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5. 봄, 잠깐 외출
“오늘은 쉽니다.”
윤제하가 말했다.
서이나가 고개를 들었다.
“환자 있으면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없앴습니다.”
서이나가 그를 잠깐 봤다.
“… 선생님이요?”
윤제하가 미소를 지었다.
“네. 과장 권한입니다.”
간호사 셋.
레지던트 둘.
그리고 윤제하.
어색하다.
“우리… 뭐 하는 거죠?”
“소풍입니다.”
“… 병원 사람들끼리요?”
잠깐 정적.
누군가 말했다.
“환자 없으니까 더 어색한데요.”
작게 웃음이 났다.
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서이나가 걸음을 멈췄다.
하얀 꽃잎 하나가
손등에 내려앉았다.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본다.
윤제하가 옆에 섰다.
“꽃잎은 안 울죠.”
서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좀 편합니까?”
서이나가 잠깐 생각했다.
“… 조금.”
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더 떨어졌다.
누군가 돗자리를 펼쳤다.
간호사 한 명이 말했다.
“선생님들, 사진 찍어요.”
다들 모였다.
어색하게 서 있다.
“웃으세요—”
아무도 안 웃는다.
잠깐.
그리고 한 명이 먼저 웃었다.
그다음,
하나씩 따라 웃는다.
찰칵.
서이나는 사진을 보고 있었다.
“… 이상하네요.”
윤제하가 물었다.
“뭐가요?”
“다들… 간호사 선생님들 같지 않습니다.”
윤제하가 웃었다.
“오늘은 아닙니다.”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렸다.
서이나가 멈췄다.
고개를 들었다.
잠깐.
아무것도 없다.
바람뿐이다.
윤제하가 말했다.
“오늘은 안 돌아가셔도 됩니다.”
서이나가 작게 숨을 고른다.
“…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 뒤에 그녀의 시선은
이미 병원 쪽을 향해 있었다.
작은 식당.
창가 자리.
햇빛이 들어온다.
간호사 한 명이 메뉴판을 넘기며 말했다.
“선생님들, 뭐 드세요?”
윤제하가 웃으며
“제일 빨리 나오는 걸로요.”
“왜요?”
“급하면 나가야 하니까요.”
잠깐 정적.
그리고 다 같이 웃었다.
서이나는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 이거요.”
“뭐요?”
“천천히 나오는 거.”
잠깐.
윤제하가 웃었다.
“… 좋은 선택입니다.”
음식이 나왔다.
따뜻한 국.
밥.
그리고 잠깐의 조용함.
누군가 말했다.
“이렇게 앉아서 밥 먹는 거… 오랜만인데요.”
“그러게요.”
“항상 서서 먹거나, 급하게 먹거나…”
서이나가 숟가락을 들었다.
한 입.
천천히 삼켰다.
잠깐 눈을 감는다.
“…따뜻하네요.”
아주 작은 목소리.
윤제하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
짧게.
그가 화면을 봤다.
표정이 조금 바뀐다.
서이나가 물었다.
“… 병원이에요?”
윤제하가 잠깐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잠깐 미소.
“다른 과입니다.”
간호사가 물었다.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윤제하가 찡긋하며
“오늘은 아닙니다.”
잠깐 뒤. 그가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오늘은요.”
“천천히 먹습니다.”
서이나가 아주 잠깐 그걸 봤다.
그리고 다시 밥을 먹는다.
조용했다.
햇빛이 길게 늘어졌다.
서이나가 말했다.
“선생님.”
“네.”
“… 내일도 리셋될까요?”
윤제하가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봄이라서요.”
잠깐 미소.
“더 많이 됩니다.”
사람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 반복 속에서 잠깐 멈춘다.
그리고 알게 된다.
왜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
오늘도 미라클 메디컬 센터에는
다시 돌아갈 사람들과
다시 시작될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 By. 서이나가
안녕하세요. 서이나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될 줄은
저도 조금 늦게 알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같은 병원에 있고,
여전히 같은 복도를 걷고 있고,
여전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아마도
조금 덜 서두르게 되었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고,
조금 더 사람을 믿게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실수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옆에 있고 싶었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 옆에,
기다리는 사람 옆에,
처음 시작하는 사람 옆에.
여러분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일 같은 하루를 보내고,
가끔은 멈추고 싶고,
그래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조용히 찾고 계실 것 같아서요.
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다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버티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버티는 거라는 것.
그리고 그 순간들이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는 것.
혹시 내일이 조금 버겁다면,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오늘처럼.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내일도 병원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웃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미라클메디컬 센터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서이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