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울린 방지턱

웃음을 실은 상처

by 금그물

하늘 문(16화)


그날 밤, 그녀는 꿈에서만 말을 했다.


아침이 와도 붕대는 여전히 손가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옷장 문을 열었다.

회색 원피스를 꺼내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천천히 갈아입었다.

소매를 끌어올리다 붕대가 스쳤다.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다.

앞 단추를 잠근 뒤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리본 달린 핸드백이 손 끝에서 조용히 흔들거렸다.

현관문이 닫혔다.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차 문을 열고 동수 옆 좌석에 앉았다.

시동이 걸리기 전 그가 운전석에 앉아 그녀의 손을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은혜는 안전벨트를 확인했다.

사이드브레이크가 내려갔다.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에 한 올씩 스며들었다.

숨을 길게 내쉬며 위로 하늘을 바라봤다.

젖은 마음을 따스함에 기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황금빛에 결이 가벼워졌다.

눈을 뜨자 차는 이미 시어머니 집 앞에 있었다.

그들은 계단을 올랐다.

앞장선 그가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엄마, 우리 왔어요.”

“엄마~없어요?”

반짝이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자 구두 밑면이 바닥을 스쳤다.

그녀는 신발들을 정리했다.

집 안은 조용했다.

동수가 가려져 있던 커튼을 열어젖히자,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왔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어쩌지? 엄마가 집에 안 계신가 봐.”

“은혜 씨, 잠깐 소파에 앉아 있을래?

나는 엄마한테 전화해 볼게.”

그는 주방 탁자에 있는 의자를 꺼내서 털썩 앉았다.

“엄마, 저희 왔는 데 지금 어디세요?”

“미리 연락하고 오지 그랬니?”

“지금 이모랑 같이 있어.”

“차가 막히지 않아서 저희 생각보다 일찍 왔어요.”

“집에 가려면 아직 멀었어.”

“동수야, 이모가 길에서 넘어져서 지금 병원이야.”

“어떡해요. 어디로 가면 돼요?”

“괜찮아, 다행히 신경 쓸 정도는 아닌데 혹시 몰라서 병원에 왔어.”

“사람들이 많네.”

“진료 마치는 대로 갈 테니까 우선 너희끼리 집에 있어야 할 듯해.”

“알았어요, 엄마.”

그는 전화를 끊었다.

말이 없었다.


은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방을 소파 끝에 내려놓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불을 켠 후 손세정제로 손을 씻었다.

행거 위 수건에 손이 닿는 순간, 익숙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어? 이 향기는?’

선반 위 갈색병이 눈에 들어왔다.

흰 꽃 디퓨저였다.

‘아, 방금 차 안에서 맡았던 것.’

엄마와 같았다.

문이 열렸다.

그가 서 있었다.

“뭐 해. 빨리 나가자.”

“엄마 모시러 가야 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천천히 닫았다.

“밖에서 기다릴게.”

신발을 신고 그가 나갔다.

현관문이 닫혔다.

그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고 곧 발소리가 희미해졌다.


그녀는 가방을 챙겼다.

거울을 쓱 한 번 바라본 뒤,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구두를 신었다.

현관문이 다시 닫혔다.

계단 아래로 발소리가 이어졌다.

그녀는 차 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자 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익숙한 향기가 났다.

그녀는 창문을 내렸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훔쳤다.

은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어느새 차가 병원 정문에 도착했다.

시어머니가 작은 체구의 이모를 붙잡은 채 서 있었다.

그는 운전석에서 뛰어내렸다.

은혜도 문을 열고 천천히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 왔구나.”

뒤에 온 차들이 비켜달라는 듯 경적을 울렸다.

시어머니는 이모의 팔을 살며시 이끌며 말했다.

일단 차 타고 가서 마저 이야기하자꾸나.”

그는 시어머니와 함께 부축했고, 그녀는 차문을 열었다.”

동수와 엄마는 이모를 차 안에 옮겼고, 시어머니가 곁에 앉았다.

은혜가 자리에 앉자 차에 시동이 걸렸다.

동수가 운전대를 잡으며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이모네 집으로 가자.”


빵, 빵.

뒤에서 경적이 한 번 더 울렸다.

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이모, 괜찮으세요?”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동수는 한 손으로 백미러를 바로잡은 채 뒷좌석을 살피며 물었다.

“신호등에 서 있었는데, 오토바이가 와서 피하려다 넘어졌지 뭐니?”

동수 물음에 이모가 한숨을 돌린 후 말했다.

“아이 참, 큰일 날 뻔하셨네요.”

“헬멧도 안 쓴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었어.”

“어디, 잡히기만 해 봐라, 이 녀석 가만 두나 봐라.”

시어머니는 옆에서 거들며 손으로 무언가를 꺾는 시늉을 했다.


은혜는 부들부들 떠는 시어머니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에구머니나!”

시어머니는 은혜의 붕대를 본 순간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덜컹.

차가 방지턱을 넘었다.

시어머니의 이마가 앞 좌석 등받이에 덜컥 부딪혔다.

“아이고, 내 이마.”

시어머니는 이마로 손이 올라갔다.

그는 재빠르게 오른발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는 미끄러지는 듯 멈췄다.

“엄마, 괜찮아?”

그는 고개로 시선을 돌려 뒷좌석을 살폈다.

“언니, 괜찮아?”

이모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은혜도 물었다.

시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아이고... 머리야.”

“괜찮아, 근데 너 손, 그게 뭐냐?”


동수가 백미러를 힐끗 보며 끼어들었다.

“엄마, 말도 마.”

“은혜 씨, 가시 박혀서 붕대 감은 거야.”

“뭐라고?”

“멸치 가시야, 엄마.”

동수는 말 끝에 웃음을 실었다.

은혜는 동수를 흘겨보았다.

붕대를 꾹 눌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멸치 가시?”

시어머니는 은혜 손을 보고, 다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 동수 씨 말이 맞아요.”

“멸치 가시가 손가락에 박혀서요.”

“원참... 별일을 다 본다.”

“고작 멸치 가시 가지고 무슨 붕대까지 하냐?”

“언니...”

이모가 조심스럽게 시어머니를 불렀다.

은혜는 겉옷을 벗어서 무릎에 가지런히 두었다.


손 끝이 욱신.

차 안의 공기는 따뜻했다.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모두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쿠르릉.

차는 다시 움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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