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후 노면이 축축하게 젖어 있어 다소 미끄러웠던 날이었다. 야간근무를 하던 중 시비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어느 아파트 단지 주차장으로 출동했다. 구축 아파트로 아파트 단지 주차장은 이중주차되어 있는 차량들로 가득했다. 그 사이에서 남성 두 명이 마치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듯한 기세로 누가 더 키가 큰지 대보듯 서있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A의 아내는 주차장 빈자리에 주차를 하려고 했는데 이중주차가 되어있는 차량 때문에 주차를 못했고, 앞에 있는 차를 밀어보고자 했으나 힘이 부족해 집에 있던 남편 A를 불렀다. A는 술을 먹다가 내려와서 차를 밀어주다 힘 조절을 못하여 이중주차되어 있던 차량을 힘차게 앞으로 보내버렸고 앞에 서있던 차량과 충돌했다. 그런데 아뿔싸, 그 앞 차량에는 남성 B가 타고 있었고 그렇게 A와 B는 서로 시비가 된 것이었다.
한참 남성들이 으르렁대며 싸우고 있을 때 전화를 받고 이중주차한 차주가 내려왔다.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쓴 여성이었다. A는 여성이 내려오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차를 이따위로 대 놓으면 어떡해?"
아무리봐도 정상적으로 이중주차되어 있는 차량이었고 이 아파트는 이중주차가 허용되고 또 그렇게 주차되어 있는 차량이 눈에 많이 보였기에 A의 말은 자신의 잘못을 큰 목소리를 이용해 감추려는 수작으로 들렸다. 나는 A와 여성이 싸울 수도 있을 거 같아 중간에서 상황을 말릴 태세를 하였지만 여성은 A가 주취상태라는 것을 파악했는지 대꾸도 하지 않고 플래시로 자신의 차량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별거 아닌 듯이 이렇게 한마디 하였다.
"뭐 별것도 아닌 일로 입주민끼리 싸우고 있어? 난 또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내가 여기 15년 살았는데 이렇게 입주민끼리 싸우는 일을 본 적이 없어요"
여성이 이렇게 쿨하게 한마디 하자 주취상태로 으르렁대던 A는 다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고 격해졌던 감정이 다소 수그러젔는지 조용해졌다. 그렇게 쿨한 차주의 한마디로 복잡했던 상황은 한방에 정리가 되었다.
시비, 폭력 등 신고를 받고 출동해 보면 정말 유치하기 그지없는 싸움이 어른들의 싸움이다. 대부분은 어떻게 해서든 사과 한마디 받아보고자 노력한다. 다 필요 없고 사과 한마디만 받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사과를 절대 하지 않는다. 사과를 하더라도 비아냥 거리는 말투로 "뉘에, 뉘에, 잘못했습니다~"이런 식이다. 경찰관도 이쪽 말을 들어보면 이쪽 말이 맞고, 저쪽 말을 들어보면 저쪽 말이 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가려주지 못한다. 보통 이런 경우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경찰관이 내 말에 공감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고, 스스로 격해진 감정이 누그러지도록 만들어주면 자연스레 상황이 정리가 된다.
모든 현장에서는 그 순간 서로의 감정은 격해질 대로 격해져 있고 모두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서로 사과를 하며 좋게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차주의 쿨한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 듯 어쩌면 필요한 것은 넓은 포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소 손해 보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이해하고 포용한다고 모든 일이 다 잘될 수도 없을 노릇이다. 하지만 냉소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가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서로를 이해해 주며 포용하는 마음가짐이 어쩌면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