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닮은 꽃
얘야,
옛날 아주 먼 옛날 말이지—
밥풀처럼 하얗고,
포슬포슬 부드러운 꽃이 있었단다.
그 꽃 이름이 뭐냐고?
그래, 이팝꽃이란다.
하얀 꽃잎이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피어날 때면,
그리운 사람을 닮은 꽃,
슬프고도 고운 전설을 품은 꽃이란다.
궁금하지 않니?
그 이팝꽃에 담긴 이야기,
할미가 들려줄까?
살짝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아 보렴.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란다.
그때는 말이지… 봄이었단다.
산은 푸릇푸릇하고,
감나무 새순이 조심조심 고개를 내밀 때였지.
그 집에선 말이다,
세상에나… 참 곱디고운 아기가 태어났단다.
뽀얀 얼굴에, 조막만 한 손을 꼭 쥐고 말이야.
엄마는 말이지,
그 아기를 품에 꼭 안고,
감잎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그 작은 얼굴만 들여다봤대.
“아가야, 엄마 눈에는 네 얼굴이 꽃보다 이쁘구나…”
그렇게 속삭이며 말이지.
그런데 말이지…
아기를 낳은 엄마가,
웬일인지 기운을 못 차리는 거야.
밥도 잘 못 먹고,
몸이 자꾸 차갑게 식는다면서,
손끝이 시리다고 하더라…
참말로 안쓰러웠지.
아빠는 말이야,
아픈 엄마 손을 꼭 잡고
날마다 기도를 했단다.
‘제발… 우리 아기 곁에 오래 있어달라고…’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어.
그날은 참 고요했단다.
바람도 숨을 죽였고,
개울물도 소리를 낮추고,
별빛만 쓸쓸히 반짝이던 그런 밤이었지.
며칠을 시름시름 앓던 엄마가
그날 밤,
겨우 일어나더니
아기를 솜이불 위에 눕혀놓고
말없이 한참을 바라봤단다.
그 눈빛이 말이지…
참 따뜻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슬펐어.
그러더니 엄마가 조용히 말했지.
“우리 아가…
엄마는… 항상 네 곁에 있을게.”
그리고는,
엄마의 작은 손으로 아기의 뺨을
몇번이나 쓰다듬다가,
그 손을 조용히 무릎 위로 내려놓았단다.
그 순간이었어.
창밖 이팝나무 가지에서
하얀 꽃잎 하나가
스르륵— 조용히 떨어졌지.
바람도 없었는데 말이야…
참, 묘한 밤이었지.
그날 이후,
휴—
그 집은 정말… 조용해졌어.
엄마의 노래도, 웃음소리도 사라지고…
이제 그 집엔
아기 울음소리랑 아빠의 한숨만 남았지.
아빠는 새벽마다 논으로 나가 농사를 지었고,
해가 지면 지친 어깨를 이끌고
힘들게 집으로 돌아왔단다.
아기는 말이다.
밤마다 울었단다.
엄마 품이 그리웠는지,
배가 고팠는지.
그 작은 입으로 ‘응애, 응애…’
참 많이 울었지.
그러면…
아빠는 아기를 꼭 안고
이 집, 저 집…
동냥 젖을 얻으러 다녔단다.
하늘도 그 모습을 안쓰럽게 여겼는지,
아빠의 눈물을 닮은 비를 내려 주셨단다.
창밖에 서 있던 꽃나무는
하얀 꽃잎을
하나… 둘…
천천히 떨어뜨렸지.
그 꽃잎들이
아기 이불 위에,
문 앞에 놓인 작은 바가지 위에도
소리 없이 쌓여갔단다.
그날 밤은 말이다…
아기도, 아빠도…
왜 그리 엄마가 보고 싶은지…
참 많이,
정말 많이 그리워했단다.
몇 해가 지나.
그 아기는 벌써 다섯 살이 되었지.
참말로, 세월이 훌쩍 흘렀어.
