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에서 국공에게 딱지를 - 2022년 7월
애초에 무언가 절제하거나 억누르는 데에 그다지 재주가 없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못 참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홀로 있는 깊은 밤 강렬하게 나를 휘감아오는 본능 즉 야식에의 욕망이요, 다른 하나는 돌아오는 주말 설악산에 반드시 가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하고도 허전한 목마름이다.
야식 욕구는 이성을 잠시 마비시킬 정도로 강하긴 해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내가 간밤에 뭐에 씌어서 그랬을까 하는 어리둥절함(참은 경우), 혹은 후회(먹은 경우)와 함께 말끔히 사라진다. 그런데 설악산 욕구는 그보다 훨씬 빈도도 덜하고 정도도 은근한데 사라지기는 커녕 날이 지날수록 점점 농도가 진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설악산 중에서도 특히 북주능, 혹은 북설악에 가고 싶다는 유혹이 가장 참기 어렵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미시령-마등령 길을 처음 다녀온 어느해 가을 이후 황철봉의 사막 같은 황량한 너덜지대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스물 여섯의 어느 여름날 온종일 길을 찾으며 저항령 계곡을 혼자 올라가던 그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마침내 능선에 가까이 다가갔을때 저녁 어스름 속에 나를 굽어보던 황철봉 바위벽의 압도적인 위압감은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종교 체험 비슷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엔 큰 문제가 있다. 하필이면 원수 집안의 딸과 사랑에 빠졌던 로미오처럼 - 물론 나를 로미오에 빗대는 게 매우 부적절한 비유임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 하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곳, 마등령 이북의 북설악은 전부 출입금지 지역이다.
처음엔 몇년간 등산로를 쉬게 한다는 명분의 휴식년제였다. 그런다고 전혀 안 갔던 건 솔직히 아니지만 정말 이따금씩만 눈치보며 다녔었다. 그렇게 15년간 휴식년제 해제를 기다렸다. 1991년에 도입된 휴식년제에 첫해부터 지정됐던 북설악은 기간 연장, 연장을 거듭하더니, 2005년 아예 "비법정탐방로"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영원히 금지되어 버렸다. 설악산에선 지정된 길(법정탐방로)로만 다녀야 하고 그 외에는 전부 길이 아니니 갈 수 없단다. 한시적으로 이용이 금지됐던 길에서 이젠 아예 길도 아닌 걸로 격하되어 버렸고, 그렇게 한 번 ‘없어진’ 길은 그로부터 20년이 가까워오도록 다시 생겨날 기미가 없다.
우리 선조들이 수천년간 지키고 물려온 이 땅을 알고 향유하는 것이 한국인으로 태어난 천부의 권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산에 난 길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그리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대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나라에서 길을 깔아주고 보호/규제하는 '탐방'도 좋지만 산악인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산에 갈 수 있는 방법도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에서의 도전을 합법적으로 할 수 없다는 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연보호와의 현명한 공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뭐,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많다는 건 알고 있다.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법규가 그렇다니 뻔뻔하게 대놓고 다닐 수는 없다. 신선봉에 마지막 간 것이 최소한 15년은 되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것 아닐까? 신선봉으로 향하는 아침, 그다지 양심에 거리낌은 없다.
"아니, 저게 뭐야?"
동서울 발 첫차를 타고 용대리 삼거리에 내렸다. 휴가철이 시작되어 생각보다 차가 많이 밀렸다.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오전 9시 30분 경. 우리를 내려준 버스가 떠나가고 뒤를 돌아본 순간 형관이가 비명보단 약하지만 탄성보다는 강한 외침을 내뱉는다.
용대리 매바위 인공폭포가 가동중이었다. 아니 세상에 저런 폭포가 다 있었나 깜짝 놀란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저게 자연 폭포일 리는 없다. 너무 인위적인 티가 나게 만들어서 별로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급 고기집에서 본 인공폭포보다 부자연스럽다.
야 저게 설마 진짜 폭포겠냐,라고 말하고 싶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처음 보았을 땐 놀랐었다. 그래서 한 템포 늦추고 평이한 톤으로 대답했다. 저거? 인공폭포야.
"아아~~ 그렇지? 깜짝 놀랐네."
날씨는 흐리다. 흐리고 비오는 주말의 연속이다.
