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1927) 아벨 강스 (Abel Gance)
감독: 아벨 강스 (Abel Gance)
제작: 프랑스
개봉: 1927년 4월 7일
러닝타임: 약 330분 (복원판 기준)
형식: 무성영화 / 흑백 (일부 틴트 컬러)
장르: 역사서사 / 인상주의 / 실험적 서사
《나폴레옹》은 한 청년이 혼란의 시대 속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나폴레옹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눈보라 치는 전쟁놀이 속, 다른 아이들은 포기해도 어린 나폴레옹만은 폭풍을 이겨내는 깃발을 놓지 않는다.
그 깃발은 훗날
혁명과 제국의 상징이 된다.
혁명의 회의장에서는 목청을 높여 외치는 군중의 분열과 혼란, 전선에서는 질퍽한 흙 위에 쏟아지는 폭우, 그리고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한 사람.
영화는 나폴레옹의 전기적 사실을 따라가기보다, 그의 감정 속으로 관객을 던진다. 흔들리는 깃발 = 격동의 역사, 격랑 속의 얼굴 = 한 인간의 의지,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집단 감정의 거대한 파도가 된다.
당시 인상주의 영화는 개인의 감정, 내면의 흔들림에 집중했다. 하지만 아벨 강스는 초점을 뒤집었다.
감정을 개인에게서 → 민족으로 확장한다.
카메라는 나폴레옹의 눈물을 비추는 대신 혁명광장의 폭풍 같은 함성을 따라 흔들린다.
깃발의 물결, 군중의 돌진, 파도의 격랑. 감정은 더 이상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시대의 리듬’으로 번져 간다.《조타》가 감정의 미세한 떨림이라면,《나폴레옹》은 감정의 폭풍이다.
아벨 강스는 영화 역사상 최초로 3개의 카메라를 병렬 배치한 ‘폴리비전’ 기법을 사용했다.
세 개의 스크린이 동시에 펼쳐지며, 장면은 마치 파노라마처럼 관객을 감싸 안는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감정의 공간 확장이었다.
또한 손-held 카메라, 이동촬영, 더블 익스포저, 빠른 몽타주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거의 모든 시각 실험을 이 영화에서 선보였다.
강스는 카메라를 ‘감정의 악기’로 다루었고, 그의 촬영은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의 정점을 이룬다.
—폴리비전(Polyvision)과 카메라의 해방
아벨 강스는 영화사 최초로
3개의 카메라를 병렬 배치하여 촬영했다.
세 화면이 동시에 펼쳐진다.
화면은 좌·우·중앙에서 한꺼번에 밀려온다.
관객은 갑자기 ‘전쟁 한가운데’ 서게 된다.
그리고,
1) 손-held 카메라
2) 이동촬영
3) 더블 익스포저
4) 빠른 몽타주
※ 현대 영화의 대부분의 감각적 기법을 이미 1927년에 시도했다. 그는 카메라를 기록 장비가 아닌 감정의 악기로 사용했다.
무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철저히 음악적 구조를 가진다.
장면의 리듬과 편집의 속도가 감정의 멜로디를 대신하며,
혁명과 전쟁의 장면은 마치 시각적 오케스트라처럼 전개된다.
아벨 강스는 영화 편집을 통해 ‘감정의 악보’를 만들었다.
그는 말한다.
“편집은 영화의 심장이다.
그것은 리듬이며,
리듬은 인간의 감정 그 자체다.”
무성영화임에도 장면들은 철저히 음악적 구조를 갖는다.
1) 장면의 속도 = 템포
2) 편집의 리듬 = 박자
3) 이미지의 반복 = 멜로디
※ 폭풍 치던 몽타주가 갑자기 정적이 되는 순간, 마치 음악의 쉼표가 찾아온 듯하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국가 감정의 시각화를 시도한 최초의 영화 중 하나다.
혁명의 깃발, 대중의 함성, 파도의 요동은 모두 ‘집단의 감정’을 형상화한다.
