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끝나도, 장면은 남는다.
영화는 처음, 달려오는 기차로부터 시작되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렌즈가 세상을 향해 열렸던 그날,
사람들은 달려드는 열차를 피해 극장에서 도망쳤다.
그들이 도망친 것은 기차가 아니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던 감정의 파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띄웠다.
누군가는 사랑을 말했고, 누군가는 침묵을 택했으며,
누군가는 끝내 말하지 못한 감정을
빛과 어둠 사이, 24장의 프레임에 숨겼다.
그리고 우리는,
그 조각들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고전영화의 느린 호흡을 기억하는 이들을 위한 기록이다.
대사가 없어도 가슴이 먹먹했던 무성영화의 순간들,
흑백의 잔광 속에서 더 선명히 보였던 감정의 실루엣,
마치 피아노의 낮은음처럼 조용히 울렸던 장면들.
나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영화를 기억하는 일은 스토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장면 앞에서 오래 머물렀는지를 기억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에 남을 여러 편의 영화는,
내가 스쳐 지나간 감정의 지도이며,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시간의 단면이다.
당신 또한 이 페이지들 사이에서
당신만의 장면을 만나게 되길 바란다.
기억은 흐르지만, 여운은 남는다.
영화는 끝나지만, 장면은 남는다.
빛이 닿을 때마다 다시 살아나는 무언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