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의 성장하는 과정을 볼 때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80대 노인이 된다 한들 50대 자식은 사랑스러운 내 자식, 내 새끼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우리는 이것을 내리사랑이라 말한다.
약 8년 전, 명절에 가장 바쁘다는 고속도로순찰대(속칭 '고순대')에 지원하여 발령받았다. 고속도로를 책임지는 모습이 괜스레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 고기가 금방이라도 익을 듯한 아스팔트, 보이는 거라곤 쌩쌩 달리는 자동차뿐. 자동차 보단 사람을 더 보고 싶어 했던 30대 초반의 젊은 혈기.
내가 왜 고순대를 지원했을까. 남들은 명절이면 언제 고향에 내려갈지, 자가용을 이용할지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어느 고속도로가 가장 정체될지, 어느 구간이 가장 얌체운전이 많을지 걱정하며 괜히 지원했나 후회하고 있을 무렵이였다.
설 연휴가 시작된 늦은 밤, 고속도로 순찰 중 Code 1 알림이 연신 울렸다. Code 1은 2, 3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출동해야 했다. (현재는 Code 0 ~ 4 로 세분화 되었다.)
"중앙분리대 쪽에 할머니가 걸어가고 있다는 신고, 즉시 출동바람" 나와 사수는 신고를 받고 즉시 출동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있는 쪽으로 도착하기 약 1km 훨씬 이전부터 갑자기 사수는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순찰차를 1차로부터 4차로까지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지그재그로 운전을 해댔고 나에게 창문을 열고 경광봉을 흔들라고 지시했다. 사실 선배가 갑자기 왜 이렇게 운전하는지 영문을 몰랐고 운전을 잘 못하는 건지 걱정도 되었지만 다급했던 상황에 그가 운전으로 뭔가를 하고 있구나 정도만 어렴풋이 짐작 할 수 있었다.
신고출동 2분여 만에 1차로를 걷고 있던 할머니를 발견하였고 그 순간 뒤를 돌아보니 1차로부터 4차로 까지 차량들이 순찰차 뒤를 천천히 따라오며 서행하고 있었고 순찰차가 멈추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멈추어주었다. (사건 발생 후 약 10개월 뒤 지그재그로 운행하며 후속 차량을 서행시키는 행위를 '트래픽 브레이크' 라고 명명하고 국내에 정식 도입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중앙분리대 1차로 쪽으로 걸어가고 계셨고 큰일이 발생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할머니를 순찰차 뒷자리에 안전하게 탑승시킨 후 상황은 일단락되었고 순찰차 안에서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할머니 고속도로에 왜 걷고 계셨어요?, 어디 가시던 길이셨어요?"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씀하셨다. "설날이어서 우리 큰 아들, 작은 아들한테 줄 떡 사러 나왔지" 할머니의 대답을 들은 후 잠시 뭉클하였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고속도로를 걷고 계시는 것은 이상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목에 걸린 치매환자 신분증과 폴더폰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 휴대전화를 통해서 치매할머니를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인계할 수 있었다.
그 후 이 사건은 뉴스로 보도까지 되며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치매할머니의 아들에 대한 내리사랑, 자식들 떡하나라도 더 사주고 싶은 그 심정은 아무리 치매가 걸렸다 한들 막을 수 없었다.
지금은 나도 결혼하여 아들과 딸이 있다. 철부지 아들과 장난기 많은 딸을 보고 있으면 내 자식들이 분명하다. 우리 아들은 가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 아빠 할아버지 되지 마, 할아버지 되면 미워할 거야"
"왜? 아빠는 할아버지 돼도 우리 아들 사랑할 건데?"
"안돼, 할아버지는 멋지지 않아"
"아~ 그래도 지금은 멋지다는 거네? 고마워 아들"
아직 5살인 우리 아들은 아빠가 할아버지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나이인가 보다. 훗날 내가 할아버지가 되고 우리 아들 말처럼 멋지지 않게 되고 설령 내가 치매가 걸렸어도 지금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않기를 바래본다. 내 자식 떡하나 더 사주고 싶은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