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시인이 살고 있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었구나...
아침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어느날 갑자기 기억상실증에서 깨어나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지난 일들이 하나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우승한 나의 시를 보고 나서 따로 교무실로 부르셨다.
‘너 글짓기 재능이 있으니까 방과 후에 나한테 따로 글짓기 수업을 받도록 해라.’
그후 집에서 매일 하루 한편씩 쓴 유치한(어른의 눈으로 볼때) 시나 수필을 가지고 오면, 선생님은 내가 쓴 글을 봐 줄때마다 항상 격려와 칭찬의 말을 잊지 않으셨다.
그 말은 철없이 어린 나를 고래처럼 춤추게 만들었고 정말 나도 글쓰기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글을 쓴 기억이 난다.
졸업후에 그 담임선생님은 내가 입학한 중학교 문예 담당 국어 선생님에게 직접 찾아와서 나를 소개해 주셨다.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이 아이를 꼭 데리고 나가 달라고..
그후 일년에 2~3차례씩 대구 경북 글짓기 대회에 나갔었고, 나는 항상 운문(시) 부분에서 수상을 했었다.
당시에는 1,2,3등이 아니라 조선시대 장원급제시험처럼 장원,차상,차하,가작으로 나누어서 상을 주었는데 나는 늘 차상, 아니면 차하상을 받았었다.
3년 내내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칭찬에 한참 우쭐해 있었던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또 다른 국어선생님이셨던 우리 담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문득 뜬금없이 말씀하셨다.
‘강과 산이라는 요즘 표현을 쓰지 않고 가람과 뫼 같은 구어 표현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무지와 허세를 드러내는 가식적이고 현학적인 사람이다.’
아무도 그 말뜻을 못 알아들었지만 나 혼자만은 알아들었다.
내가 그때 마지막으로 수상한 글짓기 대회의 시에서 쓴 가람과 뫼라는 표현을 비꼬는 표현임을..
사춘기 어린 소년의 마음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고 눈물이 흘렀다.
그 후로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쓸수가 없었다.
단지 글쓰고 싶은 욕망이 차 오를때면 나만의 일기장에 몰래 글을 쓰곤 했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10여년 전 당시 수필가였던 고등학교 선배님을 만나서 우연히 이 이야기를 했었는데 나의 글을 몇편 읽어 보시더니 자신이 있는 문예지에 수필가로 한번 등단해 보라고 권유하셨다.
그 선배님 덕분에 문예지 2군데에 신인작가로도 등용되고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다시 불타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후에 그 선배님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작고하시게 되었고 불타오르던 장작불에 찬물이 끼얹어지듯이 나도 왠지 글쓰고 싶은 의욕이 사라졌다.
요즘 새로운 독서토론 모임에 가입해서 회원들을 만나고 가끔씩 밴드에 글을 포스팅하면서 문득 기억상실증에서 깨어난것 같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때의 지난 일들이 하나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맞아, 나도 한때는 시인이고 수필가였구나..
세분이 있었어. 한분은 나를 태어나게 해 주셨고 한분은 나를 죽이셨고.
그리고 또 한분은 나를 부활시켰지만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나도 함께 죽었었지.
새로운 독서토론 모임에서 함께 모여서 글을 쓰기로 하였다.
이 모임을 통해 죽은줄 알았던 나의 글쓰기 본능이 다시 꿈틀거림을 느낀다.
그래, 나는 책이나 일상에서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올때면,
이렇게 댐속 봇물이 터져 흐르듯이, 스폰지가 넘치는 물을 뿜어내듯이,
내 몸에서 글이 넘쳐흘러서 나만의 일기장에 혼자라도 몰래 쓰곤 했었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 모임이 중학교 선생님처럼 또 다시 나만의 세계인 일기장 속으로 숨어들게 만들지,
아니면 초등학교 선생님이나 선배님처럼 나를 부활시켜줄지,
그리고 이 큰 강물에 휩쓸려서 마침내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바다로 함께 갈수 있을지..
후자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영원한 내 마음의 스승이셨던 초등학교때 선생님과 선배님 두 분께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