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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19. 2023

한‧일 경쟁,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글로벌 다양성 이해 (문화 차이, 제7화)

전통과 장인(匠人)정신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전통과 장인(匠人)정신 

코로나로 인한 해외여행 자제 해제가 마무리되고, 엔저로 인해 일본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지자 일본으로 향하는 관광객이 급증하였다. 필자도 그중의 하나였다. 2월 하순, 아이들과 '후쿠오카'에 있는 '다이마루'라는 '료칸'에 머물며 온천욕도 하고 주변도 둘러보았다. '료칸'은 '메이지'시대에 개업하였는데, 일왕도 다녀간 적이 있다 한다. 필자가 투숙한 4층 '다다미' 방은 개업 당시 조성된 깔끔한 일본식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그야말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힐링'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료칸 한편에 있는 온천 대중탕은 평일 오후여서인지 나 혼자만의 차지였다. 유황냄새가 나는 뜨거운 물은 너무 맑고 깨끗하였고, 탕 바닥에 깔린 주먹만 한 호박돌들도 전혀 미끄러운 기색이 없어 오랜만에 청량과 청결을 마음껏 누리었다. 몸도 미끄럽기 그지없었고... 


'료칸' 다다미방에서 조식을 즐긴 '가이세키'(일본 정식) 

패키지 투어가 아닌 일본 내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여행 예약이어서, 일본인들이 하는 대로 일상을 경험해 보려 하였다. 새롭고 신선하였지만, 모두가 매 순간마다 일본어를 사용하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일본 대학에서 교환학생 경험으로 일본어를 잘 구사하는 아이 덕분에, 식당에서든 어디서든 그네들과 대화하며 현장감 있게 그들의 방식을 체험하였다. 예컨대,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는 '료칸'의 '다다미' 방에서, 우리끼리만 단출하게 직원 아주머니의 정성스러운 서빙과 설명을 들으며 즐겼는데, 이 아침 조식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값과, 분위기나 음식 수준 그리고 서빙의 정성까지 감안할 때, 한국과는 가성비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하였다.


'료칸' 뿐만 아니라, 구글 평점을 보고 찾아간 현지 일반 식당에서 즐긴 오찬이나, 지나치다가 들린 서민 식당의 석식 때도 매번 친절한 서빙과 먹는 방법을 설명 들었는데... 정말, 자신의 음식을 자랑스러워하며, 진심으로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감사'를 연발했었다. 만약, 저들이 우리네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인상을 받을까...? 내심,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은 너무 '프로세서'와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일본인보다 오히려, 인간미가 있는 한국을 좋아하기도 한다 하니...  


필자가 머물렀던 후쿠오카 '다이마루' 료칸 입구에서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이틀 뒤, 우리가 머물렀던 그 '료칸'에 대한 충격적인 기사가 인터넷 뉴스에 나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갈아야 하는 온천물을 1년에 단 두 번 갈아서 행정당국에서 조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뉴스 상 사진에 나온 대중탕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하여 자세히 보니 필자가 감동을 받았던 '후쿠오카'의 그 료칸이었다. 우리가 너무 더러운 물에 온천을 했었나? 아니,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는데... 바로 다음날, 다시 나온 구체적인 내용을 보니 '작년 8월 경 적발'되어 조사를 받고, 시정하고... 새롭게 정리했으니, 그래서 그렇게 맑은 물이었구나!  


2023년 2월 말, 지자체에서 조사 결과가 나오자 사장은, 그때서야 "항상, 물이 깨끗해서 자주 갈지 말라!"라고 지시했다고 자백하며 언론에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사장은 "사죄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여 버렸다. '잘못된 지시 - 문제점 적발 - 조사결과 발표 - 공식 사죄 - 자결'로 귀결된 그 일련의 과정을 보며, 필자는 참 안타까운 마음을 느꼈고, 더불어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유학의 영향으로, 조선과 일본은 비슷한 ‘사농공상’(士農工商) 신분제도를 가졌다. 다만, 조선의 사(士)가 선비를 지칭하지만, 일본의 사(士)는 무사를 의미한다. 선비는 공자와 맹자를 논하며 책만 읽지 아무런 생산력이 없었기에 '이대로'라는 현실 안주를 원했다. 변화는 자신들의 위상을 위협하는 일이니, 차라리 ‘안빈낙도’(安貧樂道)를 하더라도, 변화와 혁명을 억압하고 적대시하였다. 어릴 적, 실업자로 백수 신세인 이웃집 아저씨를 아주머니는 말끝마다 "아이고, 이 한량(閑良)아!..."라며 놀고먹는 남편을 원망했다. 한량은 아무 일도 안 하고 놀러만 다니는 양반으로, 글만 아는 무능력자인 셈이다. 이에 비해, 전국(戰國) 시대 때의 무사는 늘 죽느냐사느냐?”의 갈림길이다. 안주는 죽음이니 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더 낫게'를 찾아야 했다.

