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 룰리》(La Roue, 1923)

《라 룰리》아벨 강스 (Abel Gance)

by 이다연

《라 룰리》

(La Roue, 1923)


감독: 아벨 강스 (Abel Gance)
제작: 프랑스
개봉: 1923년
러닝타임: 원본 약 7시간 → 단축판 약 4시간
형식: 무성영화, 흑백
장르: 드라마 / 인상주의 서사극


영상링크: https://youtu.be/b5J8BsoutFc?si=zHrW4sgD3FGg4VC_


1. 줄거리 요약

《라 룰리》(La Roue, “바퀴”)는 운명과 사랑, 그리고 인간의 고통을 거대한 시적 스케일로 다룬 영화다.


철도 기관사 시스(Sisif)는 한 소녀 노르마(Norma)를 열차 사고 현장에서 구조한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딸로 키우지만, 세월이 흘러 노르마가 자라면서
시스는 그녀에게 금지된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다.

시스의 아들 엘리(Eli) 또한 노르마를 사랑하게 되고,
그들의 운명은 질투와 죄책감, 희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열차의 굉음, 휘몰아치는 눈보라, 끊임없이 회전하는 바퀴의 이미지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바퀴’는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의 순환을 상징하며,
이 영화는 인간 감정의 정점과 몰락을 시각적 시(詩)로 기록한다.


*《라 룰리》(La Roue)*는 프랑스어로 *‘바퀴(The Wheel)’*를 뜻한다.
아벨 강스는 이 단어를 단순한 열차의 바퀴가 아닌, 삶의 순환과 운명,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철학적 메타포로 사용했다.


의미 요약

직접적 의미: 열차의 바퀴로, 산업화와 기계문명의 상징이다.

은유적 의미: 삶의 순환 — 사랑, 고통, 죽음이 반복되는 인간의 운명을 뜻한다. 기계화된 세계 속 인간의 감정 — 차가운 기계의 리듬 속에서도 감정은 멈추지 않음을 보여준다. 시간의 회전 —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지는 끝없는 흐름을 표현한다.


결국 《라 룰리》는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인간이 운명의 바퀴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상징하는 철학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바퀴는 돌고, 인간은 그 위에서 사랑하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난다.”
이 문장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2. 영화적 특징

—왜 중요한가?


1) 감정 편집(Montage of Emotion)의 결정판

아벨 강스는 단순한 시간적 편집이 아니라, 감정의 리듬으로 장면을 구성했다.
슬픔, 격정, 절망의 흐름이 카메라의 움직임과 컷의 속도로 표현된다.

이는 소련의 ‘사상 편집’(Intellectual Montage)과는 다른,
프랑스 인상주의만의 감성적 편집이었다.


2) 시네마틱 리얼리즘과 시적 환상의 결합

실제 철도 현장을 촬영한 리얼리즘적 장면과,
몽환적 조명·이중 노출·빠른 편집이 교차한다.
현실과 감정의 경계가 흐려지며, 화면은 ‘감정의 풍경’으로 변한다.


3) 기계와 인간의 감정적 병치

‘바퀴(La Roue)’는 단순한 철도 바퀴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은유다.
무한히 돌아가는 기계의 리듬은 인간의 욕망과 고통, 그리고 운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아벨 강스는 이를 통해 *‘기계의 시학(Poésie Mécanique)’*을 완성했다.


4) 광학 실험의 선구적 시도

강스는 이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혁신적 촬영기법을 도입했다.

빠른 컷 편집(Quick Cutting)

화면 분할(Split Screen)

이중 노출(Double Exposure)

움직이는 카메라(Mobile Camera)

이후 모든 영화적 표현의 언어가 된 기법들이 이 작품에서 실험되었다.


3. 영화적·문화적 의의


1) 인상주의 영화의 완성형

루이 델뤼크의 《피에스》가 ‘감정의 시각화’를 제시했다면,

《라 룰리》는 그것을 서사 구조 속에서 구현한 첫 장편이다.
감정의 떨림이 이야기 전체의 리듬이 된다.


