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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장인 Nov 01. 2024

마지막 동원 예비군, 가자

청안예비군 4년 차

나는 작년 '첫 예비군 동원훈련, 긴장되네'라는 글로 이미 한차례 예비군 관련 글을 쓴 바 있다. 총 조회수 1,800으로 브런치나 다음 메인페이지에 올라가지도 않은 글임에도 생각보다 청안예비군 관련 글이 없다 보니 꾸준히 조회수를 높인 바 있다. 그래서 사실 그때의 내용과 별반 다를 거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이왕 다녀온 거 적어보려고 한다.




 작년 예비군 때와는 달리 좀 더 여유롭게 금영주차장에 도착했다. 청안 동원 훈련장으로 또 한 번 같은 곳을 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차피 10시에 출발하기도 하고, 9시 30분까지는 그저 좀 더 철두철미하게 인원들을 모시고 가기 위함일 테니 말이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리다 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뱀조심'이 적혀 있는 화장실을 한번 갔다 온 뒤 9시 5분 1호차 버스에 탑승했다.


작년과는 달랐던 것이, 버스를 타기 전에 명단을 작성했는데, 이번엔 미리 타고 내부에서 이름과 폰번호를 작성했다. 그러다 인원에 문제가 생겼다. 분명 명단에 이름은 적혀 있으나 사람이 없던 것이다. 군무원분들은 다소 이름을 불러가며 손을 드는 사람을 찾아내보려 했으나 3명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이때 난 오지랖을 발동했다. 명단표를 순서대로 돌리다 보니, 내 이름을 부르고 내 뒷번호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 앉은 사람인지 알지 않겠는가? 난 또 제일 뒤에 앉아 있어서 군무원분이 부르는 이름을 듣고 뒷좌석 사람들 이름까지 외워버렸다. 그때 한 이어폰을 낀 인원이 끝까지 손을 들지 않길래, 내가 직접 물었다.


"혹시 손 안 드셨어요?"

"네."


나는 바로 군무원분들 호출했고, 찾지 못했던 인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은 화장실을 갔다 왔는지 버스를 들어오며 체크를 했다. 9시 30분이 되자 출발했다. 내 예상을 빗나갔다. 분명히 저번에는 10시쯤 출발했던 걸로 기억한다. 심지어 난 글로도 기록해 놔서 틀린 정보는 아니었다. 그때는 다 안 와서 그랬던 건가 싶기도 했다.


 일찍 가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속으로 작은 탄식을 했다. 그런데 사실 그게 오히려 나았다. 화장실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분명 물을 많이 마시고도, 화장실을 갔다 와서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생긴 것이다. 늦게 출발하더라도 화장실이 버스와 꽤 거리가 있었고, 나 때문에 많은 인원에게 폐 끼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차라리 일찍 출발하는 게 오히려 나았던 것이다. 괜히 30분 더 참아야 할 상황을 버스가 벌어다 준 것이었다.

 11시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갈 궁리부터 했다. 소령분이 탑승해서 국방모바일앱 QR코드 종이를 전달하길래, 그걸로 주소만 미리 입력한 뒤, 화장실을 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작년에 이미 와봤다 보니 화장실 위치는 아니 가도 되는지 허락만 받겠다고 하고 냉큼 달려갔다. 진짜 오랜만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한바탕 일(?)을 치른 후 버스로 돌아오자 다들 앱을 깔고 카메라를 차단시켜 놨다. 나도 급하게 설치를 하려 했으나, 무슨 문제인지 설치엔 문제없었지만 차단이 되질 않아 결국 촬영금지 스티커를 붙이게 됐다.


 저번에는 1층을 이용했는데,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무릎으로 3층까지 가게 생겼다. 계단을 좋아는 하지만 그건 무릎이 멀쩡할 때 이야기고, 조금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2층과 3층은 예비군의 생활관으로 가득 찼다.