설악산 신선봉, 아니 신선봉보다 상봉에 꼭 가고 싶었다. 벌써 오래 전 얘기지만 막연히 어딘가 가고 싶을 때면 차를 몰고 미시령 휴게소에 가곤 했었다. 한방차를 싫어하는 나인데 이상하게 미시령 휴게소의 십전대보탕이 맛있었고 미시령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속초가 멋졌으며 설악산 상봉과 황철봉 사이 공간에 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있다가 살짝 휴게소 뒤 철조망을 넘어서 저 위 봉우리까지 다녀오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만나던 여자와 헤어지고 실연에 괴로워하던 어느 여름날도 그랬다. 처음엔 휴게소 뒤 봉우리였던 목표점이 화암사 갈림길 샘터로, 상봉 정상으로 계속 연장되었고, 상봉의 돌 위에 앉으니 바람이 시원했다. 그 지나가는 바람에게 말을 걸었다. 헤어진 그녀에 대해, 그리고 그동안 내가 했던 바보짓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해 주었다. 잘 들어봐. OO라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야......
바람에게 말을 건네네 어쩌네 하는 표현은 글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의 간지럽고 낭만적인 수사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인생 최고의 오글거리는 기억이지만 그땐 진지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던 것 같다. 설악산에게 고백하고, 설악산에 다 털어버리고 돌아간단 기분이 들었다.
그 후에도 상봉에 간 적이 있을 텐데 기억이 흐릿하다. 어쨌든 이제 다시 상봉에 간다. 용대리에서 시작하여 마장터, 대간령, 신선봉, 상봉을 거쳐 미시령으로 가되, 미시령에서 단속에 걸릴 수 있으니 그 전 샘터에서 좌회전하여 신선대, 화암사로 하산하는 계획이다.
못 간다던 형관이가 전날 갑자기 같이 가자고 연락해 왔다. 혼자 상봉에 가면 너무 기분이 오글오글했을지도 모르는데 반가운 일이다. 미국 출장서 돌아온 지 사흘 밖에 안 되었다는데 시차를 무릅쓰고 함께 가는 것도 모자라 주먹밥 도시락까지 싸 온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박달나무 쉼터 뒤의 계곡물이 꽤 불어 있었다. 신발을 벗고 기우뚱거리며 겨우 물을 건넜다. 사실 계곡을 건널 땐 신발을 벗지 않는 게 정석이라지만 산행 시작부터 젖은 신발로 다니기는 싫었다.
대간령으로 이어지는 계곡길은 정말이지 명품 계곡길이다. 산을 별로 다니지 않은 사람에게 계곡 산책을 권한다면 바로 이곳인 것 같다. 넉넉한 수량, 경사도 별로 없는 순한 길, 햇빛을 걸러주는 시원한 숲, 이따금 징검다리를 밟고 물을 건너가는 재미, 심지어 국립공원 구역도 아니어서 합법적으로 갈 수 있다. 입구에 군부대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쓰여 있긴 하지만 고성군에서 사람들에게 방문을 권하는 둘레길이기도 하니 그 정도면 충분히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다.
그렇게, 시키는대로 대간령(큰새이령)에 이르러 좌회전하여 진부령으로 가면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합법적인 명품 등산길의 완성이다. 그 지점에서 굳이 우회전하여 나무 울타리를 넘어가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허용되는 것과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운무가 잔뜩 끼었다. 모처럼 온 신선봉 코스에 보이는 것이 없다니. 이러면 다음에 또 와야만 하는가.....
급경사를 올랐다.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며 겨우 헬기장에 도착해서 그 자리에 널부러졌다. 역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참 숨을 진정시키는데 숲속이 부시럭거리더니 우리보다 연배가 높아 보이는 어떤 분이 엄청나게 빠르고 날렵한 걸음으로 척척척 올라오신다. 그냥 한 눈에 봐도 몸매가 날렵하고 산 깨나 다니신 분이다.
인사를 교환한 후 물었다.
"어느 쪽으로 가세요? 화암사로 가시나요?"
"아뇨. 미시령이요."
"미시령이요? 그쪽으로 가면 국공한테 걸리지 않아요? 저희는 걸릴까봐 상봉에서 화암사로 갈까 하는데."
