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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에서 만난 반딧불이

풀숲에 내려앉은 별빛

by 다소느림

집 앞에서 발견한 작은 기적


저녁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엄마와 함께 영산강 옆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첨단의 불빛이 닿지 않는 강가의 한켠,

풀숲에서 낯익으면서도 오랜만인 빛이 스쳤다.

순간적으로 멈춰 섰다.


반딧불이였다.

어릴 적 이야기 속에서나

혹은 시골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반딧불이를,

그것도 우리 집 앞 강가에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눈이 어둠에 적응할수록

풀숲 사이사이에서 작은 불빛들이 하나둘 더 보였다.

무리를 지어 은은하게 반짝이는 그 모습은,

마치 별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강가에 내려앉은 듯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빛


나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반딧불이가 아직 이곳에 살고 있을 정도로 우리 동네가 깨끗한 곳일까?”

사실 반딧불이는 까다로운 곤충이다.

어린 애벌레 시절을 깨끗한 물가에서 보내야 하고,

농약이나 화학비료에도 약하다.


무엇보다 인공조명에 취약해서

조금만 빛공해가 심해도 제대로 번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은 반딧불이를 쉽게 볼 수 없고,

일부 지역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사는 동네 풀숲에,

그것도 무리를 이루어 빛을 내고 있다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오염된 도시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생태의 징표였고,

영산강이 여전히 건강하게 흐르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집 앞이 생태 보고라는 사실


사실 그동안 나는 강가를 그냥 산책 코스로만 여겼다.
운동하러 나가고, 바람 쐬러 걷는 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반딧불이의 작은 빛이 내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아, 이 길이 단순한 산책길이 아니라 작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터전이구나.”

환경이 망가지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곤충이고,

그중에서도 반딧불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생각보다 훨씬 건강한 곳일지도 모른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강가 풍경 속에

작은 생태 보고가 숨어 있었던 셈이다.


함께 본 순간의 의미


무엇보다 이 장면을 엄마와 함께 봤다는 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서로 말없이 풀숲을 바라보다가,

작은 불빛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단순한 산책의 일부가 아니라,

잊히지 않을 장면이 되었다.

도시의 불빛은 화려하지만 금세 사라진다.


그러나 풀숲 속 반딧불이의 작은 빛은 오히려 오래 마음에 남는다.
멸종위기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곤충이,

오히려 인간이 놓친 것들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집 앞에서 만난 반딧불이는 나에게 작은 질문을 던졌다.
“네가 사는 이곳은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

오늘 밤의 산책은 그래서 단순히 걷는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동네를 다시 바라보게 된,

작지만 특별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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