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더 그레이>> 시청후기

재밌었습니다

by 오윤오

- 이번 글은 넷플릭스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를 시청하고 적은 후기입니다.

-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개인적 취향과 인상을 토대로 편하게 감상을 남겨보았습니다.

- 원작 만화 및 그것의 각색 애니메이션 <<기생수>>,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를 아울러서 언급합니다. 해당 작품들의 주요 인물 설명, 결말 제외 스토리 전반에 대한 간략한 언급과 인상 등이 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시놉시스 수준의 언급). 어떤 종류의 스포일러도 원치 않는 분께서는 먼저 작품을 보고 읽어주세요!


스포일러 방지턱

포스터 사진 출처


기생수는 만화계의 전설이다. 그렇지만 아직 만화로는 보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리메이크로만 봤다. 애니메이션도 잘 만든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원작인 만화는 대체 얼마나 재밌을까? 그런 기대를 품은 채 나중에 읽어야지 기약만 하고 미루기를 반복하던 차에, 유튜브에서 기생수 드라마판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기생수: 더 그레이>>가 제목이다. 기대가 무색하지 않을만큼 재밌게 본 뒤에, 정리삼아 메모를 남긴다.


예고편만 보고 이후 넷플릭스에서 시청하기 전까지 아무런 사전정보도 확인하지 않았다. 예고편에서 주인공으로 보였던 인물이 여성이어서, 같은 내용에 성별만 바꿔서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메이크가 아니라 외전일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전설적인 원작의 후광에 묻어가지 않는 용기 있는 시도를 감독은 감행한 것이며,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고 생각된다. 재밌었다. 꽤 많은 수의 작품을 선보이며 내공을 단련해온 연상호 감독의 노련함이 이 작품에서도 잘 발휘된 것 같다. '기생수'는 지구에 와서 인간을 숙주삼아 기생하면서도 감염되지 않은 인간을 잡아먹는 외계의 존재다. 이 설정과 만화에서 묘사되는 비주얼 등, 기본적인 요소만을 빌려와 결이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다. 주요인물을 선정하는 작가적 근거도 완전히 다르다. 비교하자면 원작과 그 애니메이션 리메이크는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해 현실성과 보편성을 취했으며, 본작은 특징적이고 사연있는 캐릭터를 주연으로 내세워 이목을 끈다.


만화 원작 대신 애니메이션 판만 봐서 공평한 비교가 되지는 않겠지만, 오리지널 기생수(만화와 애니메이션판 기생수의 스토리를 오리지널이라고 줄여 표현하였다)와 외전 기생수(본작 <<기생수: 더 그레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썼다)를 견줘보면서 이번 작품에 대한 인상을 정리해 볼 참이다.


