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소토왕골 / 숙자바위 / 가는골. 2022년 9월.
설악산에 갈 때는 언제나 왜 그리 긴장되는지 모른다. 짝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러 가는 설레임과 교무실로 불려가는 학생의 마음이 반반 섞인 그런 기분이랄까. 어떤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고, 어떤 고난으로 혼이 날지 두렵다. 설악산에 반했던 스물 한살 이후, 설악을 향할 때면 늘 그랬던 것 같다.
특히나 이번엔 더더욱.
혼자 가게 되었고(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비탐길이었고(입구에서 산행 시작도 못해보면 어떡하나 늘 걱정된다), 하산길로 잡은 가는골이 초행이라는(계곡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30미터 슬링과 하네스, 하강기, 확보용 테이프슬링 등을 배낭에 준비했다) 이유 등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어둠이었다. 그 좁고 으시시한 소토왕골에 깜깜할 때 혼자 들어가야 하나. 아니 해 뜰때까지 기다릴까. 그러다 국공이 막아서 못 들어가면 어떡하지.....
조금이라도 자려고 일부러 멜라토닌도 먹었건만 버스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나는 산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고, 그다지 어둠을 무서워하는 편도 아니지만, 왜 그런지 '어둠 속의 산'은 너무너무 무섭다. 지난번 조령산 어느 기울어진 바위 봉우리 위에서 비박할 때 건너편 바위벽들이 달빛을 반사하여 어둠속에 빛나기 시작하자 미선이는 "와 VR 체험하는 것 같다"라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병풍같이 늘어선 바위 봉우리들이 너무 위압적으로 느껴져 계속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얼른 눈길을 돌리며 "넌 저런 게 안 무서워?" 하고 물었더니 전혀 무섭지 않단다. 그때까진 세상 누구나 나처럼 어두컴컴한 산을 무서워하는 줄 알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새벽 3시 반. 설악동 소공원은 주말 새벽이 늘 그렇듯 분주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버스들, 빨리 차 빼라고 버스 기사와 다투는 주차장 관리인, 가게에선 국밥과 커피가 계속 팔려 나가고, 화장실을 오가는 사람들, 배낭 무게를 서로 확인하는 일행들, 매표소에 늘어선 줄, 그리고 랜턴 불빛을 앞세우고 긴 하루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바람이 셌다. 가로등에 비치는 비탈의 큰 나무들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깜깜했다. 그믐에 가까운 달. 하늘에 별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별들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깜깜한 골짜기에 혼자 들어갈 건데 한가롭게 별빛이 마음에 들어오겠는가.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내가 사망의 어두운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운운하는 성경인지 시편인지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며칠 전에 성태가 그랬다. 산에는 귀신이 있으니 밤중에 들어가지 말라고. 나 무서우라고 농담으로 한 말인 줄은 알지만 소토왕골엔 훈련용 암벽등반장이 있는데, 혹시 사고로 사망한 이들이 있다면 그 영혼이 떠돌고 있을까? 그러고보니 바로 옆골짜기 토왕골엔 빙벽 등반하다 사고 당한 사람들을 포함해서 죽은 이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꽤 많은 사람들이, 주로 열댓명씩 무리를 이루어 비룡폭포 쪽으로 떠들썩하게 걸어갔지만 소토왕골 입구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팀은 없었다. 다만 조금 전 소공원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 소토왕골 저 위쪽에 랜턴 불빛이 있었다. 그 정도면 꽤 높아 보였는데 저게 계곡길인지 노적봉 올라가는 능선길인지 구분은 잘 가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나보다 먼저 용감하게 소토왕골에 들어간 사람이 있음은 확실했다. 4시가 조금 지난 시간, 바람이 춥고 어디 있을 곳도 없어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계곡으로 들어갔다.
당연하게도, 곧 후회했다.
이따금 길이 희미해질 때마다 랜턴 불빛으로 산을 훑었다. 그나마 소토왕골은 초행길이 아니어서 고생은 그다지 하지 않았지만, 깜깜했다. 꽤 쌀쌀했고, 마른 나뭇잎들이 발 아래 바스락거렸다.
