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thing special/ 흑산도

32. 흑산(黑山島)

by 이다연



기억의 섬, 흑산도

“섬은 색으로 말을 걸고,
사람은 그 색에 마음을 눕힌다.”

누군가는 바다의 짙음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그 어둠 속에서 오히려 선명해진 자신을 만난다.
흑산도는 그런 섬이다.


黑(흑) : 검을 흑
山(산) : 산 산
島(도) : 섬 도


즉, ‘검은 산의 섬’, 혹은 ‘어둠을 품은 섬’.

짙은 안개와 먹빛 바다,
멀리서 보면 산마저 검게 보인다 하여 붙은 이름.
그러나 그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과 깊은 기억의 색이다.


1. 흑산도의 시작


흑산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다도해 깊숙한 곳에 놓여 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닿는 섬.

멀다는 건,
그만큼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개가 자주 내려앉고
바람은 늘 방향을 바꾸며 불어온다.
이 섬에선 길을 찾기보다
길에 몸을 맡기는 법을 먼저 배운다.


2. 다섯 개의 시선, 다섯 개의 풍경


✅ 흑산항과 파시의 기억


한때 ‘파시의 섬’이라 불리던 흑산도.
조기와 고등어가 몰리던 계절이면
전국에서 배가 모여들었다.

지금은 조용해졌지만
항구 바닥엔 여전히 그 시절의 파도 소리가 남아 있다.
배가 들어올 때마다
섬은 잠깐, 다시 젊어진다.

자료-오마이뉴스


✅ 사리·예리 해안 절벽


검은 바위가 겹겹이 쌓인 해안.
파도는 부서지기보다
깎아내리듯 바위를 두드린다.

이곳에 서면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존재’가 된다.
말을 걸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칠락 봉


칠락 봉은
흑산도를 내려다보는 가장 조용한 자리다.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섬의 윤곽과 바다의 깊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가 걷히는 날이면
섬은 섬답게,
바다는 바다답게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이곳에 올라
멀리 보기보다
잠시 멈춰 서는 법을 배운다.

칠락 봉은
흑산도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작은 쉼표 같은 곳이다.


✅ 흑산도 등대


섬 끝에 선 등대는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힌다.

안개가 짙을수록
등대의 빛은 더 또렷해진다.
흑산도는 늘 그렇게
어두울수록 선명해지는 섬이다.



✅ 진리·사리 마을 돌담길


낮은 돌담 사이로
바람이 길을 낸다.

집과 집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가까워
말보다 눈빛이 먼저 오간다.

섬의 시간은
이 골목에서 가장 느리게 흐른다.


✅ 노을 바다 조망 포인트


해 질 무렵,
흑산도의 바다는 검붉은 빛으로 변한다.

낮의 어둠과
밤의 고요가 만나는 시간.
그 순간 바다는
하루를 조용히 접는다.


3. 흑산도 정보 요약


행정구역: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면적: 약 19.7㎢

인구: 약 3,000명 내외

지형: 산지와 해안 절벽 중심 / 안개 많고 바람 잦음

교통: 목포항 여객선 2~4시간 (기상 영향 큼)

대표 포인트: 흑산항, 해안 절벽, 등대, 돌담 마을, 노을 바다


4. 섬의 삶과 사람들


흑산도의 사람들은
바다를 ‘상대’가 아니라 ‘동반자’로 여긴다.

날씨를 읽고,
파도의 결을 살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섬에는 불편함이 많지만
그 불편함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흑산도의 계절은
봄·여름·가을·겨울보다
‘안개의 짙고 옅음’으로 나뉜다.

안개가 섬을 감싸는 날,
모든 소리는 낮아지고
풍경은 수묵화처럼 번진다.

그때 흑산도는 가장 흑산도답다.


5. 검은 밥상, 바다의 맛

- 홍어와 섬사람들


흑산도에서 홍어는
아무 날에나 오르지 않는다.

제사와 혼례, 그리고 큰 손님이 오는 날.

홍어는 음식을 넘어
사람을 대접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홍어를 내놓는다는 건
“당신은 우리 사람입니다”라는
말 없는 인사다.


홍어를 다루는 손에는
늘 조심스러움이 있다.
날카로운 가시와 예민한 발효의 시간.

섬사람들은 홍어를 정복하지 않는다.
바다를 대하듯 존중하며 기다릴 뿐이다.

홍어의 맛에는 그 태도가 남아 있다.


흑산도의 밥상은 화려하지 않다.

홍어, 말린 생선,
거친 바다 냄새.


처음엔 강하다.
그러나 몇 숟갈 지나면 묘하게 편안해진다.

흑산도의 음식은 입맛을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여기선 이렇게 살아왔다”라고 말할 뿐이다.


6. 말이 많은 섬이 아니라, 사연이 많은 섬


흑산도는 설명하지 않는다.

유배의 시간도,
폭풍의 밤도,
떠나보낸 사람들도
그저 바람 속에 둔다.


그래서 이 섬에선
침묵이 무겁다.
그러나 그 무게 덕분에
사람은 쉽게 가벼워진다.


7. Epilogue


흑산도는 내게 말했다.

“괜찮다.
다들 이렇게 버텼다.”

나는 바다를 오래 바라보다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이 섬에서는
위로보다
인정이 먼저였다.

흑산도에서의 하루는,

견뎌온 마음을 조용히 내려놓는 시간이다.



♡ Legend

― 《사리의 일곱 아들》


사리 마을에는
아주 오래전, 홀어머니와 일곱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바다로 들어가 물질을 하며
일곱 형제를 키웠다.

바다는 밥이었고,
숨이었고,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큰 태풍이 섬을 덮쳤다.
바람은 밤낮없이 울었고
파도는 며칠째 잠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바다에 나가지 못한 채
집 앞에서 물결만 바라보았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굶주림은
파도보다 먼저 다가왔다.

그날 밤, 아들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바다로 걸어 나갔다.


맏아들이 먼저 두 팔을 벌려
파도를 막아섰고,
그 뒤로 둘째, 셋째…
일곱째까지 차례로 바다에 들어섰다.

“어머니가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막겠습니다.”


파도는 거셌고 몸은 점점 굳어 갔다.
하지만 아들들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태풍이 물러간 자리에는
바다 위에 일곱 개의 작은 섬이 서 있었다.
두 팔을 벌린 채,
어머니의 집을 향해 서 있는 바위들.


사람들은 그곳을 ‘칠 형제 바위’라 불렀다.

지금도 파도가 높아질 때면
그 바위들 사이로
낮은 숨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어머니, 오늘은 바다가 잠잠합니다.”

그래서 사리 사람들은
칠 형제 바위를 지날 때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곳은 아들들이 바다가 되어
어머니를 지킨 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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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섬, 여행감성

― 《섬 thing Special》《숨는 섬, 홍도》31. 홍도(紅島)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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