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8〈설명하지 못한 동의서〉
“서명은 하셨죠?”
그 질문에 산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서이나는 차트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다시 들었다.
(내레이션)
이건 ‘알겠습니다’의 속도가 아니다.
이건 “일단 넘기고 싶어요”의 속도다.
“음…”
서이나가 펜을 돌리며 말했다.
“혹시요.”
산모의 눈이 커졌다.
“지금 이 종이.”
“잘 이해되셨어요?”
“…네?”
“아니면.”
“이해는 안 됐는데
손이 먼저 움직였거나.”
산모는 당황한 듯 웃었다.
“… 다들 이렇게 하잖아요.”
그 말이 나왔다.
가장 자주 쓰이고,
가장 위험한 말.
서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다들 그래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서요.”
“저는 다들 안 하는 질문 하나 더 해요.”
산모가 숨을 들이켰다.
“지금.”
“이해 안 되는 부분 있으세요?”
산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내렸다.
“…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요.”
“질문하면.”
“민폐 같을까 봐요.”
그 말은 작았지만
병실 안에서 가장 크게 울렸다.
서이나는 갑자기 차트를 내려놓고 말했다.
“혹시요.”
“라면 끓일 때.”
산모가 눈을 깜빡였다.
“…네?”
“물 먼저 넣으세요?”
“면 먼저 넣으세요?”
“… 물부터요.”
“그럼 물 양 모르면요?”
“… 라면 망하죠.”
서이나가 웃었다.
“수술은요.”
“라면보다 훨씬 비싼 거예요.”
“망하면 안 되잖아요.”
산모가 웃다 말고 눈가가 젖었다.
우리는 종종 모른다는 말을
부끄러움으로 배웠다.
하지만 진짜 위험한 건
모른 채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다.
서이나는 의자에 앉아 동의서를 한 줄씩 짚었다.
“이건 이런 뜻이고요.”
“이건 가능성 이야기예요.”
“안 생기길 바라지만
말은 해드려야 해서요.”
산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속도가 달랐다.
“…아.”
“…아, 그래서.”
“… 이건 그런 거군요.”
마지막 줄에 다다랐을 때 서이나가 물었다.
“이제요.”
“사인하실래요?”
산모는 펜을 들고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짧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고,
그제야 펜을 들었다.
“…네.”
“이번엔.”
“제가 뭘 하는지 알겠어요.”
서이나가 나오자 윤제하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또 뭐 하셨어요.”
“… 제가요?”
“수술 전인데.”
“라면 얘기가 들리던데요.”
서이나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중요한 비유였습니다.”
윤제하가 웃었다.
“그래서.”
“사인은 다시 받았고요?”
“네.”
“이번엔 이해 끝난 다음에요.”
잠깐의 정적.
윤제하가 말했다.
“… 좋은 동의네요.”
서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는요.”
“서명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는 속도가 달라질 때
시작되는 거거든요.”
윤제하가 커피를 내밀었다.
“그럼 이건요?”
“동의하십니까.”
“당 충전.”
“… 라면이랑은 달라요?”
“비슷합니다.”
“없으면 예민해져요.”
서이나가 웃으며 커피를 받았다.
동의는
사인하는 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도
미라클메디컬센터에서는
서명을 받기 전에 이해부터 받는 노력을 한다.
라면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아는 간호사,
----- By. 서이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