소토왕골은 초입엔 물을 만나지 않는다. 그 부분은 어찌어찌 무난하게 걸어갔다. 그렇게 약 1km 정도 걸어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물을 건너기 시작한다. 작은 계곡이라 물 건너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나는 유독 어둠속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아주아주 오래 전, 지리산 칠선계곡에 텐트를 치고 자던 어느날, 진표 형이 그랬었다. 밤중에 텐트에 누워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끔 이상하게 들린다고. 웅얼웅얼 어떤 남자가 혼잣말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그러다 남자와 여자가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서로 앙칼지게 싸우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고. 그 말을 들은 이후 밤중에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오그라든다.
어쨌거나 이 지점은 오버행 바위 아래 작은 소가 있고 옆쪽에 큰 바위벽도 있는 게 멋져 보였다. 잘 나오진 않겠지만 나중에 밝을 때 다시 오기 위해, gps 좌표 기록를 위해 사진을 찍었다.
괴기스런 사진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헤드랜턴 불빛을 비추고 다시 찍었다.
더 무서워졌다.
허연 물귀신 같은 게 저기서 나올 것도 같고, 나무가 서 있는 모습도 이상해 보이고, 어디선가 이히히 소리도 들릴 것 같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어두운 산이 무섭다. 내가 아무리 설악산을 사랑한다 해도 아무 소용없다. 결국 물소리 안 들리는 곳으로 가서 배낭을 내리고 그 자리에 앉았다. 아직 채 5시가 되지 않았다. 6시 15분 쯤이 일출이니 한 시간 정도 버티면 밝아질 것이다. 물론 '이제 폭포도 나오고 할텐데 날 밝으면 이 멋진 계곡을 감상하면서 올라가자'라고 생각했지 '나는 지금 무서워서 못 간다'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마음속으론 안다. 무서워서 멈췄다는 것을.
신발끈 다시 묶고, 배낭에서 샌드위치 하나 꺼내 먹고, 핸드폰 게임도 좀 하고.
왕나방이 몇마리 랜턴으로 덤벼들었다. 그래서 불을 끄니 이번엔 암흑이 되었다. 언젠가 전자제품 매장에 갔더니 LG 모니터였나 자기네 제품이 검은색을 더 까맣게 보여준다고 자랑하던데, 거의 그정도로 까맸다.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걸음을 옮기면 시간을 보낼 일거리라도 있지, 멀뚱멀뚱 앉아있으니 너무나 시간이 더디 갔다. 불을 켜면 왕나방이 덤벼들고 끄면 너무 까맣고, 그렇다고 저쪽 바위 위에 랜턴을 켜 놓으면 반대쪽에 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 때 다가오는, 조금은 반가운 인기척. 나뭇잎에 불빛이 살짝 반사되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 불이 가까워졌다.
이렇게 조용하고 깜깜한 골짜기 속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데서 쓱 나타나면 저 사람들 심장이 떨어지겠지. 그런 장난을 칠 나이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나도 랜턴을 이리저리 흔들어 사람이 있다는 표를 냈다. 이윽고 네 명이 나타났다. 두 쌍의 부부인 듯했다. 초행길인데 노적봉 가는 갈림길로 잘못 들어가 릿지길 올라가다 포기하고 내려온다 했다.
지난번 우리도 그랬다. 계곡길이 이렇지 않을텐데... 무슨 폭포가 있어서 우회하나... 어둠 속에 갸우뚱거리며 올라가다 아니다싶어 다시 되짚어 내려오는데 저쪽에 하강용 앵커볼트가 두 개 박혀 있고 그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만 허공이 보였다. 그러니까 암장 꼭대기를 지나 더 위로 올라갔다 내려온 것이었다. 이분들도 똑같은 경로를 밟으셨다. 소공원에서 나에게 산행 시작할 용기를 주었던, 저 위 산 속에서 어른거리던 랜턴 불빛의 주인공이 이 분들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소토왕골 계곡길 치고는 위치가 너무 높다 싶었다.
얼른 올라가서 높은 데서 일출을 보는 게 목표라 하신다. 이 시간이면 일출은 포기하고 그냥 밝을 때를 기다렸다 계곡 감상하면서 올라가시는 게 더 나을텐데.... 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지만, 걸음을 재촉하는 그분들의 "같이 가요" 한 마디에 반사적이고도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 나.