얼른 떠오르는 것은 깊이의 차이다. 깊이의 차이가 난다고 하면 어딘가 작품의 수준이 다르다는 말로 느껴질 수 있을 테고, 아무래도 실제로도 원작이 이번 작품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추측되기는 한다. 그러나 여기서 깊이의 차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작품의 절대적 수준을 견주려는 의도가 없으며 각 작품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을 짚고자 함이다. 오리지널 기생수가 2명1조 캐릭터의 내/외적 갈등을 집중해서 조명하고 있다면, 외전 기생수는 서넛의 인물을 주연급으로 내세워 그들의 모험적인 거취를 따라가는 재미에 많은 공을 들였다. 자연스럽게 주제의식도 그 깊이가 달라진다. 오리지널 기생수에서 한몸을 쓰는 두 주인공 신이치와 미기(오른손이/오른쪽이)는 작품 내에서 절대적인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일종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작품이라고 해도 말이 통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신이치(혹은 미기)가 겪는 외부의 위협도 작품 내에서 중요하지만, 미기와 신이치가 한 몸 속에서 나누는 이른바 '내적'인 갈등이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미기라는 존재는 평범한 고등학생 신이치를 도와 역경을 헤쳐나가는 조력자인 동시에, 여러 철학적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토론상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신이치의 신분이 학생으로 설정되었다는 부분에 좀더 진지한 이유를 댈 수도 있다. 고등학교에서 우리는 인문학을 배운다. 문학과 역사와 윤리를 배운다. 정규 인문학 교육과정에서, 이성理性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입장을 정돈하거나 인간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수단으로 충실히 복무하기 위해 훈련받는다. 인간 사회에서 어엿한 이성이란, 인간을 위해 유용한 이성이다. 그러나 미기는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 못지않은 수준의 이성으로 무장하고 있는 존재다. 미기의 발달된 이성은 정규 인문과정을 기준으로 보면, 탈선한 선생이다. 신이치는 이 불량선생에게 수업을 받게 되었다. 이 이지적 외계인의 눈에 비친 인간과 그 집단은 모순과 폐단으로 점철되어 있다. 신이치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동료인 미기가 제기하는 날카로운 비판과 의문에 답하기 위해 인간성을 성찰해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의 이성은 나만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학원이성學院理性'인데, 신이치의 이성은 미기에게 떠밀려 그것을 넘어서고 말았다. 신이치의 이성은 보다 광막한 세계관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신이치와 미기가 생존을 위해 물리적 모험을 할 때, 신이치의 이성도 정신적 모험을 하고 있다. 진지한 독자가 된 입장에서 그의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그런 특수한 상황에 놓인 이성의 귀추에 대한 철학적 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오리지널 기생수가 외부자(미기)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면, 외전은 또렷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을 여럿 앞세워 마음을 사로잡는 서사를 풀어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저마다의 아픔이 있는 인물들이 좌절하지 않고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 깊이만 다른 것이 아니고, 너비도 다르다. 감상의 접근성을 높이고 쉽게 공감을 구하기 위해, 깊이 들어가지 않는 대신 넉넉한 너비를 확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전반의 깊이 차이는 주제의식의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이 상이한 주제의식 덕에 두 작품은 주제를 다루는 방식 면에서도 확연히 구분된다. 인물의 개성이 특징적일수록, 또 엉뚱함이 가미될수록, 몸짓이나 말버릇이 과장될수록,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만화적 캐릭터'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여기에서 그 개성이 영웅적인 쪽으로 기울수록, 무모할수록, 무모하면서도 곧잘 이겨낼수록, 우리가 그 역경의 아득함에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기 어려워질수록, 인물들은 만화 중에서도 소년만화의 전형적 인물상을 보이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외전인 드라마 기생수는 인물에 성격을 부여하는 방법이 소년만화 주인공의 전형적 작법을 따라간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어떤 면에서 드라마 기생수는 원작 만화 기생수보다도 더 만화적인 것이다. 일본 만화의 장르적 분류상으로 기생수가 소년만화가 아닌 '청년만화'에 속하는 것은 단순히 그 잔인성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폭력이 액션만화의 액션으로만 사용되지 않았다. 폭력을 만화적 혹은 오락적 요소 이상의 전달 수단으로 내세워 진지하게 노출시키려는 의도 때문에 기생수는 소년만화가 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드라마가 소년만화적 연출을 채택할 때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현대) 영화/드라마는 사실적인 연출이 기본 소양이다. 세트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cg로 상상의 여백을 채워 구체화하고, 명배우를 고용하는 데 큰돈 준비하는 것은 대부분 극의 사실성에 어떻게든 기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현대 드라마의 대전제에 만화적 캐릭터라는 소전제를 이어붙이면, 일종의 부조화가 발생하기 쉽다. 이같은 부조화를 해결하지 못한 작품들이 꽤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명작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실사판 리메이크가 유구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꼽아 본다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예외 없이 간직하고 있는 입체성 혹은 모순을 만화적 표현은 여과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원인으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외전 기생수도 예외가 아니다. 주인공 정수인은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비참한 인물인데 또 하필이면 기생수의 타겟이 된다. 기생수 전담반의 리더인 최준경 형사는 다름아닌 남편이 기생수에게 희생당했다. 믿었던 조직원에게 배신당해 버려진 설강우는 집으로 돌아왔더니 손윗누이는 기생수에게 감염되고 동생은 기생수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 세 주인공들은 불행이 산 넘어 산이다. 좀더 노골적인 표현으로 바꿔 말하면, 오달지게 재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비참한 사연을 튀는 옷처럼 입혀 인물을 특징적으로 부각하려는 감독의 일관된 만화적 작법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작법의 한국적 스타일을 가리켜 '신파적'이라고 이를 수 있다고 본다. 연상호 감독은 작품 속에 신파적 요소를 자주 담는 작가다.


