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thing special/ 욕지도

33. 욕지도 (欲知島)

by 이다연



욕지도, 파도와 생활이 겹치는 섬


욕지도,

‘알고자 할 욕(欲)’과 ‘알지(知)’가 만난 이름처럼

이 섬은 먼저 묻고,

나는 그 질문에 발걸음으로 대답하게 된다.


남해의 한복판에서 길어 올린, ‘살아내는 시간’의 감각

“멀리 도망친 섬이 아니라,
늘 오가던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섬.”


1. 섬, ‘한가운데’


여행은 흔히 멀어지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욕지도는 다르다.

이 섬은 멀리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늘 사람이 오가던 바다의 정중앙에서,

갑자기 말을 건다.


욕지도는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에 속한 섬이다. 한려수도의 물길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섬은 ‘외딴섬’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바다의 흐름 속에 생활로 놓여 있던 섬에 가깝다.


통영항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길은 길답게 이어지고, 섬은 섬답게 다가온다.
욕지도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지?”라고 묻지 않는다.
그저, “이제 같이 살아보자”라고 말할 뿐이다.


2. 시간이 멈추지 않는 곳


욕지도의 시간은 녹지 않는다.
이곳의 시간은 계속 움직인다.

새벽엔 어선이 먼저 일어나고,
낮엔 장터가 숨을 쉬며,
저녁엔 아이들 웃음과 바다 냄새가 동시에 돌아온다.

느리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욕지도의 느림은 ‘정지’가 아니라 반복이다.

나는 이 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자’가 되기보다,
잠시나마 생활의 박자에 맞춰 걷는 사람이 되었다.


3. 지형과 풍경, 삶의 윤곽


욕지도는 둥글다.
산도, 마을도, 길도 모서리가 적다.

섬의 중심에는 완만한 산줄기가 있고,
그 아래로 마을과 밭, 항구가 층층이 내려앉아 있다.
절벽은 있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바다는 넓지만 사람을 밀어내지 않는다.

이 섬의 풍경은 ‘압도’가 아니라 동행이다.
바다가 사람 곁에 있고,
사람이 바다 곁에 있다.


4. 욕지도, 섬의 기본 정보

행정구역: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욕지도리

면적: 약 12.6㎢

인구: 약 900명 내외

교통: 통영항 → 욕지도 (약 1시간, 하루 여러 차례 운항)

기후: 남해 해양성 기후, 바람은 있으나 비교적 온화

욕지도는 통영에서 가장 큰 부속도서 중 하나다.
‘큰 섬’이라는 말보다, 살림이 가능한 섬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5. Top 5: 다섯 개의 시점(視點)


✅ 욕지도 모노레일


섬을 내려다보는 가장 현대적인 시선.
위에서 보면, 이 섬이 얼마나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된 지형인지 알게 된다.



✅ 출렁다리


욕지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
섬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느껴지는 정확한 높이.


✅ 욕지도 항구


아침과 저녁의 표정이 전혀 다른 곳.
이 섬이 ‘관광지’이기 전에 생활의 항구임을 보여준다.



✅ 해안 산책로


정해진 명소가 아니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바다의 얼굴들.



✅ 욕지도 멸치와 해산물 밥상


이 섬의 진짜 설명서.
풍경보다 먼저, 맛이 섬을 이해하게 만든다.


6. 생활 섬의 존재론


욕지도는 질문하지 않는다.
“왜 여기까지 왔느냐”라고.

대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여기서는 다들 이렇게 산다.”

이 섬엔 철학적 고립이 없다.

대신 생활의 밀도가 있다.

관광지의 섬이 ‘보는 곳’이라면,
욕지도는 함께 있는 곳이다.


Epilogue


욕지도에서 나는
‘떠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잠시 끼어든 생활인’이 되었다.

무언가를 깨닫기보다,
이미 알고 있던 삶의 리듬을 다시 떠올리는 일.

멀리 가지 않아도,
한가운데서도
충분히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섬은 조용히 알려주었다.


♡-Legend

《욕지할매와 바람의 질문》


욕지도에는
예부터 바람이 유난히 많은 이유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오래전, 이 섬에는
사람들이 *‘욕지할매’*라 부르던 노파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욕지할매는 특별한 힘을 가진 이는 아니었지만,

섬에서 가장 바람의 방향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부들이 바다로 나가기 전이면

그들은 늘 욕지할매의 집 앞에 들렀다.

“오늘 바다는 어떻습니까?”
그러면 할매는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파도를 오래 보지도 않고 이렇게만 말했다.


“네가 오늘, 무엇을 알고 나가려 하느냐.”

사람들은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욕지할매는 늘 같은 이야기를 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가면 고기만 보고,
길을 찾으러 나가면 길만 보게 된다.
그런데 바다는,
사람이 무엇을 알고자 하느냐에 따라
얼굴을 바꾼다.”


욕지할매는 바람이 불기 전,
항구 언덕에 올라
낡은 천 조각을 하나씩 묶어두곤 했다.
그 천이 바다 쪽으로 나부끼면
그날은 나가도 되는 날이었고,
산 쪽으로 휘날리면 그날은 머무는 날이었다.


어느 해, 욕지도에 큰 풍랑이 예고되었다.
젊은 어부 하나가 욕지할매의 말을 듣지 않고
바다로 나가려 했다.

“이 바람쯤이야.”
“오늘은 많이 잡아야 합니다.”

그때 욕지할매가 처음으로 어부의 손을 붙잡았다.

“너는 오늘,
무엇을 알고 돌아올 생각이냐.”

어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날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


그날 밤,
욕지도에는 유난히 센 바람이 불었고
이웃 섬들에선 여러 배가 길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욕지할매는
어느 날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는다.

지금도 욕지도에 바람이 많은 이유는
그 할매가 아직도 섬 어딘가에서
사람들에게 묻고 있기 때문이라고.

“너는 무엇을 알고자,
이 섬에 왔느냐.”

그래서 욕지도는

‘알고자 할 욕(欲), 알 지(知)’
욕지도(欲知島)가 되었다고.


이 섬의 바람은
길을 밀어내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마음을 먼저 흔들 뿐이다.


― 《섬 thing Special》: 《한가운데 섬, 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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