'날 밝은 후 계곡 감상'이 진심이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경치고 뭐고, 그 순간 혼자 있지 않는 게 제일 중요했다.
그 분들과 아무 생각없이 같이 올라가다 어느 순간 물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가 이 폭포 아래를 횡단하고 있었다. 흔히들 '두줄 폭포'라고 부르는 폭포가 이 폭포인가? 아무튼 지난번 왔을 때는 분명히 저 왼쪽으로 우회해서 올라갔었는데 본의 아니게 명당 자리에 저절로 당도했다.
그래도 저 폭포는 계곡 상류에 있어서 그나마 밝을 때 보았으니 다행이다. 소토왕골에 예쁜 포인트들이 많은데 이번엔 진짜 어둠 속에서 올라오느라 거의 제대로 보지 못했다.
차라리 소공원 입구에서 웅크리고 자더라도 좀 더 버티다 올라올걸, 후회 막심이다.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반드시 날 밝은 후 산행하리라.
해가 뜨는 6시 정도 되자 이미 능선에 가까워졌다.
아침 7시 반이 되자 이미 숙자바위에 올라와 버렸다. 오늘 산행 계획의 최고점이 숙자바위인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평소 같으면 억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그 시간에, 벌써 올라와 버리다니.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아서 큰일이다.
숙자바위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 방향(위). 내가 있는 숙자바위 쪽 산그림자가 묘한 모양을 만들었다. 누군가 힘겹게 산을 올라가고 있다. 바위 슬랩을 등반하는 중일까? 어쩐지 저 그림자 사람에 자꾸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그렇게 늘 헐떡이고 힘겨워하면서도 왜 산을 계속 찾아야 하는지, 왜 그렇게 끊임없이 어딘가로 가야하는지, 저 그림자 인간은 말로 풀어 설명해줄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저 사람은 엎드려뻗쳐서 벌을 받고 있는 것도 같다. 끊임없이 산을 올라야 하는 건 혹시 축복이 아니라 형벌일까.
바람이 불어제끼지만 시야는 투명하다. 황철봉이 이상할 정도로 가깝다. 그럴 때가 있다. 아주 맑은 날 설악산은 모든 게 다 너무나 가까워 아기자기해 보인다. 애걔, 설악산이 이렇게 작은 거였어? 그런데 또 다른 어느날 오르면 저기 귀때기청이, 안산이, 황철봉이, 신선봉이, 그렇게 멀어보일 수가 없다. 저 아득하게 먼 곳까지 같은 설악산이라니 말도 안 돼,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모든 건 그냥 나 혼자 이랬다 저랬다 하는 생각일 뿐이다.
점심(?)을 먹고 혼자 삼각대 세워놓고 셀카놀이도 하고, 놀다 놀다 지쳐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같이 올라온 두 부부는 별따 상단을 거쳐 은벽길에 간다고 떠난지 이미 오래였다.
이제 오늘 산행의 목적, 숙자바위 아래 샘터를 확인하고, 가는골 답사를 하러 갈 차례다.
샘터(위)에 도착해 보니 이건 샘터라기보다는 그냥 물이 흐르는 계곡 상단이다.
오래 전 대청봉에서부터 화채능선을 걸어내려와 권금성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간 적이 있다. 출입이 금지된 이후로는 화채능선에 올 기회가 없었으니 오래 전 일이긴 한데, 웬만하면 산길 기억은 잘 하는 편임에도 화채능선 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곳 샘터도 주 등산로 상에 있으니 분명히 왔을 텐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리학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가 곧 잊어버리는 생활 속 많은 일들 중 유독 일부가 오랜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그 일에 좋던 나쁘던 무언가 감정이 붙어서 끈적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감정과 연합된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깊이 새겨지는 것이라 한다. 화채능선이 까맣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그 날 나에게 전혀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는 뜻인가?
설악산에서 아무 감정이 없기는 쉽지 않은데, 그날 날이 흐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거나, 같이 간 사람이 별로(?)였거나..... 아니면 내가 완전 부처님처럼 수면에 아무 물결이 일지 않는 고요하고 평정한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통으로 지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바로 그 날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집선봉 안부에서 또 시간을 때우며 셀카놀이를 하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무서운, 그러니까 무서운 릿지길을 타는, 극도로 건강해 보이는 아저씨들 한 무리가 위에서 내려온다. 소만물상과 망군대로 해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그냥 일반 등산화에다 확보도 없이 망군대 릿지길에 매달려 있는 사진만 봐도 나는 아슬아슬하고 무서워서 엄두가 안 나던데, 이 분들은 그걸 넘어온 것도 모자라 바위마다 올라가서 팔다리를 펼치고 사진 포즈를 잡으신다.