  아는 얼굴이 몇몇 보였다. 근데 혹시나 내가 쓴 글을 읽었을까 아는 체 안 했다. 물론 할 껀덕지도 없고, 나도 워낙 내성적이라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였다. 어차피 여기서 잠깐 보고 말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다. 내 글이 얼마나 영향이 있겠냐고 할 수도 있는데, 이전에 쓴 글이 최근 평균 조회수 20 정도를 찍었고, 그전부터 조회수가 꾸준했다. 아마 해당 예비군 훈련장에 가는 인원들의 흔적일 것이다. 당일날은 조회수 30이 찍혔으니,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을 적었다 보니 괜히 누군가가 기분 나빠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보급품 검사지를 작성하기도 했는데, 난 눈치 없이 없는 건 없다고 체크를 했다. 부유대... 판쵸우의.... 등 세세하게 살폈다. 괜히 트집 잡혀서 물어내라고 할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여튼 前 보급병 출신답게 찬찬히 뒤져보았다. 검사지를 제출하고 몇 분 후, 간부가 와서는 그냥 동그라미로 치면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판쵸우의는 최근 신형으로 나와서 내가 알아보질 못했다. 옷걸이가 걸려있었는데, 그냥 추울 때 입는 야상인 줄 알았더만 그게 판쵸우의였던 것이다. 없다고 X표 친 게 부끄러웠다. 여하튼 내심 신기해하긴 했지만 3일 동안 굳이 그걸 꺼내보진 않았다.

 

총기는 오후 2시 - 3시 사이에 지급됐고, 밥도 그 즈음에 먹으러 갔다. 


'지금 점심을 먹으면 저녁을 언제 먹지?'


그렇게 안보교육을 1시간 30분 정도 듣고 바로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배부른데 또 먹으라는 거다. 출입문 옆에 보면 훈련표와 식단표가 있는데, 저녁 식사에 포함된 신기한 간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에끌레어 였다. 식단표만 봐서 도저히 알 수 없어 검색해 보니 원래 명칭은 '에끌레르'라는 거였는데 크게 기대 안 했는데 꽤 맛있었다. 아이스크림인 건지 빵인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처음엔 초코바인지 오뎅인지 싶었던 게 의외로 맛있어서 사실 한 개 더 먹을까 고민도 했다. 


 저녁을 먹고 7시부터 30분 좀 넘게 안보교육을 들었다. 동영상 하나 틀어놓고 보는 거였는데 폰을 볼 순 없었기에 열심히 시청했다.


 생활관에 돌아오자, 저번과 같이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이, 이름, 지역을 첫 번째 인원이 말하자 모두 같은 루트로 이야기했다. 나도 뭐 다를 건 없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주특기처럼 협업하는 훈련을 할 때나 친해지는 거라 생활관에서는 폰도 만지고 해서 그다지 필요 없는 거라 생각이 드는 활동인데 나쁠 건 없었다.


 곧이어 각 생활관 대표가 나와서 불침번과 청소를 정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저번에는 각 생활관 간부가 직접 나서서 하는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일반 예비군이 대표를 맡게 되었다. 10분 정도 그 예비군이 무표정으로 들어왔다. 


 '불침번은 이겼는데 청소를 졌어요.'

[환호]


 그런데 불침번이고 뭐고 의미가 없었다. 저녁이 매우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난 살면서 코 고는 소리 따위는 끄덕 없이 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만했다. 생활관은 세상 들어본 적 없는 천둥소리로 가득했고, 하필 내 양 옆도 작은 소음으로 오케스트라를 일으켰다. 10시부터 정직하게 눈을 붙였던 게 화근이었나 생각하며, 다음날은 점호 끝나자마자 눈을 붙일 걸 계획하며 억지로 잠들었다. 그렇게 11시 30분쯤 잔 것 같다.


 두 번째 날 아침은 피곤했다. 5시 30분 즈음에 눈을 뜬 것이다. 다시 자려고 하니 그마저도 힘들었다. 최소 7시간은 자야 하는데 괴로웠다. 아침 점호 때는 사실 전날 PX를 갔던 터라 오늘 저녁 PX까지 염두에 두며 지갑을 찾으려고 했는데, 어디 있는지를 까먹어 혼란스러웠다. PX에 두고 온 것인지... 그러면 지휘통제실에서 날 불렀을 거고... 애초에 그러지 않아도 PX를 나오는 길에 날 불렀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누가 훔쳤나? 그러기엔 서로 눈치도 볼 거고 들키기 좋은 환경이라 감히 그럴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전날 누가 갈색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못 찾았다고 해서 나도 같은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연병장을 서있었다.

 그렇게 생활관으로 다시 돌아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을 뒤져보았다. 다행히, 가방 깊숙한 곳에는 지갑이 '나 여기 있지!' 하면서 멀쩡히 있었다. 마음을 쓸어내린 순간이었다.