2) 전후 프랑스의 감정 복원

전쟁 이후 인간성에 대한 회의가 깊어졌던 시대,
강스는 기계 문명과 인간의 영혼을 대립시키며
“기계화된 시대에도 감정은 살아 있다”라고 선언했다.


3) 시적 서사극(Poetic Epic)의 탄생

거대한 규모의 이야기와 섬세한 감정묘사가 공존한다.

이후 장 르누아르, 장 콕토, 앙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
시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감독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4. 영화사적 의의


1) 현대적 편집미학의 탄생

《라 룰리》는 영화 편집의 혁명이라 불린다.
한 장면을 400여 컷으로 분할하는 빠른 편집(Quick Cutting)은
이후 전쟁영화, 액션, 뮤직비디오 편집의 원형이 되었다.


2) ‘시네마의 오페라’

음악적 구조로서의 영화.
감정이 클라이맥스로 고조될수록 화면이 ‘연주’되듯 박진감 있게 편집된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서사적 예술을 넘어 시각적 교향곡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3) 영화적 상징의 확립

바퀴, 기관차, 철도, 굴뚝 연기 —
이 반복적 이미지들은 인간의 숙명, 사회의 기계화,
그리고 사랑의 순환을 은유하는 상징적 언어로 기능한다.


5. 감상평 및 분석

《라 룰리》는 “감정의 기관차”다.
이 영화는 스토리보다 ‘감정의 속도’를 달린다.

카메라가 질주하고, 바퀴가 돌고, 얼굴이 흔들린다.
관객은 단순히 장면을 ‘보는 것’을 넘어서
감정의 폭풍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한편, 금지된 사랑의 죄의식과 희생의 미학은
감정의 격류 속에서도 인간적 고뇌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 작품의 위대함은 바로 그 잔혹한 아름다움에 있다.



6. 감독: 아벨 강스 (Abel Gance, 1889–1981)


생애

프랑스 파리 출생.
연극과 문학을 공부하다가 1910년대 영화감독으로 데뷔.

《라 룰리》, 《나폴레옹》(1927)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기술적 혁신과 감성적 리얼리즘을 결합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영화관

“영화는 움직이는 시(詩)이다.”
— 감정의 리듬과 빛의 조화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

“편집은 인간의 심장 박동이다.”
— 컷의 길이와 리듬을 통해 감정의 고저를 설계했다.


영향력

루이 델뤼크, 르네 클레르와 함께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그의 편집감각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장 르누아르, 타르코프스키, 코폴라 등에 영향을 주었다.


7. 결론

《라 룰리》는 *“감정이 기관차가 되어 달리는 영화”*다.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을 서사와 시각언어로 동시에 구현한
20세기 초 프랑스 영화미학의 결정체다.

루이 델뤼크의 《피에스》가 감정의 정적(靜)을,
르네 클레르의 《엔트렁악》이 리듬의 유희를 그렸다면,
아벨 강스의 《라 룰리》는 감정의 폭발과 순환을 완성했다.

“삶은 멈추지 않는다.
바퀴는 계속 돈다.
그 바퀴 위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울고, 다시 일어난다.”

— 아벨 강스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의 정점

(French Impressionist Cinema, 1918–1929)


1. 개념 정의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는 1918년부터 1929년 사이,
영화를 감정과 리듬의 예술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로 시작된 예술영화운동이다.
이들은 영화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빛과 움직임으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 믿었다.

“영화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리듬이다.”

— 루이 델뤼크 (Louis Delluc)


2. 시대적 배경


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

전쟁의 상처와 정신적 피로 속에서, 프랑스 사회는 깊은 우울과 허무를 겪었다.
당시 예술가들은 산업화·도시화·기계문명 속에서 ‘감성의 회복’을 갈망했다.
독일의 표현주의가 불안과 광기를 형상화했다면,
프랑스 인상주의는 그 반대로, 감정의 떨림과 내면의 리듬을 탐구했다.


