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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thing special/ 굴업도

25. 굴업도(屈業島)

by 이다연



바람의 자유, 굴업도


“섬은 작지만,
바람은 크다.”

굴업도는 그런 곳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는 곳.
시간이 머물다가 바람이 데려가는 섬.


屈(굴) : 굽을 굴
業(업) : 업 업(일, 삶, 삶의 흔적)
島(도) : 섬 도


즉, 굽이쳐 흐르는 삶의 흔적이 남은 섬.

굴업도는 섬의 모양이 ‘우묵하다’ 하여
굴(屈) 자를 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바다의 곡선, 모래의 결, 바람의 자국—
모든 것이 부드럽게 굽어 있는 섬.

누군가는 이곳을

“그림 같은 해변이 하루를 감싸는 곳”

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사람이 없어서 더 아름다운 섬”

이라고 기억한다.


1. 굴업도의 시작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배를 타야만 닿을 수 있는 외딴섬.


한동안 군사 보호 구역이었고,
환경보호지역으로 묶여 있었으며,
섬 전체가 사람의 손보다 자연의 손에 더 많이 닿아 있는 곳.


전기도 24시간 들어오지 않는다.
휴대폰 신호도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굴업도의 시간은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흐른다.

이곳에서는 하루가 아니라 ‘순간’을 여행한다.


2. 다섯 개의 시선, 다섯 개의 풍경


서해의 조용한 비밀 — 큰 풀 안 해변


굴업도의 상징 같은 장소.
물결이 잔잔하게 춤추고,
깊지 않은 바다 위로 햇빛이 반사된다.

사람이 없을 때는
해변 전체가 나만의 길이 된다.

발자국 대신,
모래 위엔 바람이 쓴 글씨만 남는다.


✅ 낙조 포인트 — 자연 전망대


해가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을 때,
굴업도는 붉은 바람으로 변한다.

바람은 얼굴을 스치고,
출렁이는 주홍빛 바다는
하루의 모든 선택을 “괜찮아”라고 덮어준다.


✅ 활엽수 숲 — 작은 길 하나


굴업도의 숲은 작고 낮지만
걷다 보면 귀가 더 열리고, 마음이 더 고요해진다.

바람이 나뭇잎을 휘감으면
숲이 아니라 너의 마음이 흔들린다.


✅ 코끼리 바위, 고래뼈 — 자유로움의 상징


굴업도에는 오래전
길을 잃고 해변으로 떠밀려 온

고래의 뼈가 세워져 있다.

사람은 말한다.

“바다가 준 선물이다.”

고래의 뼈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가 되어
자유의 형태를 보여준다.

코끼리 바위

✅ 굴업해변/ 달빛 캠핑


밤이 되면,
바다는 숨을 죽이고
별빛이 섬의 가장자리까지 따라온다.

굴업도의 밤은
불빛이 아니라 어둠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마주한다.


3. 굴업도 정보 요약

행정구역: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

면적: 약 1.9㎢

인구: 10여 명 내외 (실거주 기준)

지형: 해변·사구(모래언덕)·저지대 숲 · 낮은 구릉

교통 : 인천항 → 덕적도(쾌속선) /덕적도 → 굴업도(소형 선박 혹은 도선)


굴업도는 캠핑이 가능하지만,
자연보호 구역이므로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4. 섬의 삶과 사람들


굴업도의 사람들은
소리가 아닌 ‘침묵’을 듣는 법을 배웠다.

바람이 세면,

“오늘은 바다가 마음을 꺼내는 날”

이라고 말하고,

안개가 깔리면,

“섬이 자신을 숨기는 중”

이라고 한다.


이곳의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냉장고 대신 그날의 바다,
시계 대신 해와 바람.

그래서 굴업도의 사람들은
오늘을 사는 법을 알고 있다.


5. 굴업도의 계절


여름엔 푸른 곡선이 살아나고,
가을엔 구릉에 황금빛이 내려앉는다.

겨울은 바람이 주인이고,
봄은 새들의 귀환으로 시작된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어느 계절이든
섬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6. Epilogue


굴업도에서 배를 기다리며
모래 위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떠나는 건
잊는 게 아니야.”


기억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이유를 남기는 것.

그리고 굴업도는
그 이유를 바다 위에 펼쳐 놓는다.


♡ Legend ―

《고래의 꿈》


아주 먼 옛날,
굴업도 근처 바다에 한 마리의 고래가 살았다.

그 고래는 외로웠다.
해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늘 부러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고래는 바람에게 물었다.

“나는 왜 저기 갈 수 없을까?

바람은 대답했다.

“네가 가진 것이 다르게 아름다워서.”

고래는 그 말을 믿어 보았다.

그렇게 바다를 헤엄치던 고래는
마지막에 지쳐 해변으로 밀려왔다.

사람들은 고래의 뼈를 세워
섬의 가장 높은 곳에 두었다.


그 후로 굴업도의 바람은
자주 이렇게 속삭인다.

“자유는,
멀리 가는 게 아니라
너의 방향을 믿는 거야.”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굴업도는 ‘자유의 뼈가 서 있는 섬’이라고.


여행에세이, 섬, 여행감성

― 《섬 thing Special》: 《바람의 자유, 굴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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