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린 날
하늘 문(13화)
이 집에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에 낯섦도 흐려졌다.
그와 그녀는 결혼을 했고, 짐을 정리하며 함께 찍은 사진들을 집안 곳곳에 두었다.
서서히 집 안에는 그들만의 흔적들로 채워져가고 있었다.
샴푸를 살 때도 마트로 가서 크기를 보고 가격을 비교해 가며 꼼꼼하게 용량을 확인하고 난 뒤에 계산대에 가서 할인쿠폰을 먼저 찾아서 내밀고 계산했다.
평상시에는 원 플러스 원 행사상품 위주로 가성비를 따져가며 물건을 사는 동수였다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던 그녀의 눈에, 열린 문 사이로 방 가운데 바닥에 매트리스가 들어왔다.
“이렇게 써도 돼?”
“뭐를?”
“침대 말이야.”
“아, 프레임? 알아보고 있는 데 아직 마땅한 게 없네.”
“다음 주에 친구들 집들이 오기로 했잖아, 어쩌지?”
“걱정 마, 그전까지는 준비해 놓을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은 곳에서 시킬 걸, 잘못한 것 같아.”
“나도 그러려고 했는 데, 침대 프레임까지 같이 사면 가격이 비싸더라.”
“이곳 매트리스가 천연 라텍스라 가격이 좀 나간다고 지난번에 이야기했는 데 기억 안 나?”
“일부러 5년 후에 새것으로 할인받아 교체할 수 있도록 튼튼한 거로 샀어.”
“공짜도 아니고 어차피 나중에 돈이 또 들잖아.”
“이미 결정된 거잖아, 계속 이야기할 거야?.”
“침대 크기도 큰 데다 프레임이 없으니까 많이 허전해 보이잖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오후가 되어도 집안을 감싸는 냉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동수는 리모컨을 잡고 TV를 켰고, 요리 프로그램이 흘러나오자 은혜는 조용히 일어났다.
싱크대에서 커다란 냄비를 꺼낸 후 정량 컵을 꺼내 물을 붓는 은혜에게 다가와 말하는 동수였다.
“뭐 해?”
“응, 스파게티면 삶으려고.”
“그냥 냄비에다 물 부어, 휴, 이러다 스파게티는 언제 먹냐?”
“여기 보니까 물 붓는 양이 자세히 나와 있어.”
은혜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동수에게 스파게티 봉투에 나와 있는 레시피를 가져와 보여주었다.
“이런 건 눈대중으로 해도 돼.”
“내가 만들 테니까 동수 씨는 방 안에 가있어 줄래?”
동수는 더 말하려다가 화장실로 들어갔고 은혜는 조용한 음악을 핸드폰으로 크게 틀어놓았다.
창문 너머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고 구름 아래로 새들이 낮게 날고 있었다.
물이 끓는 동안 은혜는 재료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어 재료를 확인하는 데 양파랑 베이컨이 보였다.
그녀는 가스 불을 끄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카키색 잠바를 걸치고, 운동화를 신은 뒤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철컥’
소리를 듣고 화장실에서 동수가 나왔다.
“어디가?”
“마트 다녀오려고.”
“마트는 왜 가?”
“아, 버섯이랑 파마산 치즈가 없어서 마트 가서 사 올게.”
“그냥, 오늘은 집에 있는 거로 해 먹자.”
“재료가 없어서 그래.”
“꼭 레시피에 있는 대로 안 해도 돼.”
“내가 할게, 이리 와서 앉아.”
그가 밖에 나가려던 그녀 손을 살짝 붙잡아 주방이 보이는 거실로 이끌었다.
동수는 냉장고에 문을 열더니 김치와 계란, 마늘을 꺼낸 후 나무 도마 위에 김치를 씻어서 2cm 크기로 작게 썰기 시작했다.
서랍을 열어 거품기를 가져와 계란을 깨서 넣고는 노른자와 흰자를 휘휘 저어 계란물을 만들었다.
가스불을 켠 후 냄비에 올린 물이 팔팔 끓자 소금을 넣고 스파게티면을 냄비에 풍덩 넣은 후 면을 꺼내 체에 밭쳐 물기를 살짝 빼는 동안 싱크대에서 팬을 가져왔다.