"아유, 걸리긴요. 미시령 다 가서 막판에 옆으로 돌아가면 되지. 뭐하러 화암사까지 그 먼길을 가요? 미시령으로 내려가면 바론데."
뭔가 경험에서 나오는 포스가 넘친다. 사실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 비탐 산행을, 특히 최근 몇 년 단속이 강화된 이후 그렇게까지 많이 해본 건 아니다. 숨을 고르며 땅바닥에 쭈그리고 있던 우리가, 자리에 앉을 생각도 없이 당당히 서 있는 그분을 자연스레 위쪽으로 우러러보며 약간 경의의 눈길을 보내자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신다.
"국공 만나면, 화암사에서 신선대 왔다가 잠깐 상봉 구경하고 싶어서 올라왔는데 방향을 잃었다고 하세요."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한 설명 - 신선대는 국립공원 경계 밖이어서 산행금지 지역이 아니다.)
그게 과연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그런 말이 통할까 곰곰 머리속으로 생각해보고 있는데 계속 팁을 알려 주신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면 걔네들이 봐 주기도 해요. 불쌍한 척 말만 잘 하면 돼요. 아 그리고 단체면 몰라도 한두명 다니는 건 굳이 안 잡아요."
조금 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왔으면서 땀도 안 흘리는 그 베테랑 산꾼은, 자리에 한번 앉지도 않고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헬기장을 뒤로 한 채 하얀 운무 속으로 척척척 걸어서 사라져갔다.
대간령에서 헬기장까지 너무 무리하게 올라왔던 우리는 그 후에도 한참을 쉬고 먹고 한 후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조금씩 너덜길이 나오더니, 언제 왔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신선봉에 도착했다. 그 사이 날씨가 갑자기 바뀌는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한 15미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저쪽에서 들려오는 몇 명의 발걸음과 대화 소리. 불과 이삼십 미터? 소리는 가까운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산에서, 특히 설악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설악산을 사랑한다는 동지 의식 같은 게 발동하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보이지도 않는 그들을 향해서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라고. 그러자 허연 운무로부터 답이 돌아왔다.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입니다."
그쪽인 거 뻔히 아는데 왜 굳이 반복적으로 방향을 알려주는지 의아했다. 드디어 사람이 눈에 보일만큼 가까워졌을 때에도 나는 상황 파악을 미처 하지 못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나왔습니다. 자연공원법을 위반하셨습니다. 법정탐방로가 아니라는 거, 알고 오셨죠?"
세상에. 등산로 입구도 아니고 사람이라곤 하루에 한 명 만날까말까 하는 그 인적 없는, 게다가 날씨도 안 좋은 날 신선봉 꼭대기에 국공 직원이 지키고 있다니.
아까 베테랑 산꾼이 알려준 팁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렇게 억지 논리를 펴는 게 구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차피 산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벌금을 무릅쓴다고 각오를 했었다. 발뺌하긴 어려웠다.
"네."
"선생님은 비법정탐방로 출입을 위반하셨으므로 과태료 처분을 받으시게 됩니다. 신분증 주세요."
국공 직원은 세 명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들도 산을 좋아하니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취직했을 것이고 나는 그저 산이 좋아서 온 사람일 뿐인데, 참 어색했다. 그래서인지 고압적 태도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셋 중 가장 우두머리인 듯한 직원이 듣기 좋은 말을 해 주었다.
"이쪽 길을 개방해 달라는 민원이 많아서 실태 조사와 단속을 겸해서 저희 팀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개방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한 번 기다려 보세요. 미래는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한 5년만 기다려 보세요."
실태 조사를 이미 하고 있는데 무려 5년? 그리고 그때 가서 개방된다 해도 생각보다 그다지 기쁜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법이 아니라 그때그때 가변하는 인간의 법을 산에서 적용받고 싶지는 않다.
부하 직원이 종이에 뭘 한참 쓰는 동안 할 일도 없고 겸연쩍기도 하고, 그래서 괜히 아무 말이나 했다.
"오늘 주말인데 사람은 없네요. 아까 한 명 딱 만나고는 아무도 없어요.”
"아, 그 연세 좀 드신, 할아버지 말씀하시는 거에요?"
음, 산꾼이 우리보다 나이가 많이 보이긴 했지만 할아버지로 불릴 만한 나이는 아닌 것 같았는데.