이 영화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서 “공동체의 열망”을 시각화하며,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가 민족적 감정의 미학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벨 강스의 폴리비전은 단순한 기술적 쾌거가 아니라
‘시각적 자유’와 ‘감정적 해방’의 선언이었다.
그는 화면을 물리적으로 확장함으로써, 감정의 한계를 깨뜨리고 시각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혔다.
이후 세르주 에이젠슈타인, 장 콕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 수많은 감독이 강스의 리듬과 스케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전쟁 이후의 유럽이 ‘자기감정과 역사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개인의 감정(《조타》)에서 시작된 인상주의는 여기서 집단적 정체성의 예술로 완성된다.
개인의 감정 → 집단의 열망 → 역사의 리듬
※ 1920년대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는 이 지점에서 하나의 정점을 찍는다.
《나폴레옹》은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감정의 파도 그 자체다.
관객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대신, 리듬과 이미지의 격류 속에 잠긴다.
나폴레옹의 얼굴 위로 격정의 파도가 덮칠 때, 그것은 한 인간의 야망이 아니라, 시대의 격정이다.
아벨 강스는 말이 아닌 빛과 리듬으로 혁명의 심장을 고동치게 했다.
《조타》의 내면적 슬픔이 ‘침묵의 페미니즘’이었다면,《나폴레옹》의 감정은 ‘폭풍의 인간주의’다.
두 작품은 서로를 비추며 — 감정의 미세한 떨림과 거대한 물결로 —1920년대 프랑스 인상주의의 두 축을 완성한다.
생애: 파리 출생.
초기에는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1910년대부터 영화감독으로 전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직접 체험하며, 인간의 감정과 집단의 비극을 영화로 승화시켰다.
영화관:
“영화는 빛의 교향곡이다.
그리고 감정은 그 교향곡의 리듬이다.”
그는 영화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감정의 리듬으로 세상을 지휘하는 예술’ 임을 믿었다.
영향력: 강스의 리듬 미학은 훗날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Apocalypse Now》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아벨 강스는 인간의 내면과 역사를 하나의 리듬으로 엮으며, 영화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진동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타》가 여성의 내면적 자유를 말한다면, 《나폴레옹》은 집단의 자유, 인간의 영혼을 노래한다.
1920년대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완성된다 — 하나는 조용한 감정의 물결로, 다른 하나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의 서사로.《나폴레옹》은 감정의 리듬을 집단의 교향으로 확장한 영화적 선언이다.
아벨 강스는 이 영화로 영화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진동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조타》는 개별 내면의 자유,《나폴레옹》은 집단 감정의 자유를 말한다.
어느 감정이든,
영화는 그것을 빛으로 말할 수 있다.
“나는 영화로 혁명을 꿈꿨다.
그리고 그 혁명은 감정에서 시작된다.”
— 아벨 강스
《조타》는 마음속 깊이 감정을 수면 위로 올려 조용한 물결을 만들고,《나폴레옹》은 그 물결을 폭풍으로 키워 역사의 바다로 밀어붙인다.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는 한 사람의 심장 박동이, 한 시대의 심포니가 되는 순간 완성된다.
《나폴레옹》은 1927년의 영화이지만, 지금 우리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다. 뉴스는 매일 혁명처럼 흔들리고, 세상은 피로할 만큼 빠르게 방향을 바꾼다. 그럴 때 이 영화는 묻는다.
“혼란 속에서,
너를 움직이게 하는 감정은 무엇인가?”
《나폴레옹》을 본다는 것은 19세기의 정치를 관람하는 일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전진하겠다’는 마음의 에너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거대한 변화 앞에 주저하는 우리에게
한 개인의 의지가 역사를 흔들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폴리비전 장면에서 세 개의 화면이 동시에 펼쳐질 때, 우리는 깨닫는다.
역사는 거대한 힘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감정이 확장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여전히 유효하다.《나폴레옹》은 과거의 걸작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의 깃발은 어디를 향해 서 있는가?”
‘포모 24 프레임’ Ep.02 : 《나폴레옹》
“감정의 리듬이 역사의 리듬으로 번져가는 순간, 영화는 한 인간의 초상에서 인류의 심포니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