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경찰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사건을 많이 겪었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건은 단연코 생명과 관련된 사건이다. 평범한 사람이 고인을 직접 마주하게 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은 하루에 한 번씩 마주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임순경시절 아파트에서 투신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무섭고 떨리는 마음으로 출동했다. 투신한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더럭 겁부터 났다. 현장에 가보니 아파트 고층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투신을 했고 화단으로 떨어지셨다. 피부는 창백해져 있었다. 화단이 약간의 완충 작용을 해서 신체 훼손은 심하지 않았지만 창백한 피부와 차디찬 살결은 생의 마감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내가 근무를 하며 처음으로 고인을 본 일이었다. 그 현장 분위기는 참으로 무서웠다.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거 자체가 힘들었다. 하지만 구급대원은 할아버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애썼다. 인근 병원으로 후송을 결정했고 경찰관 1인이 구급차에 동승해야 했기에 나도 안으로 뛰어들었다.
구급대원은 신임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흉부압박을 실시했다. 신속하고 빠르게 가야 하는 구급차 내부 상황은 그리 평온하지 않았다. 차량이 좌우로 심하게 쏠릴 때마다 몸의 중심을 잡으며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고 그 와중에도 흉부압박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쯤 달렸을까 그녀가 흉부압박을 잠시 멈추고 나에게 대신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포에 질려있었던 나의 몸은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그녀는 할아버지 팔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달라고 말한 후 다시 압박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겁먹고 구급차 안에서 몸이 선 듯 움직여지지 않았을까. 흉부압박을 하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에게 교체 사인을 보냈을까. 또 행동하지 못한 나를 속으로 얼마나 원망했을까. 생각할수록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녀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오직 생명을 살리겠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임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났다. 10년 동안 마네킹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많이 받아왔다. 최근 '아버지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그 현장에서 아들이 흉부압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신임시절 구급차 안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곧바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외친 후 흉부압박을 실시했다. 실제상황에서 하는 흉부압박은 처음이었지만 그간 마네킹으로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난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흉부압박을 지속했다. 하지만 그 후 병원에서의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요즘 신임경찰관들이 식당이나 거리에서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살렸다는 뉴스기사를 종종 접한다. 그런 기사를 볼 때면 참으로 우리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인재들이다. 이런 인재들이 많이 경찰에 입직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줬으면 한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생명을 살리고 있을 소방관과 경찰관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