그 사이
계절도 몇 번이고 바뀌었는데,
그 집은 여전히…
밥 냄새보다 바람 냄새가 먼저 나는 집이었단다.
아빠는 들에 나갔다가도
자주 켁켁, 기침을 했고
작은 순이는
혼자 마당에 쪼그려 앉아
돌멩이로 밥 짓는 흉내를 내고,
나뭇잎을 반찬 삼아 놀았지.
그렇게 혼자서도
작은 그릇에 흙을 담아
소꿉장난을 했단다.
그날도 그랬어.
해는 기울고 ,
마을 어귀마다 꽃들이
하얗게 피어나는 때였지.
봄이 한창이었단다.
마을 어귀 나무마다
꽃들이 서로 먼저 피겠다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어.
그날도 순이는 배가 고파서
평상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단다.
입술은 바싹 말랐고,
작은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자꾸만 났지.
그런데 말이다—
그 순간이었어.
바람결에 꽃잎이 살랑살랑 흩날리더니,
순이의 꿈속으로
엄마가 살포시 들어오셨단다.
엄마는 말이지…
고운 치마저고리를 입고
예전처럼 환하게 웃으셨어.
“순이야, 내 아가… 많이 배고팠지?”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하얀 꽃잎이 가득한
곱게 빚은 작은 사발 하나를
순이 앞에 내려놓았단다.
그 안엔 말이야—
밥보다 더 따뜻한,
엄마 마음이 담겨 있었지.
그 하얀 꽃밥 말이야…
순이는 말이지,
그걸 정말 뚝딱— 하고 먹어버렸단다.
그 밥은 말이야,
세상 그 무엇보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참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만큼 달큼했대.
순이가 밥을 다 먹자
엄마가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단다.
“울지 마, 아가…
엄마가 곁에 있으니까, 괜찮단다.”
그 말이 바람결보다 더 부드럽게
순이 귀에 스며들었지.
그날 밤,
순이는 엄마 품에 꼭 안긴 채
말없이 오래오래 잠이 들었단다.
아무도 깨우지 못할 만큼 편안하고 깊은 꿈이었지.
다음 날 아침이었단다.
햇살이 마을 지붕들을 쓰다듬던 그때,
사람들은 꽃나무 아래서
조용히 잠든 순이와 아빠를 보았어.
그 모습은 말이지—
아주 오래된 꿈을 꾸는 것처럼,
참 평온하고… 따뜻했단다.
그런데 말이야,
순이의 입가엔
밥알처럼 작고 하얀 꽃잎 하나가
살포시 붙어 있었지 뭐니.
사람들은 그걸 보며
마치 비밀을 나누듯 속삭였단다.
“쌀밥을 닮았네… 저건, 이팝꽃이야.”
그때부터였단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이팝나무라 부르기 시작했어.
그날,
햇살은 유난히 곱게도 내렸고,
이팝나무는 조용히 어깨를 흔들며
하얀 꽃잎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두 사람 위로 내려보냈단다.
그 이후로 말이지—
해마다 봄이면
꼭 그 자리에 하얀 이팝꽃이 피어났어.
얘야,
사랑하는 내 아가야.
이팝꽃은 그냥 꽃이 아니란다.
그건 말이야—
배고픈 아이에게 밥이 되어주고,
그리운 이들에게 품을 내어준
한 없이 넓은 엄마의 마음이란다.
5월. 이팝꽃이 피기 시작하면,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떠올립니다.
한마디 말보다,
작은 손길 하나로 마음을 다 전하던 사람.
그날 순이의 입가에 내려앉은 꽃잎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에도
그렇게 한 장의 꽃잎 같은 사랑이
내려앉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이팝꽃이 피는 이유를 이제 나는 알 것 같습니다.
그건—
밥 한 숟갈로도 다 전하지 못한
엄마의 사랑이,
꽃이 되어 다시 피는 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