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처럼 부드럽고 사근사근한 아름다운 봄도 속절없이 다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매년 봄이면 하당을 넘어가는 절개지에 피어있던 보라색 등나무 꽃과 하얀 아카시아 꽃의 그 향기에 취하였던 추억이 있었는데 올해에도 역시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서 그 향기로운 냄새를 사방으로 퍼 나르고 있다.
하당으로 넘어가는 광장주유소 부근 길목 입암산 잘린 땅의 토사 유출과 바위의 붕괴를 예방 보호하려는 방편으로 생육성이 강한 아카시아와 등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처음에는 두 나무가 잘 크면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거의 20여 년이 넘어가니 문제가 발생한다. 그동안 아카시아를 감싸고 있던 등나무 줄기가 굵어지면서 아카시아의 성장을 방해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등나무의 굵은 줄기는 아카시아의 몸통을 욱죄고 있다.
이번 봄에는 아카시아가 꽃망울이 맺어있기는 하는데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등나무 꽃이 화려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고 있으나 아카시아 꽃은 아직도 어린 꽃 맺음만 가지고 있다. 주변의 등나무가 없는 아카시아는 이미 향기로운 꽃이 만발하여 사방으로 냄새를 퍼 나르고 있으나 등나무 줄기에 목을 졸린 아카시아는 냄새는 고사하고 꽃도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있다.
물론 관리하는 당국의 무관심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잘린 땅에 아카시아와 등나무를 심는 것은 옳은 일이다. 토사의 유출이나 잘린 땅의 붕괴를 막고 재난을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번식력이 좋고, 바위라든가 또는 불시에 낙석이 될 우려가 있는 바위 등을 줄기로 엮어 둘 수 있는 등나무를 심는 것은 옳은 판단이다.
그러나 관리가 되지 않고 자생하도록 방심하는 동안 등나무와 아카시아는 이제 서로 생존경쟁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서로를 죽이려 하고 있다. 식물은 햇빛을 봐야 만이 살 수 있다. 그러기에 서로 높은 곳에서 햇빛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생물 본능이 발휘되고 있다. 등나무는 아카시아를 타고 올라가면서 그 넓은 잎으로 아카시아의 햇빛을 차단한다. 아카시아는 겨우 숨만 쉬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는 등나무가 아카시아를 넘어 길옆의 가로수인 은행나무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저 은행나무도 몇 년이 가기 전에 말라 죽거나 생육을 멈추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입암산을 등산하기 위하여 백년로 초입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입암산 등산로가 나온다. 그곳은 잘린 땅의 위쪽에 해당하기도 하는 곳이다. 그곳을 지나면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동한다. 향기로운 냄새에 등산길을 잠시 접고 아카시아 밑에서 꽃향기에 취하여 성냥갑 같은 하당의 회색 빌딩 숲을 내려다본다. 이곳에는 등나무가 없어서 아카시아가 제대로 생육할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카시아의 하얀 꽃 무더기가 가지마다 탐스럽게 매달려 있으며, 가끔가다 약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꽃 무더기가 흔들리면서 꽃향기는 멀리 퍼져 나간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길게 호흡을 하면서 아카시아의 향기에 취하여 하늘 체육공원 쪽으로 걸어가면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서 잠시 쉬면서 가져온 막걸리를 마시고, 나머지 한 병은 아껴둔다.
입암산 둘레 길은 목포시에서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둘레 길을 따라서 한참을 걸어갔다. 동광농장의 철 지난 벚꽃의 잔해를 살펴보고, 달맞이 공원을 거쳐 갓바위 바로 위에 있는 벤치에서 남은 막걸리 한 병을 마저 마시고 대불항 쪽을 보노라니 많은 외항선이 대불항에 정박하여 화물을 내리고 있다. 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 해상 보행교 부근에서 다시 문학관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걸어오면 통닭집 부근의 야산에서도 아카시아 꽃향기가 목포 앞바다로 번져가면서 항구의 비린내마저도 정화하는 것 같다. 입암산을 좋아하는 나는 이제 멀리 등산을 가지 않는다. 그저 이 조그마하고 아담한 입암산의 매력에 푹 빠져서 아내와 함께 산에 다니는 재미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입암산 잘린 땅에서도 등나무만 없으면 아카시아 역시 식물 중에서 억센 종이기에 문제가 없는데, 등나무보다는 힘이 세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도 아카시아 향기는 너무 좋다. 그래서 벌꿀도 아카시아 꽃 벌꿀을 최상으로 쳐주는 모양이다.
그런저런 별 볼 일 없는 생각을 하면서 바닷가에 새로 생긴 80억짜리 걷기 전용 해변 데크를 걸어 해양유물박물관을 지나, 남해 종말처리장을 지나가는데 평상시에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 이 봄에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하여서인지 머리가 아플 정도의 썩은 냄새는 사라지고 그곳에도 아카시아의 꽃향기가 번져 오고 있었다. 봄은 우리에게 썩은 하수 냄새마저도 이렇게 향기롭게 대처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작은 해변 길을 걸어간다.
- 김현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