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한산도(閑山島)
“섬은 조용하지만,
그 고요 아래에는 치열한 역사가 흐른다.”
한산도에 닿으면
먼저 느껴지는 건 바람의 방향이다.
남해의 물결이 섬을 휘돌며 지나가고,
바다는 이 섬을 마치 오래된 지도를 펼치듯 드러낸다.
한산도는 고요하지만, 그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수백 년의 기억이 바람 속에서 조용히 울리는,
‘이야기가 있는 고요’다.
경상남도 통영 앞바다에 자리한 작은 섬.
그러나 그 중요성만큼은 결코 작지 않다.
1592년,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수군 본영을 두고
조선 수군의 중심을 세웠던 섬.
한산도라는 이름 속에는
‘한가할 閑’ 자가 들어가 있지만
섬의 운명은 결코 한가롭지 않았다.
바다를 건너는 난세 속에서
나라의 존망을 걸고 싸웠던 요충지였다.
그러나 전쟁의 시간조차
이 섬의 바다를 다 지워버리지 못했다.
지금의 한산도는
전설과 고요, 바람과 푸른 능선이 어우러진
남해의 아름다운 섬으로 남아 있다.
한산도의 심장.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지휘하던 본영으로,
붉은 기와의 건물 너머로
남해의 물결이 끝없이 펼쳐진다.
제승당 마루에 서면
누군가의 숨결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그 결기가
바람과 파도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장군이 펼쳤던 학익진 진법.
바다를 내려다보면,
섬의 곡선과 물결의 흐름이
마치 학의 날개처럼 부드럽게 펼쳐진다.
유려하고 잔잔한 바다.
그러나 바로 그 잔잔함이
전쟁의 비약을 만든 힘이었다.
숲길을 따라 걸으면
능선 위로 바람이 넘실거리며 흐른다.
통영의 바다와 징검다리처럼 놓인 섬들,
멀리 거제까지 한눈에 담긴다.
바람은 시끄럽지 않다.
그저 섬의 역사를 조용히 들려주는 해설자 같다.
한산도의 몽돌은
파도와 만나면 맑은 소리를 낸다.
부딪히지 않고, 상처 내지 않고,
서로를 부드럽게 감싸는 소리.
바람이 만든 악보에
바다가 박자를 넣어주는 듯한 풍경이다.
해가 질 무렵 본영터에 서면
붉은빛이 파도 위로 내려앉는다.
전쟁의 기억도, 바람의 소리도
한순간 조용히 가라앉는다.
고요가 완성되는 시간.
한산도는 그 순간을 위해 하루를 견디는 듯하다.
위치: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특징: 이순신 장군 수군 본영, 임진왜란 해전의 중심지
주요 명소: 제승당 / 학익진전시관 / 몽돌해변 / 전망길 / 봉수대
성격: 역사와 자연이 함께 있는 섬, 남해의 대표적 평화·기억 여행지
“고요하지만, 가장 치열했던 시간의 중심에 서 있는 섬.”
한산도 사람들은
바닷길의 변화로 날씨를 읽는다.
물결의 높이, 바람의 방향, 하늘의 색.
옛날엔 수군의 함성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통영과 오가는 배의 물결이
섬의 하루를 잔잔히 흔든다.
섬사람들은 말한다.
“전쟁의 섬이 아니라,
바람이 쉬어가는 섬입니다.”
한산도는 역사를 품고 있지만
그 위에 다시 평화를 겹쳐 올렸다.
그래서 더 깊고, 더 넓다.
봄 — 바람이 부드러운 전령처럼 지나가고
여름 — 바다는 학익진처럼 펼쳐진다
가을 — 전영터 위로 금빛 바람이 흐른다
겨울 — 고요가 한산도를 완전히 덮는다
계절마다 색깔이 달라도
섬이 주는 울림은 늘 같다.
“잊지 말되, 머무르지 말고, 다시 앞으로.”
노을 가까운 시간, 혼자 제승당 마루에 서면
섬 전체가 조용히 숨을 고르는 것 같다.
한산도는 전쟁의 흔적이 남았지만
그 위로 더 깊은 고요를 쌓아 올린 섬.
기억을 품되, 평화로 감싸 안은 섬.
“고요는 잊음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살아남은 시간의 증거다.”
바람은 천천히 불고
바다는 말없이 그 바람을 품는다.
그리고 한산도는
오늘도 묵묵히, 남해의 하늘 아래 서 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어느 여름,
한산섬 앞바다에는 사흘 밤낮 이어지는 바람과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수군 본영이 있던 제승당 마루 위에서
이순신 장군은 지친 몸을 일으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전열은 갖추었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왜선들을 한 번에 꺾을 묘책이 필요했다.
“어떻게 싸워야 모두를 살릴 수 있을까…”
그 밤, 바다는 이상하리만큼 잔잔했다.
바람도, 파도도, 마치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장군은 수루에 올라 홀로 앉아
달빛이 비치는 수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잠들지 못한 채
멀리서 희미한 횃불만 지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달빛이 바다 위를 길게 긁어내리더니
어디선가부터 하얀 물살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 줄, 두 줄, 세 줄…
파도와 물빛이 갈라지며
점점 넓은 모양을 그려냈다.
마치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형상이었다.
머리는 본영 쪽을 향하고,
두 날개는 양옆으로 넓게 퍼져
바다를 감싸 안는 듯했다.
장군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학이 바다를 품었구나…
저 모양대로라면, 가운데로 적을 유인해
양쪽에서 한 번에 감쌀 수 있겠지.”
그 순간,
섬 너머에서 바람 한 줄기가 일어나
수면 위의 학 모양을 스쳐 지나갔다.
달빛에 빛나던 물결은 서서히 풀어지며
다시 평범한 바다가 되었다.
다음 날 새벽,
장군은 장수들을 불러 모아
밤새 머릿속에 그렸던 진법을 설명했다.
“배를 이렇게 벌려 적을 감싸듯 두르되,
형세는 학이 날개를 편 모양과 같을 것이다.”
그 진이 바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학익진(鶴翼陣)*이었다.
이후 한산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남해의 바다는 한동안
조용한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날 이후로
한산섬의 맑은 달빛과 잔잔한 바다를 떠올리며
이야기하곤 했다.
“장군의 지혜도 지혜지만,
달빛 아래 바다가 먼저 길을 보여준 게 아니겠느냐.”
지금도 달이 유난히 밝은 밤이면,
한산도 바다 위 물결 사이로
희미하게 펼쳐진 학의 날개 같은 하얀 물살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그때마다 섬사람들은
바다 쪽을 향해 조용히 인사한다.
“장군, 오늘도 이 바다를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남해의 바다는
예전처럼, 아무 말 없이
그 인사를 받아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