었다.

웃는 순간, 동수와 은혜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가만히 있을 때와 웃을 때 그의 모습은 그녀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갔다.

멈춰 있을 때는 모서리 끝에 손가락이 닿으면 시릴 것처럼 매서워 보였다.

웃을 때마다 눈에 반달이 뜨고, 미간에 주름이 생기며 코평이 넓어졌다.

그들은 기쁨의 소리를 남긴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데이트는 나중에 이어졌다.


그에게 연락이 왔고,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진척되었다.


둘이 가는 곳은 정해져 있었지만, 계획적으로 쿠폰을 챙겨 다니는 동수를 굳이 싫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가 가방을 내려놓을 때마다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가방을 챙겨 웃으며 등에 메었다.

동수는 최신 유행 스타일에 관심이 많았다.

하나둘씩 화장품과 옷, 신발들로, 그녀의 스타일은 점차 세련되어 갔다.

그를 만나기 전의 그녀는 흰 블라우스에 남색 바지를 입고 단화를 신곤 했다.


어느새 레이스가 달린 바바리를 입고 치마와 높은 구두를 신은 채, 동수를 향해 달려가는 은혜였다.


그와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발을 헛디뎌, 그녀가 한 번 넘어진 적이 있었다.

구두는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듯했다.

그녀는 아픈 것보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웃는 눈들을 먼저 보다.

“아프지? 어디 봐.”

그는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급히 신발을 벗겼다.

손사래를 치는 그녀를 뒤로하고 그는 멈춘 채 발목을 꼼꼼히 살폈다.

은혜에게 의 무릎은 새롭게 다가왔다.


그녀는 오래전에 자신의 목소리를 잃었다.

늘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반응하며 결정했기에.

그녀를 향해 가오는 사람 앞에서 천연의 색도

그로 덧칠되어 갔다.

은혜의 마음은 조금씩 적셔지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와 그녀의 낯선 모습들 말이다.

길의 끝에서, 낯선 모습의 그와 그녀가 서 있을 줄은.


그에 맞게 생활도 흘러갔다.

친구들이 흔히 먹는 매운 음식 앞에서는 아랫배가 쓰린 경험이 있어서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동수랑 만나면서 삼겹살에 마늘을 두세 개는 넉넉히 올려, 웃으며 먹 되었다.

다양한 음식들 앞에서, 그녀는 더 이상 젓가락을 놓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했다.

은혜는 그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관심을 받고 싶어 그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동수는 그녀가 한 번 먹는 모습을 보고, 조용히 이벤트를 준비했다.

어느 날, 그녀는 일을 마치고 그가 있는 고깃집으로 갔다.

그의 친구들도 함께 있었는 데, 낡은 옷들의 조각처럼 보이는 음식이 테이블 위에 보였다.

“서프라이즈”

그는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와, 먹여주려 했다.

친구들도 눈빛을 반짝이며 환호했고, 박수를 세게 치기 시작했다.

그날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의 정체는, 바로 천엽이었다.

또 다른 음식 한 가지가 그녀 입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참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생간이 서서히 다가와 커지는 것을 보며, 그녀는 순간 시간이 이대로 멈추길 바랐다.

그녀에게 눈은 있었지만, 입은 없었다.

그의 친구들 앞이라 싫다는 내색 하지 않은 채 동수의 손에 의해 다가오는 간을 향해 은혜는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그래, 나는 간을 좋아한다. 나는 간을 좋아한다.’

미끄덩거리는 감촉에 피비린내가 섞인 간을 울렁거림 속에 겨우 삼켰다.

다시 올라오려는 작은 조각들을 애써 종이배처럼 천천히 넘긴 뒤, 사이다로 뒤집힌 속을 겨우 달래는 은혜였다.


먹지 못하는 음식은, 그와 함께 한 시간에 싸여 그녀의 미소를 러왔다.

외진 길에 금빛 가루가 흩날린다.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껴 서로 자석처럼 끌리는 것일까.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는 순간은,

어쩌면 자신이 오래전에 만들어 둔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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