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부자 될 수 있었는데

by 김현진

눈이 오고 바람이 부니 아랫목에 누워서 옛날 생각을 해본다. 내가 조금만 유식했더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내가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것이 1973년 1월 10일이었다. 목포에서 자랐기에 큰 추위라고 해봤자 영하 5도 이하는 없는 곳에서 살아왔기에 그렇게 추위에 대하여 잘 모르고 살아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논산에 가니 바로 영하 20도라고 하는데 정말 매서운 추위였다. 배는 고픈데 날씨는 춥지, 방한복이라고 주는데 구멍이 숭숭 뚫린 헌 옷이지, 달은 밝은데 빈총 들고 보초 서라고 하지, 정말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말이 실감 나는 논산에서의 전반기, 익산 금마에서의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전남의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에 있던 해안초소에 배치되었다.

그곳은 해안초소로서 내가 군 생활을 마칠 곳이었다. 새까만 졸병이 눈동자만 이리 번뜩 저리 번뜩하면서 눈치만 보는데, 바로 위 선임이 낚싯대를 준다. 얼른 바닷가에 가서 고기를 잡아다 아침밥을 하라는 것이다. 처음인지라 어떻게 할지를 몰라 머뭇거리는데 선임의 말이 세월이 가면 다 알게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해보라고 하면서 오늘 하루만 시범을 보인다고 한다.

논산에서도 조교가 시범을 보인다고 하더니 이곳도 시범 조교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낚싯대를 들고 따라간 바닷가에서 미끼를 잡아 낚시에 끼고 시작한 낚시가 희한하게도 30분이 되기도 전에 쏨팽이 3마리와 볼락 2마리가 잡히는 것이다. 참! 나도 정신 줄 없지만, 물고기 애들도 정신 줄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조교의 시범 아래 시작한 군대 생활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흘러가는데, 송화 꽃가루 날리는 봄날이었다. 매일 아침에 하는 조조 수색을 하기 위하여 도리포 항구 주변을 돌아서 해변을 걸어가는데 무슨 도자기 깨어진 것이 바닷가에 엄청 많이 보였다. 그때 내 생각에는 누가 집안에서 부부싸움이라도 하다가 집 안에 있는 사기그릇을 몽땅 두들겨 깨어서 못쓰게 되니까 이곳 해변에 가져다 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걸어가는데 멀쩡하고 이상 쓸만한 그릇이 보였다. 녹색 비슷한 색깔을 가진 그릇이 흠집이 없이 있었다. 마침 초소에서 키우던 똥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녀석의 밥을 세숫대야에 주었다가 다시 우리가 세수할 때 거기에 물을 담아 세수하고 하였다. 좀 청결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품위 있게 살아가자는 의미에서 우리네 대접보다 약간 큰 그릇을 주워 개밥 그릇으로 하려고 가져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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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에 있던 똥개도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선임들도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나에게 칭찬을 한다. 사실 그때 나는 초소의 똥개하고 엄청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내 밑으로는 그 똥개밖에 없었기에 어떤 때는 구둣발에 체인 내 분풀이의 대상이었고, 또 어떤 때는 내 하소연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미워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다가 또 바닷가에서 그릇 하나를 더 주워올 수 있었다. 초소의 개도 잘 크고 나도 낚시질에 고수가 되어가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갑자기 개장수가 나타나서 초소의 개를 팔라는 것이다. 나는 개하고 워낙 정이 들어서 안 된다고 악을 쓰면서 말하였으나 내로라하는 선임들이 내 말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그 똥개를 팔아버렸다. 나는 억울하고 똥개가 불쌍하여 부엌에 들어가서 헛간의 개집 앞에서 펑펑 울고 있었다. 너무나 불쌍하였다. 아마 우리 개는 이제 팔려 가면 복날 보신탕이 될 것처럼 느껴졌기에 더욱 눈물이 나왔다. 괜히 개새끼하고 정이 드니 이런 날이 오고야 마는구나 하고 슬퍼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나절이 거의 지났을까 하는데 누군가 부엌문을 흔든다. 나는 누군가하고 문을 열어보니 팔려간 똥개가 나를 보고 반갑게 내 품에 달려든다. 나는 흐르던 눈물을 닦고 똥개를 끌어안고 좋아서 부엌에서 한참 뒹굴었다. 그러나 똥개를 본 선임들이 아마 이 개가 개장수 몰래 도망 나온 모양이라고 하면서 개장수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개에게 목줄을 단단히 하여 기둥에 메어 두었다. 나는 또 고민이 되었다. 여기서 개 목줄을 풀어주고 나도 탈영을 하느냐 마느냐 고민하다가 그래도 어찌 사람이 되어서 개 한 마리 때문에 탈영까지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불쌍한 개새끼에게 있는 동안이나 잘해주어야지 하면서 선임들이 밤에 술안주를 만들어 먹으려고 감추어둔 돼지고기까지 조금 베어내어 개에게 주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이 지나도 개장수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은 내가 제대하는 그날까지도 개장수는 초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나중에야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개장수가 개를 사서 갈 때 이상하게 개밥그릇하고 개 물그릇을 달라고 하여 별생각 없이 그냥 주었었다. 그런데 1997년 인가 아마 그때 부근일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무안경찰서 정보계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해제 도리포에서 해저 보물이 나온다고 하여 경찰서장하고 함께 가보게 되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바로 내가 해변에서 주어서 개밥그릇하고, 물그릇 하던 도자기가 보물이라고 한다. 문화재청 사람들이 가격을 어떻게 매길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잠수사들이 계속하여 찾아 올린다. 이것이 보물인 줄 알았으면 그때 슬그머니 감추어두었더라면 지금쯤은 교도소 아니면 부자가 되어있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때야 왜 개장수들이 개를 버리고 그냥 갔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그래도 쓸데없는 욕심이 잘못되면 신세를 망치는데 무식하여 몰랐기에 오늘 이렇게 가만히 그 시절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김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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