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피는 꽃

은빛 날개 아래

by 금그물

하늘 문(17화)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덧 붉은 해가 건물 사이로 숨어들고 주황빛 하늘 위로 새털구름이 안긴 채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다.

초록 나무들이 빽빽한 가로수 길에 이르자 마치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터리에 빠져나오자 신호등이 노랗게 변했다.

핸들을 바로 잡아 오른쪽 방향으로 틀자 검은색 울타리 사이로 장미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놀이터를 지나 흰색 벽돌집이 있는 주택가에 도착했다.

“이 집이야.”

그는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 이모를 부축했다.

어머니는 차에서 내려 앞장서 인터폰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허스키한 남자 목소리가 인터폰 너머로 들렸다.

“우리야. 문 좀 열어요.”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이모부가 현관 앞까지 나왔다.

공원에 있는 조팝나무처럼 머리가 하얀 금색 안경테를 쓰고

회색 운동복 차림에 흰색 운동화를 신고 천천히 걸어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이모부”

동수가 인사했다.

“동수구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어서 와, 집안으로 들어가자.”

공식인사는 결혼식에서 만나고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은혜도 다가가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반가워요.”

인사를 나누다 이모부의 시선이 그녀의 손에 머물렀다.

“손 다쳤어요? 괜찮으세요?”

“네.”

그녀는 왼손을 오른손에 올리며 고개를 살짝 아래로 끄덕였다.


“형부, 벌써 시간이 늦었네요.”

시어머니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오늘이 어머니 제사 날이라서 우리는 이만 가볼게요.”

시어머니는 동수에게 눈짓을 했다.

그는 이모를 이모부 어깨에 조심스럽게 맡겼다.


“좀 어때?”

이모부가 부축하며 물었다.

“발목이 시큰거려. 발을 딛기 힘드네.”

“목발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형부가 이모분 다리를 보시며 걱정스러운 듯 말하셨다.

“형부, 넘어질 때 근육이 놀랐다나 봐요.”

“x-ray 찍었는 데, 의사 선생님이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대요.”

시어머니는 이모의 다리를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

“가서 냉찜질하고 푹 쉬면 금방 나을 거야.”

“형부, 잘 부탁해요.”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

이모는 이모부의 부축을 받으며 집 안으로 절뚝거리며 들어갔다.

동수는 현관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들은 잠시 서서 지켜보다가 차에 올랐다.

“휴... 이제야 살 것 같네.”

“동수야, 차량 실시간 방송 좀 켜봐.”

그는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조금 높였다.”

“나들이 차량이 몰리면서 다리 구간은 정체를 빚고 있습니다.”

“뭐라고? 지금 막힌다고?”

어머니는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계시다가 앞으로 다가오셨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핸들을 꺾어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꽉 잡아.”


그는 핸들을 움켜쥐었다.

좁은 골목길을 스치듯 빠져나갔다.

차는 이내 집 앞 주차장에 멈췄다.

엔진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차가 멈추자 시어머니는 곧장 앞서갔다.

그들도 뒤따라 계단을 올랐다.

현관문은 열렸지만 시어머니 마음은 반쯤 닫힌 채였다.

동수엄마는 새로운 며느리가 왔는 데 탐탁지 않았다.

은혜가 교회를 다닌다고 한 말이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계속 마음에 걸렸다.

40여 년간 홀로 제사를 지내 와서 며느리에게 제사의 길을 내심 물려주길 바랐다.

하나뿐인 아들인 데 일요일마다 일이 있다고 집에 안 올게 불 보듯 뻔해 보였다.

동수가 해맑게 웃으면서 은혜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는 데 마음 한편이 휑 하고 딱딱한 오징어를

홀로 씹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를 곁에서 거들 줄 아는 아이로 키워 걱정은 없었다.

훗날 아내에게는 챙김을 받는 가장의 모습으로 당당히 살아가기를 바랐다.

시어머니 손을 씻고 부엌으로 나온 은혜 손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베란다로 가서 소쿠리에 있는 전하고 생선이나 밖에다 내다 주렴.”

은혜가 창문을 여니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나무들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고, 선반에는 조기와 넓적한 도미가 눈을 뜬 채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덮개가 있는 소쿠리를 열어보니 동태 전, 호박전, 고추전, 녹두전, 육전까지 세상에서 뽐 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한 손으로 받치고 커다란 접시에다가 전들을 비닐장갑을 끼고 하나하나 담는 순간,

식히려고 올려둔 수제 도토리묵 뚜껑을 톡 건드렸다.

쨍그랑!


또르르 굴러가더니 뎅뎅뎅... 떨며 마지막 소리까지 냈다.

은빛 뚜껑이 땅바닥에 튕기며 나는 소리였다.

“무슨 소리니?”

어머니가 놀라 베란다로 뛰어 오셨다.


“칠칠치 못하게 시리 저리 가서 제기나 닦아라.”

뚜껑으로 반쯤 가려진 통 안에는 손수 만드신 반투명의 갈색 도토리묵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또 다른 반찬 통에는 흰색 도라지, 갈고리 손처럼 구부려진 고사리가 보였다.

그녀는 거실에서 제기를 하나하나 닦으면서 어렸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은혜가 냉장고를 열었더니 커다란 탱글탱글한 포도가 두세 개가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달달한 포도즙이 입에서 흐르는지도 모르고 포도를 정신없이 따먹고 있는 순간,

따악!


등에 불씨가 떨어졌다.

몸이 움찔했다.

툭.


바구니가 땅에 힘없이 떨어졌다.

, 그녀의 마음도 어디론가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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