언젠가부터 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 인사를 잘 안 하게 되었다. 예전에 산에 다닐때만 해도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같은 산악인의 동지의식으로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하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서로 국공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경계의 눈길을 먼저 교환한다. 슬픈 일이다.
어쨌든 나는 초행길. 그분들은 망군대 베테랑들인 듯하여 이쪽이 가는골 내려가는 길 맞냐고 했더니 끄덕인다. 조금 전 하다 만 셀카놀이를 마저 하려고 그 사람들 가기를 기다리며 계속 있는데, 어딘가로 갈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한없이 뭉기적대는 나를 그 아저씨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까부터 어디 가지도 않고 여기 한자리에서 계속 뭐하세요?"
드디어 한 명이 물어왔다. 그 사람들 가면 삼각대 세우고 셀카놀이 할 거라고 대답하기는 뭐했다.
"이제부터 하산할 건데 너무 시간도 이르고 내려가면 할 일이 없어서요. 여기서 그냥 놀다 갈 거에요."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그 자리에서 놀다놀다 지쳐 가는골로 하산을 시작했다.
가는골에 그다지 위험한 곳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설악산 골짜기인데 혹시 몰라 30미터짜리 7mm 줄을 챙겨왔다. 4mm 슬링도 30미터 남짓 있으니 여차하면 30미터 벽까지는 하강할 수 있다. 물론 30미터를 하강해야 한다면 그건 암벽등반이지 워킹 산행은 아닐 테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가는골은 직벽이 아니라 너덜이 문제였다. 안부에서 내려서는 초입에 불안정한 돌들이 너덜을 이루고 있어 잘못 디디면 무너지기 일쑤였다. 일행이 있다면 돌을 굴리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할 곳이다.
한동안 계속되는 너덜이 끝나고 난 후는 그냥 좁은 건천이 이어지고, 곧 물을 만나는데 수량은 별로 많지 않다. 가는골이라는 이름답게 그냥 가느다란 골짜기인 것 같다. 일부 계곡 옆으로 난 흙길 빼고는 대부분 계곡치기를 해서 내려가는데 특별히 어려운 곳은 없다. 줄을 가져온 게 민망해질 정도로.
처음으로 만나는 와폭이랄까, 워터파크 슬라이드 비슷한 물길(위). 건너편에 마등령, 세존봉, 장군봉이 보인다.
그냥 이런 분위기(위)가 계속 이어진다. 사람은 끝까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는데, 위쪽 망군대 쪽에서 소리치는 바위꾼들의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아기자기한 물길과 작은 폭포들(위).
이렇게 전혀 아무 어려운 곳 없이 끝나나 하는 순간, 폭포다운 게 드디어 하나 나타났다.
폭포 옆으로 우회로가 형성되어 있어 큰 문제는 없는데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다.
역시 기회 될때마다 쉬면서 내려와도 채 오후 두시가 안 된 시간. 천불동을 만났고 물을 건넜다. 집선봉 안부에서 가는골에 접어들어서부턴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 아기자기한 작은 계곡을 혼자 터덜터덜 걸어내려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천불동 물을 건너니 비선대 산책길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나들이 온 가족들이 멋진 옷을 입고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느릿느릿 평화롭게 오갔다. 아빠 왜 그렇게 빨리 걸어 하는 아이의 칭얼거림과, 엄마 업어줘~ 안돼! 하는 대화가 오늘따라 왠지 특별히 정겨웠다. 아까 저 위 집선봉에서 만난 건강하고 무서운 바위꾼 아저씨들과 대비가 되어 그런가?
설악산은 늘 산행 전에 바짝 긴장되고, 일단 산에 들어가면 마음이 더없이 평화롭고 편안해진다. 신기한 일이다.
아, 물 흐르는 깜깜한 계곡은 그 평화로움에서 예외다.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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