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시간이 관계를 성장시킨다

마음의 연필로 기록하라

by 누리장인
"겉보기에 별 볼일 없는 듯해도 만나 이야기해 보면 신선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언뜻 보기에 무덤덤한 듯하나 꼼꼼히 뜯어보면 점점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발견되는 건물들도 있다. 우리가 찾아내고자 하는 건물들이 바로 그런 건물들이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 현, p.83》




겉모습은 내면의 일부를 반영하고, 내면은 개인의 중요한 가치들을 대변하죠.

물론 정보가 창궐하고 경험한 이가 적지 않은 세상에서 이를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많습니다. 사회생활이 풍부하면 더더욱 말이죠. 저 역시 눈이 있는 만큼 낯선 사람을 만나면 눈과 복장을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기게 되는 거죠. 그들이 보여주는 언행과 차림새 등은 나름의 호소력을 갖고 있으며, 메시지 역할 또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발산하는 일종의 퍼스널 브랜딩인 거죠. 그것은 각자의 가치관, 다양한 경험, 관계의 깊이,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변화하지만, 그로 인해 각자에게 전달되는 이미지는 대개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아쉬운 모습이 보통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구하지 못한 부족한 정보는 시간을 들여가며 각자의 내면 안에 담긴 본질을 파악하며 채워갑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나름의 경험치가 쌓인지라 위 문장처럼 상대방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라며 곧바로 재단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어느 정도 생각해 보긴 합니다. 사람이라면 대부분 별 볼일 있는 사람일 테니까요. 그들 역시 특유의 고유한 색깔이 가지고 있을 테며,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인 거죠. 물론 대화할 필요성이 있거나 마음이 동할 때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 듭니다.


인디언 격언 중 하나입니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래 걸어보기 전까지 판단하지 마라.'


함부로 남의 내면을 단정하거나, 평가하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결코 그 순간에만 의존하여 판단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상대방을 충분히 겪어보지도 않고, 그들의 사정이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가 주연인 영화 '레인맨'을 아시나요?

동생 '찰리'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형 '레이몬드'와 유산을 두고 사건을 벌이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스포일러라고 할 것까진 없겠지만, 안 보셨다면 앞으로 이야기할 내용을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찰리는 아버지가 죽고 본인에게는 작은 유산만을 남기고, 전재산은 무명의 누군가에게 넘어간 것을 압니다. 본인의 차에서 상속인인 형 레이몬드를 만나게 되는데, 첫 만남 때부터 특이한 행동으로 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후, 유산의 절반을 가져오기 위해 형을 납치까지 하면서 각고의 노력을 더합니다. 그렇게 같이 지내게 되는데, 유산도 유산이지만 그의 기이한 언행들은 여러모로 찰리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지내면서 형이 얼마나 자신을 소중히 여겼는지를 알게 되고, 이를 통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순간을 모아가며 추억을 쌓아갑니다. 특히 찰리는 레이몬드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담긴 의미 역시 깊이 깨닫고 반성하며, 유산은 뒤로 한 채 인생의 방향을 재고한 뒤 형에게 진심을 다하게 됩니다.


물론 이들은 혈육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이와 아닌 이가 겪는 상황이기에 여러모로 큰 고난이 있는 관계입니다. 극복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 거죠. 그들의 첫 만남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해와 공감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유의미한 관계를 만들어갔습니다. 무엇보다 형 레이몬드는 솔직한 말과 행동은, 동생 찰리의 마음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들은 형제라서 그렇잖아.'라고 치부하기엔 애초에 찰리는 형의 존재를 알고 나서도 돈에 진심인 사람이었으며, 아버지에게 좋은 자식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보낸 시간은 겨우 1주일이었지만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인고의 시간과 심오한 교감을 만들어내며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혹시 함부로 사람에 대해 평가해 본 적은 없나요?

평소 본인이 평가하는 기준에 못 미치거나 이에 어긋난다면 첫 만남부터 상대방을 배척하거나 피하려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도 모르게 공격적인 언사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에펠탑 효과라고 있죠. 과거 에펠탑 설립 당시 프랑스 시민들이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건설 과정에서부터 주기적으로 지켜보게 되며 건축물에 익숙해지고, 이윽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며 에펠탑에 호감을 느끼게 됐다는 효과입니다. 이처럼 사람 또한 시간을 두고 지켜본다면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람은 '된장'과 같아서 발효 과정을 거칠 때 충분한 시간과 온도, 습도, 공기 등이 필요하듯이, 상대방을 알아가는데도 묵직한 인내와 생각, 소통, 관찰 등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사람을 알아가고 생각한다면, 좋은 발효 음식처럼 그들 역시 긍정적인 사고와 섬세한 철학, 독특한 경험 등과 같은 믿을만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저는 사람을 대할 때 볼펜이 아니라 항상 마음의 연필을 들고 그들을 기록합니다. 상대방에 대해 지울 수 없는 '고정관념'을 새기는 것이 아닌 언제든 다듬고 수정할 수 있는 '유동관념'을 지니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바뀔 수 있으며, 다양한 꿈과 변화를 경험하는 존재이기에 항상 유연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며 살펴보다 보면 그들만의 소중하고 개성 있는 가치관과 아이덴티티를 발굴할 수도 있죠.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할 것 없이 좋지 않은 부분을 마음껏 보여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 유형의 인간은 에너지를 더 이상 소모할 필요 없이 빠르게 걸러야겠죠.


심지어, 그들의 진실된 내면을 알아가려는 태도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본인의 내면을 탐색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합니다. 결코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아니기도 하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시야와 사고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견고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이는 허상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 상태를 유지시키고, 진실을 찾으려는 호기심과 탐구욕은 본인과 상대방의 삶에 아주 큰 자원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아주 세속적인 지혜>'에 있는 말을 소개합니다.

일반적으로 겉과 속은 다르다. 껍질 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무지한 사람은 알맹이를 보고 나서야 진짜 의미를 깨닫는다. 거짓은 항상 먼저 도착하여 어리석은 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반면 진실은 시간의 팔에 기대어 절뚝거리며 제일 늦게 들어온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진실이 드러날 때를 대비해 힘의 절반을 비축해 둔다. 속임수는 매우 피상적이다. 따라서 표면만 봐서는 쉽게 속을 수 있다. 지혜는 구석진 곳에 들어가 숨죽이고 있다. 지혜로운 자만 들어가서 지혜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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