동수는 바닥에 앉아있는 은혜에게 윙크를 하고는 채에서 면을 건져 올리브유를 두른 후 가스불을 켰다.
나무젓가락으로 슥슥 휘저을 때마다 노란 면에 반짝이는 기름이 스며들었다.
‘흠흠’하더니 ‘후’하고 쉼 호흡을 한 후 잠깐 멈췄다.
손목을 튕기 듯 프라이팬 위로 면을 살짝 올렸다.
공중에서 면이 춤을 추듯 흔들리다가 사뿐히 팬 안으로 정확히 내려앉았다.
어느새 어린아이처럼 동수를 향해 박수를 치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는 은혜였다.
그는 그녀를 향해 빙긋 웃었다.
“어때? 나 좀 멋지지?”
“우아, 요리 잘하는 건 알고 있었는 데 동수 씨 진짜 대단해.”
그의 손은 여전히 바빴다.
도마에 10개쯤 되는 마늘을 올려 둔 채, 반은 슬라이스로 썰어두고, 남은 것들은 작게 잘랐다.
오른손은 여전히 칼을 쥐고, 왼손으로 고정한 뒤에 더 썰었다.
칼을 눕혀 탁탁 소리를 내며, 잘라진 마늘을 더 잘게 다졌다.
가스 불을 켠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가 촉촉하게 무르익자 다진 마늘을 함께 볶았다.
슬라이스 한 마늘은 팬 한쪽에 따로 두고 향을 내서 볶은 후 꺼내 그릇에 담았다.
팬에 베이컨을 넣고 볶은 뒤, 썰어둔 김치를 가져와 함께 넣었다.
스파게티 소스와 면수를 함께 부어 주걱으로 천천히 섞었다.
계란물을 천천히 부운 뒤 불을 줄였다.
재빠르게 코팅하듯이 버무린 후, 마지막으로 손목을 움직이며 손 끝의 감각으로 불을 껐다.
은혜는 동수의 요리하는 장면을 넋을 놓고 보다가 바닥에 상을 펼치고 마른행주에 물을 적신 후 상을 닦고 수저를 올려놓았다.
동수는 프라이팬에 만든 음식들을 옮겨 담고는 마늘 슬라이스한 것은 맨 위에 동그랗게 올려놓고는 위에 파슬리 가루를 뿌린 후 동그란 상으로 가져왔다.
“자, 먹어봐, 김치 까르보나~라야.”
“고마워, 정말 맛있겠다.”
“동수 씨는 재료가 없어도 음식을 금방 만드는구나.”
“별거 아니야, 알고 보면 쉬워.”
“아, 이번 기회에 우리 엄마한테 음식 배워보면 어때?”
“엄마는 요리를 진짜 좋아하시거든, 진짜 못 만드는 음식이 없을 정도니까 말이야.”
“아..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어쩌면 요리 배우면서 엄마랑 친해질 수도 있을 거야, 한 번 생각해 봐.”
‘제발, 부탁해’라는 가사가 들리며 악보가 어깨에 흩날리며 내려앉는 듯했다.
“여보세요? 엄마, 안녕하세요.”
“지금 밥 먹고 있어요, 제사가 언제예요?”
“네, 다음 주에 같이 갈게요.”
“그럼, 그날 봬요.”
엄마와 통화를 마칠 때까지 그녀는 잠자코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핸드폰 통화를 마치자 그녀의 눈썹이 올라가 있었다.
“다음 주에 친구들 집들이 오기로 했어,”
“아무래도 집들이하는 날짜를 다른 날로 바꿔야 할 것 같아.”
“이번에는 할머니 제사 날짜랑 겹쳐서 말이야.”
“아이참, 미리 말해주지. 이제 와서 친구들한테 뭐라고 말해?,”
“조금만 더 일찍 얘기해 줬으면 좋았잖아,”
“나도 몰랐잖아, 지금 전화받았어.”
“프레임이랑 제사 같은 건, 미리 챙길 수 있었잖아.”
“또 그 얘기야?”
“그 얘기 안 할 수가 없잖아.”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솟으며 떨렸다.
곧 창문이 덜거덕 거리며 ‘쏴아아’ 소리와 함께 세찬 빗줄기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들을 향해 저녁의 달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