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홍도(紅島)
사람은 가끔,
보지 못한 마음을 더 오래 기억한다.
홍도는 그런 섬이다.
“붉어서 더 깊은 섬.”
“드러나지 않아서 오래 남는 곳.”
홍도는 침묵의 색으로 머무른다.
목포에서 배로 몇 시간,
날씨가 허락해야만 닿는 섬.
지도에는 선명하지만
현실에선 늘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곳.
홍도는 섬이기보다
바다가 잠시 허락한 자리처럼 느껴진다.
배가 접안하면
사람보다 먼저 바람이 내린다.
그리고 그 바람은 말한다.
“천천히 보아도 돼.”
‘홍도(紅島)’라는 이름은
바위가 붉어서 붙었다고도 하고,
노을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그렇다고도 한다.
하지만 섬에 며칠 머물다 보면
그 붉음은 색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된다.
홍도의 붉음은
불타는 색이 아니라
참다가 남은 색이다.
위치: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
특징: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핵심 섬, 천연기념물 제170호
기암괴석과 해무, 접근이 까다로운 외딴섬
주요 명소: 깃대봉 / 홍도해안길 / 홍도등대 / 남문바위 / 홍도항
성격: 드러나지 않아 더 깊은 섬,
풍경보다 침묵이 오래 남는 섬,
보는 여행이 아닌 머무는 기억의 섬
“고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가장 짙게 쌓여 있는 섬.”
섬의 유일한 입구.
사람들은 이곳에서 들어오고 나가지만
홍도는 여기서 시작되지 않는다.
항을 벗어나면
섬은 곧바로 입을 다문다.
홍도의 가장 높은 곳.
맑은 날엔 바다가 열리고,
흐린 날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날이
오히려 더 홍도답다.
운무 속에서
섬은 자기 자신을 숨긴다.
마치 아직 보여줄 준비가 되지 않은 이야기처럼.
바위는 칼처럼 깎여 있고
파도는 수없이 부딪혀도
형태를 바꾸지 못한다.
이곳의 풍경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길을 비추는 곳이 아니라
섬이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켜두는 작은 기억.
등대는 늘 말이 없다.
다만 지나간 배보다
돌아오지 못한 마음을 더 오래 비춘다.
홍도에는 무언가가 많지 않다.
카페도, 편의점도, 선택지도.
대신,
낮게 깔린 안개,
비탈길 끝에 혼자 핀 들꽃,
빨래줄에 걸린 하루의 무게,
그리고
말수가 적은 사람들.
홍도 사람들은 풍경처럼 산다.
설명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는다.
홍도의 밥상은 소박하다.
그러나 한 번 앉으면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말린 생선 한 토막, 묵은 김치,
바다에서 바로 건진 해물.
간은 세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홍도의 음식은
입을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를 납득하게 만든다.
7. 파도보다 깊은 침묵
이 섬에서는 큰 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
웃음도 낮고, 이야기도 짧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엔
수없이 많은 날들이 겹쳐 있다.
폭풍을 견딘 날,
배를 기다리다 돌아선 날,
떠나지 못하고 남은 날들.
홍도는 그 모든 시간을 말없이 쌓아왔다.
홍도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 보려고 하지 마.
남겨두는 것도 여행이야.”
나는 섬 끝 바위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내 안의 어떤 감정이 조용히 제 자리를 찾았다.
홍도에서의 하루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였다.
《안개를 걷는 사람》 – 홍도에 떠도는 이야기
홍도에는 안개가 짙은 날마다
산길을 오르는 사람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는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항상 안개 속에서만 보인다.
사람들은 그를 ‘돌아가지 못한 여행자’라 부른다.
그는 풍경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을 두고 온 사람이라고.
그래서 홍도는 그를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홍도에 가면,
굳이 다 보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날의 홍도가
가장 오래 남습니다."
여행에세이, 섬, 여행감성
― 《섬 thing Special》《숨는 섬, 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