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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29. 2023

계급과 직책은 차라리 '책임'의 무게

글로벌 다양성 이해 (문화 차이, 제14화)

책임과 책임감

계급과 직책은 잠시 동안 위임받은 것 

책임감과 합리적인 직장 윤리



책임과 책임감

정직성을 의미하는, 'Integrity'는 “누가 보지 않더라도 진실, 성실, 정직하게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바른 일을 해야 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다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Accountability는 '책임감'으로 주로 쓰인다. 자신의 역할에 따라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알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궁극적인 책임을 지는 것으로 보다 '넓은 의미'의 뜻이다. 그렇게 포괄적으로 쓰다 보니, 때로는 '근무지들이 자신의 출석 여부를 점검'한다는 '좁은 의미'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코로나 19 기자 브리핑 장면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미국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3월 말부터 매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TV 중계로 “감염병 비상방역 브리핑”을 실시했다. 여기에는 대통령, 부통령, 질병관리 본부장, 기타 백악관 참모진들이 먼저 브리핑을 하고 출입 기자단의 질의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감염병 주제에 대한 질의/응답이었지만, 가끔씩 대통령 자신이 지나치게 업적을 들먹이며 자화자찬을 한다는 비난도 있었고, 대통령과 기자들이 어떤 정치적 사안으로 대립하며 볼썽사납게 입씨름을 하는 모습도 있긴 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참모들이 자신들이 노력한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바라본 것은, 직책 고하를 불문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어떤 질문이 나오든, 자신이 '아는 바를 알려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미국 백악관의 참모쯤 되면 대단한 사람들이겠지만, 하나같이, 전문가다운 박식함이나 논리의 정연성은 물론, 자신이 담당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지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책임 있게 일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 게 'Accountability'의 원래 뜻일 것이다. 


국회 청문회 모습

그런데, 의미의 혼동 탓일까? 우리나라는 국정감사나 기타 청문회 등의 중계 현장을 보면, 많은 고위 공직자들은 “잘 모르는 일이다”, “확인해서 알려드리겠다”, “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렵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는 식의 답변을 많이 한다. 말꼬리를 잡히지 않으려는 방안이겠지만, 그러려면, 뭣하러 그 자리에 있는지...? 그게 처신을 잘하는 것인지...? 어쨌든, 모두가 직책만 있지 업무에 무지하거나, 문제를 알고도 외면하거나, 상대를 무시하는 행위로 '책임감'의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가끔, 어떤 상급자들은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고 ~를 해라”라고 하급자에게 지시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한 듯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책임지겠다'는 것은 '행위의 잘못에 대한 'Responsibility (책임)'의 의미다. 앞서 말한 'Accountability (책임감)'과는 그 의미나 깊이가 다르다. 서구의 합리적인 인간상은, 주어진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인간'이 전제 조건이다. 그리고, 성실한 인간은 비록 어려운 일이라도 회피하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서 '할 바를 다하는 사람'이다. 이런 개개인의 마음이 선진국이 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계급과 직책은 잠시 동안 위임받은 것 

그런 면에서, 진정한 군대 문화, 군대공동체 의식은 계급이나 지위 고하를 떠나 개개인의 인격과 가치를 존중해 주는데서 출발한다. 오래전 미 8군에 근무할 때, 주한 미군과 한국군 지원단 장교가 ‘팀 빌딩 (Team Building)’ 행사를 갖게 되었다. 미군들은 한국군 장교들에게 "사병들도 함께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런데, 정작 카투사 병사들은 한국군 장교들과 가는 거라면 ‘아무도 않가겠다’는 듯 모두들 표정을 구긴다. '갑질'이 있을까 염려되는 사회에서는 ‘팀 빌딩’은 어렵다. 서로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할 수 있으니까…


미군의 지휘권 교대식 장면

"계급이 무엇이고, 직책이 무엇인가?" 계급은, 내가 ‘쟁취한 특권’이 아니라, ‘헌신해 온 노력의 결과’이고 ‘쌓아 온 경력에 대한 인정’ 일뿐이다. 그리고, 직책은 그에 맞는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적재적소에서 부여된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능력에 따라 임무나 하는 일의 범위가 다를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계급에, 권위에 짓눌려서도 안 되고, 직위나 직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여 대해서도 안 되고, 차이를 두어도 안 된다. 계급이 높다 하여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군림하려 들거나, 남보다 높으니 ‘남다른 대우를 받겠다’는 생각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계급이 높을수록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나보다 남을 더 위하는 모습이 모두에게 자연스럽다. 가진 자가 더 많이 베풀 수 있으니까. 그리고, 진정한 프로라면, 업무에 ‘내’가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자연스러운 ‘평등’과 상호 ‘존중’의 정신이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든 고귀한 존재로써 서로 존중해야 한다.