이번 작품에서도 신파가 들어간 셈이지만,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정수인 캐릭터는 신산한 과거에 늘 괴로워하는 인물이 하필이면 또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에 하늘에서 날아온 기생충이 본인 옆에 떨어져 감염되기까지 한다는 초반 설정이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불행에 대처하는 태도가 작품의 진행과 더불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드라마적 재미라든가, 그녀의 고통을 어떤 식으로든 덜어주려고 애쓰는 조력자들과 함께 고군분투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 극의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데 잘 활용되었다는 점 등을 보아, 신파적 요소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극의 전개와 주제의식 표출에 신파가 알뜰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굳이 꼽아보자면 아쉬운 신파도 있었다. 최준경 형사의 캐릭터를 잡을 때 활용된 신파는 최준경이 괴로운 사건을 겪은 사람임을 강조해 시청자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 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최형사는 작품 내에서 가장 소년만화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따라서 이 소년만화 캐릭터를 실사 드라마로 그려내면서 발생하게 될 부조화를 극복하는 것이 작품의 완성도에도 분수령이 될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화에서 등장하자마자 몰아치는 최준경 형사의 대사는,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에 따라서는 감상을 포기하게 만드는 진입장벽이 될 정도라고 여겨진다. 최형사는 기생충 전담반으로 화려하게 등장해 '기생생물 긴급대책' 설명회를 진행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형사들에게 앞으로의 임무를 설명하는 역할이면서, 나아가서는 기생수의 설정을 시청자들과 분명하게 공유하는 이야기 전개 장치로 활용된다. 이 대목에서 시청자는 최준경 앞에 모여앉아 설명에 귀 기울이는 경찰들과 동기화된다. 그런데 우리 시청자들과 형사들 앞에 있는 이 발표자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표정과 제스처는 '나 연극합니다'라고 자랑하듯 한껏 과장되어 있고, 그야말로 '힘을 빡세게 줬다'고나 할 법한 차림새를 하고선 껄렁껄렁하게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그 말투가 백미다. 최형사의 연극적인 일장연설을 들으면서 '뭐야 이게? 무슨 유치원 재롱잔치야?'라고 불평하는 서브주인공 형사 아저씨의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던 것은 우연이 아닐 테다. 실사 드라마에 만화 캐릭터가 나와서는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한 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으니,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낯부끄러운 느낌이 든다. 이 낯부끄러움을 제작하는 측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치원 재롱잔치냐는 불평을 자진하면서 시청자들의 겸연쩍음을 달래 보려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이처럼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는 해도 나는 결론적으로 드라마를 아주 재미있게 봤고, 매우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오리지널 기생수는 장타자의 정공법이고, 외전 기생수는 번트를 들이대는 방식이다. 두 작품 모두 점수를 냈다. 우리가 예술성이 높은 대신 상대적으로 대중성을 양보한 작품으로 평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나는 정직한 장타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주루의 가능성이나 출루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홈런을 갈기기 위해서 공을 호시탐탐 노리는 우직한 스타일이다. 모든 예술가들에게는 어떤 근본적인 예술적 요구가 찾아온다. 이 예술적 요구를 날아오는 공이라고 한다면, 천착하는 스타일의 예술가들은 날아오는 공의 궤적과 투수의 자세를 살피면서, 홈런으로 공략하기 위해 애쓴다.


반면에 기회가 되면 번트를 칠 생각으로 빠따를 들이대는 스타일의 예술가도 있다. 이 예술가들은 애초에 몸을 굽히고, 빠따를 가로로 눕혀 두 손으로 잡은 채 공을 기다린다. 그렇게 투수의 공격을 받아내면, 방망이에 맞은 공이 힘없는 땅볼이 되어 발치에 굴러다니기는 해도, 그리고 비록 타자 본인이 출루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해도, 그래도 득점을 해낸다. 다득점을 따내진 못하더라도 솔로 홈런과 마찬가지로 1점을 따낼 수 있을 것이다. 득점으로 이어진 모든 타구는 멋진 것이다. 사실 번트 플레이는 많은 사전작업으로 득점을 위한 상황을 꾸려놓아야 가능하다. 모호하지 않게 그려진 설득력 있는 주인공, 흥미를 끄는 플롯, 마음을 사로잡는 비주얼 등 많은 장점들을 미리 준비해 베이스마다 채워놓는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번트예술은 멋진 공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기생수: 더 그레이>>는 득점으로 이어진 성공적인 번트예술이었다. 기생수 감염자의 징그러운 비주얼이 아주 잘 표현되었다. 그리고 애초에 스토리가 재밌다. 주인공들에게 쉽지 않은 양자택일이 계속 강요되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목숨을 건 모험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한시간 두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줄거리의 예상경로를 계속 바꿔버리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서 드라마를 멈출 수 없었다. 오락성이 아주 좋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도 있다. 자동차 운전 중에 벌어진 '더블 데이트'라던가, 놀이공원 장면이라던가, 아주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이었는데, 재밌고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