② 기술보다 감성

할리우드가 스토리 중심의 대중 영화 산업을 구축하던 시기,
프랑스 예술가들은 “기술보다 감성, 줄거리보다 리듬”을 선택했다.
그들은 문학과 연극을 모방하는 대신, 영화만의 ‘시각 언어’를 찾고자 했다.


3. 주요 미학적 특징


1. 핵심 미학

감정의 리듬 : 서사의 중심이 감정의 흐름

시적 이미지 : 빛, 속도, 반복을 통한 감정의 형상화

리얼리즘과 환상의 결합

기계 문명과 인간성의 대비


2. 대표작

《피에스》(Louis Delluc, 1921) – 감정의 시

《라 룰리》(Abel Gance, 1923) – 감정의 서사

《엔트렁악》(René Clair, 1924) – 리듬의 유희


3. 결론 요약

《라 룰리》는 인상주의 영화운동의 정점에서
감정의 리듬과 시적 서사의 결합을 완성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무성영화의 걸작”이 아니라,
영화가 인간의 감정을 시각으로 노래할 수 있음을 증명한 예술적 선언이다.


4. 대표 감독과 작품


5. 철학적 핵심: 포토제니(Photogénie)


루이 델뤼크는 이렇게 말했다.

“포토제니는 사물이 영화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즉, 카메라가 현실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빛과 감정의 리듬을 통해 현실을 ‘시적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 사상은 훗날 앙드레 바쟁, 로베르 브레송, 장 콕토 등에게 이어져 프랑스 영화미학의 근간이 되었다.


6. 예술적 성취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는 다음과 같은 혁신을 이루었다.

1️⃣ 영화의 자율성 확립
→ 문학·연극·회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영화 자체의 언어를 창조했다.

2️⃣ 편집의 감정화
→ 논리적 연결이 아닌 감정의 연상으로 장면을 이어 붙였다.

3️⃣ 시각적 리듬과 음악의 결합
→ 《엔트렁악》, 《기계의 교향시》 등에서 ‘보이는 음악’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4️⃣ 인간 내면의 영화화
→ 외부 세계가 아닌 내면의 정서를 영화의 중심에 두었다.


7. 문화적·사회적 의미

전후(戰後) 세대의 감정적 회복을 상징했다.

'이성의 시대’를 지나 감성의 예술로 회귀한 흐름이었다.

여성 감독의 적극적 참여로, 여성의 심리와 자유 의식이 영화의 주제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 예술영화의 전통 — 시적 리얼리즘, 누벨바그 — 으로 이어졌다.


8. 영화사적 의의


9. 현대 영화에 미친 영향

앙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시간의 리듬과 내면의 시적 영상.

테렌스 맬릭 – 감정의 빛, 사유의 카메라.

장 르누아르 / 로베르 브레송 / 클로드 르루슈 – 인간 중심의 감정미학.

현대 예술영화와 뮤직비디오 – 시각적 리듬 편집의 원형.

오늘날 ‘슬로 시네마(Slow Cinema)’나 ‘영상시(Visual Poetry)’라 불리는 흐름의 뿌리에는
바로 이 인상주의적 감성의 리듬이 흐르고 있다.


10. 결론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는 *“감정의 시각화, 리듬의 영화화”*라는 비전을 통해
영화 예술의 문법을 새로 썼다.
이들은 이야기의 굴레를 벗어나, 빛으로 감정을 그리고 리듬으로 철학을 말한 시인들이었다.

“카메라가 비추는 순간,
현실은 감정의 빛으로 깨어난다.”

— 루이 델뤼크

참고 작품 목록

《피에스》(Fièvre, 1921, 루이 델뤼크)

《라 룰리》(La Roue, 1923, 아벨 강스)

《조타》(La Souriante Madame Beudet, 1923, 제르멘 뒬락)

《엔트렁악》(Entr’acte, 1924, 르네 클레르)

《기계의 교향시》(Ballet Mécanique, 1924, 퍼넌드 레제)

《세 개의 얼굴을 지닌 유리》(La Glace à trois faces, 1927, 장 엡스탱)


영화 에세이, 고전 영화,

《라 룰리》(La Roue, 1923)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