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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eal Jun 20. 2024

어제와 오늘 사이

2022.07.10

어제는 평소 안 하던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뭐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너무 좋았습니다. 알게 된 지 한 달도 안 된 밴드의 공연에 찾아가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연주에 몸을 맡겼습니다. 너무 흥겨워 엉덩이를 흔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저는 분명 절제하고 있었습니다. 앉아서 관람하는 공연장에선 원래 제가 음악을 즐기는 방식대로 날뛰면 민폐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래 밴드 음악을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축제 무대는 매번 멋진 친구들이 장식했었고, 그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기에 그들의 합주를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 가깝게 지냈다는 것은 주관적이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드럼을 치는 친구는 소심한 성격 탓에 조용하게 학교생활을 했었으나, 무대에 올라서서 드럼 스틱을 손에 쥘 때면 그의 얼굴에는 무한한 자신감이 넘쳐흘렀습니다. 물론 그 모습에 반한 여학우는 없었지만요. 베이스 기타를 치는 친구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뒤덮일 정도로 현을 튕겼습니다. 집에서도, 교실에서도, 음악실에서도. 아침에도,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그리고 방과 후에도. 그 피나는 노력은 오로지 그의 취미였습니다. 음악을 하며 살 거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군인을 하고 있거든요. 군악대도 아닙니다. 그는 순수하게 군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보컬을 맡았던 친구는 아직도 음악을 합니다. 일렉 기타도 좋아했던 그는 기타도 치고, 노래도 했습니다. 목소리가 매력적이기에 저는 그의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무대에 올라서면 늘 음 이탈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지만... 그래도 노래는 너무 잘 했습니다. 기타를 맡았던 친구는 지금 저와 함께 쇠질을 합니다. 운동에 미쳐서 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운이 좋게도 집이 가까워 매일 같이 운동을 합니다. 이 친구도 기타를 참 잘 쳤어요. 그리고 잘생기기도 해서 여심을 매번 울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친구를 쟁취하기 위해 맞짱까지 뜨는 여학생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한강을 바라보며 다리 위를 걸었습니다. 물결에 비치는 햇살은 아름답게 쪼개지고 있었습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부드러운 손, 그리고 미소. 사랑옵다는 생각에 바보처럼 계속 웃었습니다. 이 아이가 아니라면 난 방구석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강물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토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진 나머지 근처에 있던 용산역에 들어가 맛있는 찜닭을 먹고, 종각으로 이동해 그녀와 소주를 한잔했습니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시간을 인지하지 못해 막차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여자친구는 집으로 돌아갈 버스가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이 피곤해 보이는 그녀가 걱정됐습니다. 저는 택시를 타는 것이 어떻냐는 의견을 냈지만 그녀의 존경스러운 경제관념에게 기각당했고, 결국 그녀는 버스를 타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아까 소주를 한잔했다고 했는데,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둘이서 두 병을 마셨습니다. 술이 달게 느껴지더니 결국 저는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었고, 다행스럽게도 피곤해 보이는 여자친구가 걱정되는 마음에 술이 확 깼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양인데요.


저는 원래 술을 잘 마십니다. 마음 놓고 술을 마시던 새내기 시절에는 주량으로 학과에서 탑을 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학점이 아니라 주량으로 과탑이라니. 놀라운 것은 항상 술자리에서는 제가 뒷정리를 했고, 함께 즐긴 사람들을 각자의 집으로 안내한 이후에 집으로 돌아와 잠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과에서 술을 잘 마신다는 사람들과 엠티를 갔었습니다. 12명이서 소주 3박스를 가지고 가서 남기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간에게 미안하지만 저는 그날 13병을 마시고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침까지 마시며 미리 잠에 든 사람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해놓고 잠에 들었으니, 과탑이라는 존칭이 어울리지 않나요? 자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술 잘 마시는 게 자랑은 아니죠. 그래도 우리 엄마는 술 때문에 저를 걱정하시지는 않습니다.


어제는 친구의 집에서 자기로 약속했었기에 종각역 앞에서 친구 집으로 가는 경로를 검색했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는 끊긴지 오래고, 심야버스는 한 시간이나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택시는 잡힐 생각이 없었고, 걸어서는 2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렇게 해결책을 찾아 머리를 쥐어짜던 중, 따릉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원래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버지의 공장에는 운동장 만한 마당이 있었습니다. 엄마를 따라 아버지의 공장에 갈 때면 형과 함께 마당에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서로 장난을 치며 위험하게 페달을 밟은 탓에 무릎에는 상처와 멍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무래도 형이 과격한 장난에는 깊은 의도가 숨어 있던 것 같습니다. '동생아, 나중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강하게 만들어주마.' 주말이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던 산책로를 따라 형과 함께 자전거를 탔습니다. 형은 제가 가던 길을 자신의 자전거로 가로막으며 저를 벽에 부딪히게 만들기도 했고, 분수대 안으로 빠지게끔 자전거로 밀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 제 끄적임을 읽는 사람은 저희 형을 악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네요. 형의 장난에는 미래의 저를 위한 깊은 속내가 있었다니까요?


종각에서 성수까지의 따릉이 여정은 아름다웠습니다. 종묘, 광장시장, 왕십리 그리고 청계천. 서울의 밤을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하며 제 자신을 되돌아봤습니다. 따릉이를 타다가 집중력을 잃어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 때면, 빨간색 불이 제 생각을 멈추게 했습니다. 신호등이 과연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앞으로 가. 천천히 가. 앞으로 가지 마."일까요? 근데 어제는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신호등은 제게 "주위를 봐. 아름답잖아. 눈에 담아."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소주가 그렇게도 독한 술이었나요? 제가 취한 걸까요? 저는 50분 동안 달려 성수에 도착했고 친구와 함께 집 앞 꼬치집에 들어갔습니다. 시원한 맥주를 크게 한 모금 들이켜고 입을 떼며 말했습니다.

"아까 내가 오면서..."

그리고 순간 멈칫하며 다시 입을 닫았죠. 제 아름다운 경험이 말로써 전달이 되지 않을까 봐 겁이 났습니다. 서울의 밤이 제게 선물한 어제와 오늘 사이의 기억이 평범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며 말했어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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