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나의 속도로
1장. 멈추고 나서야 보인 것들
나는 늘 어떤일이라도스스로 해내야만 했다.
그게 욕심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조건이었다.
스무 살에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부터
내 통장은 늘 바닥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돈이 부족할때면
일일 알바를 찾아다녔다.
카페, 족발집, 행사장, 식당들.
몸이 버티는 한,
뭐든 했다.
그땐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내 생활비는 내가 벌고,
내 앞가림은 내가 해야 한다고 믿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잠이 부족해도,
몸이 힘들어도
일을 놓지 않았다.
그게 내 자존심이었고,
나를 지탱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나는 먼저 일을 구했다.
여행을 위해 쉬는 게 아니라,
여행을 위해 일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알바를 하고,
그 돈을 모아 경비를 마련했다.
주말엔 쉬는날이지만,피곤해서 그냥 쉬어버리면
결국 쉬는 날조차 쏜살같이 흘러갔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전역하자마자 일을 구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놓지 못했다.
책상 앞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머릿속은 늘 시급 계산으로 가득했다.
“오늘 하루를 쉬면 내일이 무너진다.”
그 말이 나의 신념처럼 박혀 있었다.
그렇게 몇 해를,
아니 몇 년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멈추면 불안했고,
쉬면 죄책감이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러다 문득,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던 일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한달을 미친듯이 일하고도통장정리를 할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돈 때문이었다.
돈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국 돈 때문에 지쳐버렸다.
생활비, 학비, 교통비, 식비.
언제나 ‘벌어서 써야 하는 돈’이 앞섰다.
일을 멈출 수 없었고,
그만두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돈 때문이었다.
돈을 위해 시작했지만,
그 돈이 나를 다 소모시키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때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살아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 나를 지치게 했을 뿐이었다.
멈추고 나서야 보였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내가 버텨온 이유들이,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나 자신을
뒤로 미뤄왔는지가.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다짐한다.
“이제는 조금 느려도 괜찮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쉬어가더라도,
그게 나를 잃지 않는 길이라면.
2장. 다소느림이라는 이름
멈춘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을 그만둔 뒤에도,
나는 한동안 불안했다.
하루 종일 손이 놀면 마음이 불편했고,
아침에 일어나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죄스러웠다.
그렇게 한동안은
‘쉼’조차 낯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원하게 된 곳이 있었다.
바로 인공지능사관학교였다.
처음엔 단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AI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나도 한번 배워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곳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꾸 돌아보게 됐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속도의 세상 속에서
나는 또다시 느리게 걷고 있었다.
코드를 배우는 속도도,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속도도
남들보다 한 박자 늦었다.
처음엔 그게 부끄러웠다.
‘또 뒤처지는구나.’
내가 늘 그랬듯,
느림이 단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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