 

명치유신(1868) 직후, 무사출신 일본 지도층 인사들은 서양문물을 배우기 위해 해외사절단으로 서구로 시찰을 떠났다.  

일본의 조선 침략(왜란) 이후, 1603년 수립된 ‘에도 막부’는 한동안 찬란한 경제, 문화의 발전을 이루었으나, 조선의 실학사상은 그 빛을 잃었다. 1856년, ‘에도 막부’는 미국의 철선(黑船)에 굴복하였으나, 천황 파는 오히려 ‘더 낫게’를 추구하며 1868년, ‘명치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무식하다면 무식하다고 할 수 있는 '칼잡이' 무사들이 철선 군함과 대포를 만든 "서구의 문물을 배우겠다"라며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외 방문을 나섰다. 


반면, 개혁을 하겠다며 마지막 단말마로 내린 '단발령'(1895)조차 '부모님이 물려주신 신체의 일부인 상투를 자를 수 없다'며, 개혁을 거부하고 '이대로'를 고집하던 '딸깍발이' 조선은 끝내 식민지배의 치욕을 당했다. 


계속되는 ‘더 낫게’에 고무된 일본은 '부국강병'과 '탈아입구'를 내세우며, 중국과 태평양 연안을 무대로 온갖 수탈과 정복을 이어 갔다. 개구리가 황소를 삼킨 것은 관점의 차이, 생각의 차이였다. ‘이대로’에 안주하던 대가로 ‘더 낫게’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하였다. 사실, ‘이대로’에의 집착은 '무지의 발로'거나, 남산골 선비들 '한량'처럼 안주만 바라던 '기득권 세력의 권익 유지'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에 반전은 있기 마련이다. '료칸' 주인의 사소한(?) 실수는 '이대로'에 안주하다 폭삭 망했던 과거 우리의 모습이었다. 승승장구하여 온 일본의 성장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모습이다. 그럼에도, 일본 전국 시대이래, 항상 상대방보다 '더 낫게'를 추구하는 무인들과 장인정신과 직업정신에 충실했던 일본인들이 언제부터 법을 어기고 대충대충 일을 하게 되었을까? 전통적으로 가신으로서 주군을 섬기던 무사처럼, 농공상인도 대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기던 일본 기업인이,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진실성을 상실한 것일까? 이게, 지난 30여 년간 성장을 멈춘 원인일까? 등등의 의문이 떠 오른다. 전문가 말로는, 일본이 엔저를 유지하는 것은 세계적인 고물가에도 물가앙등을 막기 위한 것이고, 이는 결국 일본 국민들의 체감적인 소득 감소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데, 매달 1조 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여서는,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반면, 한국은 고물가와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단군이래 경제와 기술에서 최대의 번영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난 1960년대, 한국은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국민적 열망으로 모두를 일깨우고 '이대로'의 안주에서 탈피하려 시도하였다. 임진왜란 직전, 똑같은 '조총'을 놓고도 "한 정의 위력이 별로네..."라며 그 가치를 무시한 조선의 최고 무장 '신립'에 비해, '노부나가'나 '히데요시' 등 일본의 '칼잡이'들은 수백 정씩 조를 지어 교대로 쏴대면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조총'의 가치를 극대화할 줄 알았다. 발상의 차이와 전환은 조선의 운명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고... 


수백 년 뒤, 황무지 땅에 자동차 엔진을 만들겠다며 뚝심을 발휘한 '현대'나, '반도체'의 가치를 알아보고 누구보다 끈질기게 투자해 온 '삼성'의 혜안이 놀랍다. 그리고, 이어진 도전들... 철강, 화학, 건설, 조선, 심지어 문화 콘텐츠까지 "빨리, 빨리"를 외치며 쉼 없이 달리며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더 '더 낫게'에 올인하였다. 그야말로, 세계인이 주목하는 '한강의 기적'이었다. 반면에, 승승장구를 구가하던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서 보듯 오랫동안 제자리 걸음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잠에 빠진 토끼처럼 '거북이'를 무시한 자만에 빠졌던 탓일까..?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더 낫게'는 성에 차지 않는다. 비록 느리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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