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 비 맞은 수탉

by 김현진

수탉은 윤기 나고 화려한 깃털이 일품이다. 그래서 수탉은 옛날부터 왕이라고 하였다. 남자가 성인이 되고 벼슬길에 나가려고 하면 수탉의 머리를 삶아서 주었다. 수탉의 머리 위로 붉은 색채의 기고만장한 붉은 볏은 권력을 상징한다. 옛날에 과거를 보거나, 조정에 출사하게 되면 집안에서 닭의 머리에 있는 볏이 붉고 큰놈으로 골라서 잡아, 닭 머리를 먹고 가라고 하였다. 나도 어린 시절 시골에 살 때 아버지가 닭을 잡아 끓여 온 가족이 둥근 밥상에 앉아서 먹게 되면 꼭 나에게 닭의 머리를 주곤 하였다. 나는 싫다고 하며 먹지 않으려고 하면, 아버지는 꼭 그랬다. 사내자식은 닭 머리에 빨간 볏이 큰 것을 먹어야 큰 벼슬을 한다고 하여 어린 마음에도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닭 머리를 먹어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아버지가 주는 대로 다 먹었던 추억이 있는데, 결국은 38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였어도 높은 벼슬자리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정년퇴직하였다.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항의라도 하면서 따져보려고 하는데 돌아가신 지 30년이 다 되었는데, 묘지에 가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술만 따르고 돌아오고 하였다.

수탉은 십여 마리의 암탉과 많은 병아리를 한꺼번에 다스리며 강인한 체력과 포용력으로 여러 암탉과 병아리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에 안고 어미 노릇을 할 때 수탉은 옆에서 아비의 권위를 한껏 높이며 암탉과 병아리에게 위세를 떨치면서 날개깃을 펼쳤다 오그렸다 하면서 먼지를 일으키며 어른 노릇을 한다. 옛날 시골 농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화기를 통하여 병아리를 생산한다. 어미가 기계인 셈이다. 그래서 수놈은 감별사가 골라서 도태를 시킨다. 수놈이 없이 암놈 병아리만 골라서 알을 받기 위하여 키운다. 그것이 요즘의 양계장이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유정란을 받아 고가로 판매도 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한다. 닭이 대를 계속 이어 갈 수는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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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가난하였던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께서 초가집 마당 귀퉁이에 조그마한 닭장을 짓고 닭을 키우게 되었다. 물론 닭 당번은 내가 되었는데 우리 형제가 5남 1녀인데, 꼭 나를 지정하여 닭 사료를 책임지라는 것이다. 내심 엄청 싫었지만 하는 수 없이 망태를 메고 산과 들로 다니면서 부드러운 풀 따위를 뜯어서 닭의 사료로 사용하고, 막걸리 술도가에 가서는 주정 찌꺼기를 얻어다 사료로 사용하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닭이 주정 찌꺼기를 먹게 되면 눈꺼풀이 풀리고 비틀거리며, 걷기를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던 기억이 난다. 또 엿 공장에 가면 엿을 만들고 남는 찌꺼기가 있었다. 그런 것을 얻어다 닭에게 먹였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결코 공짜는 없다는 것을 그때 나는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난 초등학교 시절 이미 알아주는 딱지치기와 구슬치기의 고수였다. 흙 토담집 좁은 방의 윗목에 나의 조그만 보물창고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항상 딱지와 구슬이 가득 차 있었다. 양조장에 주정 찌꺼기를 얻으러 갈 때는 친구에게 줄 구술과 딱지를 가지고 간다. 그것도 푸짐하게 가지고 간다. 지금 주어도 내일 학교에 가면 도로 내 것이 될 거니까 도무지 아깝지가 않았다. 엿 공장에 갈 때도 마찬가지로 구술과 딱지를 가지고 가서 반드시 주고 왔다. 절대 공짜로 단 한 번도 닭 사료를 얻어온 적이 없다. 반드시 친구에게 구술과 딱지를 주고 오기에 엿 공장이나 양조장 친구는 나를 좋아했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또 딱지와 구술 따먹기가 있다. 물론 내가 모두 따가지고 오기에 나는 걱정이 없었다. 그 친구들도 우리 집에 닭이 살아 있는 한 딱지나 구술이 떨어질 염려가 없으니 그 친구들도 걱정이 없었다.

그렇게 닭을 키우다 보면 봄이 되어 암탉이 알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하게 된다. 야생의 다른 새들은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으며 살아가는데 닭만은 수탉이 절대로 알을 품지를 않는다. 수탉은 그저 아무것도 암탉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으면서 나중에 엄청나게 잘난 척을 한다. 병아리가 태어날 때까지 수탉은 하는 일이 없이 옆에 있다가 병아리가 나와서 세상 구경을 하고 어미와 함께 울 밑에서 개나리꽃이라도 한입 물고 종종걸음을 배울 때쯤 수탉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아비의 권위를 한껏 자랑한다. 날개를 펼치고 회를 치면서 병아리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가고 수탉의 권위를 높인다. 그러다가 솔개라도 하늘에 나타나면 수탉이 구구~~~구하면, 암탉은 날개를 넓게 펼치면서 병아리를 모두 날개 밑으로 감추는 것이다. 그렇게 병아리를 솔개로부터 안전지대로 피신시키며 나름대로 아비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수탉은 그런 맛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양이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데 조금도 도와주지를 않았지만, 수놈으로서의 자존심을 그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회를 치면서 날개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는 그런 수탉이 보고 싶다. 내가 다하지 못했던 수탉의 화려한 율동이 다시 보고 싶다. 수탉의 마음속에도 병아리를 사랑하던 기억이 살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아마 비 오는 날 비 맞은 수탉처럼, 후줄근한 모습으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처량한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남자들이, 정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날개깃을 접고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수탉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오늘 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아내가 말한다. 누가 먼저 저승에 갈지를 모르니 당신도 미리 연습을 해두라고 이야기한다.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마트에 다니고, 모든 살림살이에 대하여 배우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아내가 먼저 죽으면 혼자서 살아가려면 지금부터라도 집안일에 대하여 배우라는 이야기이다. 너무나 현명하고 당연한 말씀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간다면 꼭 그렇게 해야 할까 하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유가 없다고 한다. 누가 먼저 저승에 갈자는 하느님만이 알기에 모두가 준비를 똑같이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 아내 말이 맞는다. 하지만 옛날에는 밤에 잠을 자다가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여보! 밖에 도둑이 들어왔나 봐요.” 하면서 남편의 옆구리를 쿡쿡 쑤셨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된 것 같다. 지난번에 경주에서 지진이 났을 때 아파트 베란다의 선박 위에 있었던 소소한 작은 물체들이 지진의 진동으로 밑으로 덜어지면서 와장창하는 소리가 났는데, 나는 자다가 그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베란다 쪽을 살펴보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어서 다시 잠을 자게 되었지만, 이제는 아내가 소리에 둔감해서인지 잠자다 밖에서 솥단지 깨어지는 소리가 나도 ‘도루랑 도루랑’ 잠만 잘 잔다. 이제 남자의 권위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비 맞은 수탉이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주제에 무슨 말이 그리 많을 수 있는가. 수탉의 품위와 체면은 이제 별 볼일이 없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수탉의 그 화려한 깃털의 색조와 몸놀림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 속에 있는 데도 말이다.

- 김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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