 이 날은 특별한 게 당연히도 없었다. 오전 오후를 주특기만 내내 했다. 혹시 수류탄, 화생방 등 다양한 활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사실 수류탄은 좀 하기가 그랬는데, 이번에는 안 해서 다행이다. 내가 워낙 몸치라 수류탄을 잘 못 던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특기 이론 교육을 시작했다. 이때도 버스 때처럼 굳이 오지랖 넓은 짓을 몇번 했고, 현역 병사들이 예의는 또 있어서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잘할 일을 예비군들 앞이라고 뭔가 어설프게 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잠시, 내게 문제가 생겼다.


 박격포가 원래 주특기가 아닌 건 둘째치고, 어찌어찌 팀을 이뤘는데 팀을 이룬 5명의 인원 모두 81mm 박격포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두 명이 그래도 대충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나는 예비군 때 잠깐 해봤다고 탄약수 역할까지는 할 수 있었다. 나는 앞서 말했다시피 민폐가 되는 걸 싫어하기도 하지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가만히 있는 것도 좋아하진 않아서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포수, 부포수는 눈치껏 하기도 어려운 부분이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박격포를 다뤄본 이들에게 맡겼다. 뭐 사실 말이 박격포지 다른 주특기라고 해도 무방해서 그들도 힘들어했다.


 그렇게 흘러간 두 번째 날 저녁도 역시 안보교육이었다. 내용 자체는 들을만했고, 강사분이 진심을 다하시는 것 같아서 듣고 싶게 만드셨다. 하지만 30분 정도하고 말 줄 았았던 교육이 1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래도 하루종일 훈련하느라 땀을 꽤나 흘렸던 그날, 씻을 없을 같아 불안했다. (정확히는 뜨거운 샤워를 얘기한다.) 결국, 생활관에 돌아가 머리와 얼굴, 발 씻기에 그쳐야 했다. 대신 꼼꼼하게 씻어서 냄새가 날 것 같은 곳을 최대한 비누칠을 많이 했다. 내가 볼 때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한 듯 보였다.


 이 날은 예고했듯이, 점호 직후 곧바로 눈을 붙였다 10시에 잔 것 같은데, 12시에 또 일어났다. 일찍 자는 게 대수가 아니었다. 다시 한번 천둥소리가 내 귀를 덮쳤다. 그렇게 1시쯤에 겨우겨우 잠자리에 들고, 5시에 다시 한번 일어났다. 진짜 이렇게 힘겹게 자는 건 오랜만이었다. 덕분에 내게 맞는 숙면 방법을 조금 깨달은 것 같다.


 그래도 아침 점호는 유독 정신이 말짱했다. 지갑 이슈도 없을뿐더러, 마지막 점호라 마음이 살짝 들떴다. 드디어 집에 돌아가는 날이지 않는가? 게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 날씨가 아주 쨍쨍한 게 좋았다. 땀이 나도 전혀 찝찝하지 않았다. 주특기 할 때도 물론 뭐 힘들고 머리 아픈 건 매한가지이지만,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 하나로 기분 좋게 진행했다. 나중에 포장비를 들고 갈 때는 가위바위보롤 꼴찌하는 바람에 가장 무거우면서 들기 까다로운 포다리를 들었는데, 이때 농담 아닌 농담 한마디를 하며 즐길 수 있었다.


"아 내가 나이도 많은데 이걸 들어야 하네"


 주변 간부들이 나이가 몇이냐고 묻기도 했고, 솔직하게 내 나이를 대답하기도 했다. 나이를 들은 그들은 금방 수긍했다. 그때 팀원분이 '제.. 제가 들게요.'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남한테 포다리를 맡기진 않았다. 그렇게 포 수입을 완료하고 생활관으로 돌아가 복귀할 준비를 마쳤다. 지갑과 폰을 먼저 재확인하고, 관물대 곳곳을 다 훔쳐봤다. 혹시 내가 빼먹은 물품이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나중에는 총기수입도 하라고 현역병사가 알려주기도 했는데, 예비군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을 뿐이다. 사실 애초에 박격포 인원들은 주특기 하느라 사격할 일이 없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 현역 친구의 말을 무시한 건 아니니 노여워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모든 걸 마무리하고 버스를 탔다. 나는 예비군 4년 차다 보니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안 올 것 같고, 나는 다음부터 향토 예비군으로 배치된다. 앞으로 1-4년 차 예비군분들이 이 글을 보고 나름대로 대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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