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젓해진 밤냥이
밤색. 그보다 조금은 더 진한 회색을 띠는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그 밤냥이를 매일같이 찾아 나섰다. 때론 직접 찾아오던 그 아이는 내 삶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간식을 주고, 놀아주는 것이 일과의 마침표였다.
여유가 없어서일까, 나는 몇 달간 아이의 흔적을 좇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다.
쉽사리 잊히지 않길 바라던 찰나, 아이는 나를 찾아주었다. 조금은 의젓해진 모습으로.
잊지 않았다는 듯, 나의 손길을 포용했다. 들뜬 마음에 강아지풀을 꺾어 앞에 흔들어댔다. 정신 팔린 고양이 앞에 밀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9월엔 반드시 따겠다던 운전면허, 오늘 따고 왔어. 그것도 단 10일 만에 합격했어. 꼭 자랑하고 싶더라."
"회사는... 모르겠다. 하루하루 버텨낸다는 표현이 적당하려나."
"참, 이사를 고민하고 있어. 혜화에서 한성대입구역 사이, 4호선 근처로. 처음부터 거기에 터를 잡았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생각하는 대로 자신 있게 얘기하고, 그 말에 살을 붙였어. 그랬던 내가 요즘은... 자꾸만 말을 삼키게 되더라. 나이가 든 걸까? 그래서 사람 만나는 일을 줄이고 있어. 나름 편한 것도 있더라고."
"연차를 쓰고 5일간 쉬었어. 그리곤 집에서만 있었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쉼이 필요했나? 너는 이렇게나 의젓해진 반면... 나태해진 건가.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무응답. 그저 우주를 담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최대한 너의 목소리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