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deal Jun 13. 2024

노곤노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집에 돌아오면, 방바닥에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가방끈을 따라 전해지는 울림과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읽기 편한 책 한 권, 노트북, 볼펜 그리고 담배.

내가 평소 짊어지는 물리적인 무게다.

겉옷을 옷걸이에 걸어두고, 의자에 몸을 맡긴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안락함에 취한다.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뺀다. 칠흑 같은 허공에 오늘 하루가 희미하게 그려진다.

지하철에서 스쳐간 얼굴, 머리에 주입된 지식, 마주친 사람과의 담소...

이내 피곤함이 몰려온다.

나름 신경 써서 걸쳤던 허물들을 가차없이 벗어낸다.

습관처럼, 보이지도 않는 찝찝함을 씻어낸다.

거품 알갱이와 따가운 물줄기. 물의 온도는 당연하다는 듯, 오늘도 새롭다.

조금씩, 아주 살살, 수도꼭지를 좌로 우로 건드려본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바짝 말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물기가 아쉽거나, 귀찮기에 조금은 젖은 채로 내버려둔다.

수건은 사실 꼼꼼하지 못하다. 덕분에 살아남은 물방울 몇 마리가 내 등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아이들은 내가 로션을 바르는 사이 서서히 작별한다.

침대에 눕는다. 의자의 안락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도수.

취한다. 아주 오랫동안, 이 포근함에 취하고 싶다.

나는 이 순간에 밀려오는 노곤함이 좋다.

보람찬 하루를 보낸 기분,

온몸의 세포가 뇌에게 알리는 승전보.

매일, 늘, 평생. 내 하루의 끝이 노곤노곤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OO을 찾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