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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thing special/ 가의도

26. 가의도(加衣島)

by 이다연


바다의 품, 가의도


“섬은 작아도,
바다는 언제나 품어준다.”

가의도에 닿으면
먼저 느껴지는 건 ‘고요’다.
세상의 소음이 한 뼘씩 멀어지고,
파도와 바람이 귓가를 정리한다.


加(가): 더할 가
衣(의): 옷 의

島(도): 섬 도

즉, ‘옷을 더하는 섬’,
바람이 차가울 때,

사람의 어깨에 조용히 외투를 걸쳐주는 섬.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가의도를 “바다의 품”이라 부른다.


1. 가의도의 시작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보령 앞바다의 끝자락,
무인도와 유인도가 어우러진 고요한 바다 위 작은 점.

가의도는 작은 배로만 닿을 수 있다.
물때를 맞추지 못하면 떠날 수도, 돌아올 수도 없다.

섬의 하루는 바다의 시간표에 따라 흘러간다.
그래서 가의도에선 시계를 보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아침이고, 노을이 내리면 저녁이다.


2. 다섯 개의 시선, 다섯 개의 풍경


✅ 바람등대


섬의 북쪽 끝, 오래된 하얀 등대 하나.
바람결에 녹이 슨 철제 난간,
하지만 등불은 여전히 바다를 비춘다.

해 질 녘, 등대 아래서 보면
바다는 구릿빛으로 물들고
갈매기 소리만이 그 위를 스친다.

이곳에서는 침묵마저 아름다운 소리가 된다.


✅ 바위언덕길


가의도는 작지만,
섬 중앙엔 의외로 높은 바위언덕이 있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바람결이 바뀌고,
그 위로 발자국 하나 남기면
금세 바람이 덮어 버린다.

“모래 위엔 흔적이 아니라,
잠시의 존재만 남는다.”

그게 이 섬의 리듬이다.


✅ 해안 숲길


가의도의 숲은 작고 낮다.
짙은 소나무 향과 갯바람이 뒤섞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세상의 방향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보인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괜찮다.
숲이 길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 갯바위의 노인


섬 동쪽 끝 갯바위엔 늘 한 노인이 앉아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조용히 바다를 본다.

가끔 여행자에게 미소 지어 보이지만
그의 시선은 늘 바다 건너 어딘가에 머문다.

섬사람들은 말한다.

“그분은 떠나간 아들을 기다린대요.
바람이 잠잠하면, 아들이 다녀간대요.”

노인은 오늘도 바다에 말을 건넨다.
그리움도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 하늘정원


섬의 가장 높은 언덕에는
풀꽃이 자라는 작은 평지 하나가 있다.
섬사람들은 그곳을 ‘하늘정원’이라 부른다.

바다를 바라보면
수평선 위로 붉은빛이 흘러
세상 끝에 불을 켠 듯하다.

거기 앉아 있으면
시간이 아니라 숨결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3. 가의도 정보 요약


행정구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가의도리

면적: 약 0.86㎢

인구: 약 30여 명 내외 (2025 기준)

특징: 무분별한 개발이 없고, 천혜의 갯벌과 해안선 유지

교통: 오천항 → 가의도(도선, 약 40분 / 물때 따라 변동)

대표 풍경: 바람등대, 하늘정원, 갯바위, 해안숲길

바다의 품 속에서
‘고요’가 가장 큰 사치가 되는 곳.


4. 섬의 삶과 사람들


가의도의 사람들은
바람의 기분을 가장 먼저 읽는다.

아침 바람이 부드러우면 그날은 고기잡이가 잘 되고,
저녁 바람이 거칠면 내일은 배를 묶어둔다.

그들은 말한다.
“섬의 하루는 바다의 기분이야.”

전기 대신 등불을 켜고,
냉장고 대신 바다의 물길을 읽는다.

그 속엔
사람보다 자연이 먼저인 삶의 질서가 있다.


5. 바람의 계절


가의도의 바다는 계절마다 색이 다르다.

봄에는 연푸른 안개,
여름엔 진한 청록의 바다,
가을엔 구릿빛 노을,
겨울엔 잿빛 고요.

그 어느 계절에도
섬은 변하지만 본질은 같았다.

“비워야만 더 크게 담을 수 있다.”
그걸 아는 섬이 바로 가의도였다.


6. Epilogue


해질 무렵, 바람등대에 불이 켜진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낮게 깔리고
하늘엔 별이 하나 둘 떠오른다.

“섬은 작지만, 마음은 넓다.”

바람이 대답한다.

“기억은 바다처럼 흐르고,
돌아올 이유를 남긴다.”


가의도의 밤은 조용하다.
하지만 그 고요 속엔
수많은 파도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


♡ Legend ―

《가의도 바람의 편지》


옛날 옛날,

서해 바다 깊은 곳에 가의도라는 작은 섬이 있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바람과 파도 그리고 갯벌이 만들어낸 수많은 여운이 머물던 섬이었다.


한나라 말기, 큰 뜻을 품고 있던 충신 가의(賈誼)가 있었다.
그는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물러나 바다 건너 셋째 섬에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풍랑은 그의 배를 서해의 어느 작은 섬으로 흘려보냈다.
그 섬이 가의도였고, 그는 그곳에 내려와 바다를 바라보며 수많은 날들을 보냈다.

그의 은둔생활은 긴 세월이었고, 매일 밤 그가 바다에다 던진 돌멩이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리라’는 그의 간절한 약속이었다.

섬사람들은 그의 남긴 발자국을 따라다니며
“돌 하나라도 바다로 떠나면 다시 돌아오리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하여 이 섬엔 전해진다.

돌을 던진 자의 그림자는 바다 위로 사라지지만,
돌이 만든 물결은 언젠가 다시 둥글게 돌아오리라.


여행에세이, 섬, 여행감성

― 《섬 thing Special》 : 《바람이 외투처럼 감싸는 섬, 가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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