"네. 빨간 배낭 멘 사람."
"맞아요. 그 분 한참 전에 미시령 쪽으로 지나가셨어요."
"아 벌써 가셨구나. 나이가 많으신진 잘 모르겠는데 아까 보니까 엄청 잘 걸으시더라구요."
"그래요? 잘 걸어요? 그 분 다리 다쳤다고 절뚝절뚝 절면서 지쳐서 가시던데요."
하마터면 조금 웃을 뻔했다. 불쌍한 척을 다리 절뚝이는 걸로 했음이 분명하다. 오죽 힘들게 보였으면 할아버지라고 할까. 물론 다리를 진짜로 다치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지만 크게 경사가 있는 길도 아니고, 십중팔구 연기였으리라 확신한다.
그 절뚝임이 먹혀서 산꾼은 과연 국공으로부터 무사히 빠져나갔을까? 물어보진 않았다.
이윽고 종이에 쓰기를 다 마친 직원이 우리 두 사람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우두머리가 다시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되셨으니까 계획한 대로 산행 끝까지 하시고요,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그런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형관이가 물었다.
"그런데 뭐 영수증(?)이나 무슨 종이 같은 건 안 주시나요?"
"네. 이건 그런 게 원래 없습니다. 무슨무슨 법에 의해.... 무슨무슨 규정상.... 단속되신 분에게 따로 드리는 건 없습니다."
"그러면 가다가 또 국공 선생님들을 만나면 어떡하죠? 아무 증빙 같은 게 없으면.... 딱지를 두번 뗄 순 없잖아요."
"그러면 이미 단속됐다고 얘기하시면 됩니다. 제 이름 OOO 팀장이라고 얘기하시면 될 겁니다."
음... 무언가 시스템이 허술한데. 뭐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한다.
신분증을 챙기고 상봉 쪽으로 향하는데 뭔가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다. 이제 적어도 오늘은 어딜 가도 상관없는 면허증을 얻은 셈이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가고 싶은 데가 많은데, 미시령까지밖에 갈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다.
과태료는 10만원. 교통 범칙금과 마찬가지로 조기에 납부하면 감면 받아서 7만원인가 한다고 한다.
그런데 하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겼을까. 신선봉으로부터 너덜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열린 하늘이 평소보다 훨씬 더 고맙고 감격스러운 것은 설마 엑스트라로 지출한 10만원이 생각나서는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상봉에 올랐다.
오랜만에 찾은 상봉. 그날의 뜨겁던 태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하루가 펼쳐져 있었다.
상봉을 벗어나자 다시 짙은 구름이 몰려왔고, 이번엔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산신령이 나올 것 같은 숲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시간도 늦었다. 굳이 화암사로 이어지는 바윗길을 갈 필요는 없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우리는 미시령을 향해 직진했다.
비는 점점 더 세게 내리는데, 미시령을 코앞에 두고 어딘가 무서워보이는 쇠기둥이 나타났다.
아무리 이미 단속된 사람이라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는데, 형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쭉 걸어간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자 그 순간 카메라 위 불이 번쩍번쩍, 무서운 경보음이 삐삐삐삐 울려퍼진다. 이제 아무 상관없다는 걸 머릿속으로야 알지만 본능적으로 경보음에 움찔하는데 이 친구는 아무 기색 없이 당당하게 걸어간다. 나보다 담력이 더 세거나 의연한 것이 분명하다.
걸어가는 형관이의 동선을 따라 카메라 각도가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나의 상상일지도). 아 이 무슨 산 속의 디스토피아인가.
철조망 아래 개구멍을 찾느라 한참 걸렸다. 기어나오니 젖은 흙으로 옷이 흙투성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로등 켜진 미시령.
넓은 주차장과 복잡한 구조의 휴게소 건물은 온데간데 없고 흙으로 메꾸어져 있다. 그래도 속초 방향의 주차장 울타리만은 아직 그대로 남아 기억 속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이제 십전대보탕은 없지만, 불꺼진 미시령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자판기가 따뜻한 음료를 팔고 있다.
설악에 대한 나의 열정이 아주 많이 묻어 있는 곳이다.
2022. 9. 30.
이 산행의 gpx 기록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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