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극장이 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영화란 반드시 극장 스크린 앞에서
경험해야 한다는 믿음이 당연시되었다.
큰 화면과 압도적인 사운드,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는 순간들이야말로 영화의 ‘본질’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오래된 신화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전 세계 극장이 셔터를 내리면서
영화 소비의 흐름은 강제로 거실로 옮겨졌다.
이때 이미 탄탄한 플랫폼과 방대한 콘텐츠를 구축해둔 넷플릭스는
누구보다 빠르게 문화의 주도권을 잡았다.
넷플릭스가 단순히 “극장을 대체한 서비스”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영화라는 콘텐츠가 소비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1. 재미없어도 괜찮은 구조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시간과 돈을 크게 투자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재미없으면 그만큼의 허무와 실망이 뒤따랐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다르다.
지루하면 멈추면 된다.
몇 분 만에 다른 콘텐츠로 갈아탈 수 있다.
이 ‘위험 부담 없는 관람’은 영화 선택을 훨씬 자유롭게 만들었다.
2. 콘텐츠 다양성의 확대
극장은 흥행이 보장된 영화 위주로만 편성한다.
반면 넷플릭스는 흥행성이 부족하다고 외면당했던 영화,
해외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심지어 각국의 로컬 드라마까지
모두 세계 시장에 올려놓았다.
로마, 옥자, 아이리시맨 같은 작품들이
극장을 거치지 않고도 전 세계적 화제를 모은 건 우연이 아니다.
3. 몰아보기와 ‘시리즈적 사고’
에피소드를 한 번에 공개하는 방식은 ‘기다림’이라는 장벽을 없애버렸다.
그 결과, 시청자들은 한 주에 한 편씩 보던 습관에서 벗어나
하룻밤 새 시리즈 전체를 정주행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조차 흐려지면서,
이제 사람들은 스토리를 어떻게 나누어 소비하는지조차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코로나 이전에도 컸다.
하지만 코로나가 결정적인 가속페달을 밟았다.
– 강제적 전환: 극장들이 문을 닫자 사람들은 선택권 없이 OTT로 몰렸다.
– 시간과 공간의 자유: 집에서, 출퇴근길에서, 심지어 침대에 누워서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극장이 가진 물리적 매력을 빠르게 대체했다.
– 마케팅의 허상 붕괴: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문구에 속아 극장에 갔던 경험 대신, OTT에서는 10분 만에 그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대형 포스터와 예고편만으로 지갑을 열지 않게 된 것이다.
코로나는 결국 극장은 특별한 공간, OTT는 일상적 공간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각인시켰다.
극장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IMAX, 4DX, 돌비 애트모스, 프리미엄 상영관…
더 큰 스크린, 더 화려한 사운드, 더 고급스러운 의자를 내세워
관객을 다시 불러들이려 애썼다.
하지만 이 전략은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소수에게만 매력적일 뿐,
대다수 관객은 여전히 집에서 편하게 보는 쪽을 선택한다.
결국 극장은 ‘특별한 날에 가는 곳’으로 자리 잡았고,
일상 속 영화 소비는 완전히 넷플릭스 같은 OTT가 차지하게 되었다.
넷플릭스는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다.
우리가 영화를 소비하는 습관을 바꾸고,
영화의 위치를 바꿔놓았다.
과거 영화는 ‘큰 스크린에서 함께 보는 것’이었다면,
이제 영화는 ‘작은 화면에서 혼자 소비하는 것’으로 변했다.
극장은 더 이상 당연한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OTT가 당연한 기본값이고,
극장은 그에 비해 특별한 이벤트로 격하되었다.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코로나라는 거대한 변수와,
넷플릭스라는 준비된 플레이어가 있었다.
결국, 우리는 지금 넷플릭스 이후의 영화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가 다시 극장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솔직히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