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죽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의 늦저녁에

by ideal

위로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 적막을 깨는 것은 분주한 세탁기와 싸구려 위스키였다.


이른 아침, 나를 내려다보시며 근엄하게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이제 그만 정신 차려라."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거실로 나갔을 때 마주한 것은 할아버지였다. 조금은 생소한 사람. 그러나 그의 앞에 놓인 익숙한 음식과 향, 그리고 술. 아버지는 절을 두어 번 하시곤 내게 손짓했다.


납골당에 모신 할머니를 찾아뵌 적이 있다. 가족들은 유골함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괜스레 안치단 유리를 쓰다듬거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훔치곤 했다.


두 사람은 내가 너무나도 어린 때에 세상을 떠났다. 해외에 살았던 터라 만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아버지에겐 그를 기른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지금에야 그 행동들을 온전히 이해한다. 제사상에 생전 좋아하셨던 음식을 올리고, 납골당 속 사진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 후회의 아픔, 그리움의 슬픔, 감사함과 미안함 그 끝에는 사랑.


너의 거친 호흡에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그 고통을 끝내주고 싶었다. 사후에도 너를 기다릴 세계가 있을 것이라 자기기인했다. 나는 그 생각을 끝내 사랑이라는 형태로 빚어 너의 앞에 던져두었다.


아내는 죽음으로 내 마음에 뒤엉킨 감정을 새겼다. 그것을 숙제처럼 풀어야 한다. 살아가며 다가올 수많은 순간에 습관처럼 가정할 것이다. "아내였다면 이 상황에서..." 나는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당신을 살려두겠지.


나에게 아내가 좋아하던 것을 뒤늦게 대입해 본다. 묵직한 샌달우드향을 지운다. 포근한 코튼향으로 방을 환기시킨다. 그만 그 향을 또 떠올린다. 달콤하면서도 조금은 쌉싸름한 향.

날이 좋으면 자전거를 탄다. 바람을 가르며 예쁜 것들을 눈에 담아본다. 그만 또 떠오르는 그날들.

여상스럽지 않게 과일을 얹은 피자를 먹는다. 열기를 머금은 달콤함을 인내한다. 너를 살려두기 위해 오롯이.


우리는 죽음에 오래 슬퍼하지 않는다. 슬픔을 거두고 기억할 뿐이다. 어쩌면 더는 슬픔을 꺼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아내가 남긴 것을 부단히 풀어가겠다. 그로 인해 깨닫는 것을 기억하며 오래도록 살려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