개개인의 인격이 존중되면, ‘평등’은 ‘공정’을, ‘공정’은 ‘다양성’을 한껏 고조시킨다. 따라서, 이런 사회는 계급이나 직책을 들이밀며 '갑질' 행세를 하기 어렵다. 군인, 공무원의 계급과 직책은, 특권이 아니고 잠시 위임받은 것이다. 이 점, 선진국과 후진국 차이는 극명하다. 미군은 상급자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다. 평등과 상호 존중이 기본이라,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보다 '해야 할 바'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면 된다. 그러니까, 하급자라 해서 비굴해질 이유가 없다. 말 안 들어?” 하며 아랫사람 휘어잡으려고 부당한 지시를 하는 등 누군가가, 괴롭히거나 권력을 남용하면 신고하면 된다. 상호 견제랄까? 때문에, 상급자의 잘못을 발견하면 신고해야 잘못을 막을 수 있다. 정당한 고발은 ‘고자질’이 아니다. 결론은 사람이 아니라제도(System)의 문제다


미군에서 장교는 주로 훈련 계획이나 작전 기획을 책임을 지고, 부사관은 사병 교육과 훈련 실시에 대한 책임을 갖는데... 특이한 것은, 특별한 '존칭어'가 없는 미군부대에서 부사관이나 병사가 장교에게 할 수 있는 존중은 "Sir!"라고 부르고, 자세를 가다듬거나 경례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사관과 사병 상호 간에는 길거리에 마주쳐도 경례를 하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이민자 나라 미국이 서구의 문물을 그대로 가져온 탓이라 생각한다. 과거, 제국주의 독일군은 귀족출신만 장교가 될 수 있었다. 평민 출신은 대학을 나와도 부사관이었고... 그런 데서, 나온 차이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각 나라마다 군대 형성 과정에서 역사적 배경이 다르니, 동일한 기준으로 그들의 관습을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사고방식이 다르면 생활관습도 달라지는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군 의무 복무 사병끼리 서로 경례하는 등 너무 지나치게 '서열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서열 없이 그냥 상호 존중하면 될 일인데... 서열이 있다 보니 얄팍한 계급장에 거들먹거리며 왕초노릇 행세를 하거나, 약자들에게 군림하려 든다. 일부 군 간부는 자신보다 계급 낮은 여성 동료에게 계급을 들이밀며 성추행하려는 천박한 심성도 보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계급'으로 대하는 모습은 ‘책임에 대한 진실한 태도’가 아니다. 계급은 주어진 책임의 범위일 뿐이다. 


미군들은 확실하게 계급을 권한이라기보다 책임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아니, 권한이 아닌데 뭣하러 계급을 가지려 한다고?"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권한보다 자긍심이나 명예심, 사명감이 훨씬 중요하다. 국가나 군 조직, 혹은 주민들이나 남이 나를 원한다는 것, 그게 봉사와 헌신의 이유가 된다.  


미 8 군내 카투사 사병용 한인식당은 조금 허름하지만 한국적이다. 여기에, 가끔씩 미군 장군이나 대령들도 와서 음식을 자유롭게 시켜 먹는다. 고급장교도 공적이 아니고 개인으로 식사하는 것은 사생활이며, 자유로움이며,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계급이 되면, 그런 자유를 만끽하기보다 공, 사간에 남을 의식하며, '장군 식당'이니 '대령 식당'이니 하면서 권위주의나 관료주의에 젖는 것 같다. 하지만, 낮아지고 배려할 때 서로 간에 인간미가 더 진해지고, 상, 하간에 벽을 허물고 더 단단해질 터인데… 그런 게,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닐까? 서구 발전의 원동력은 이기주의 대신, 자기 자신에게 성실하고, 남에게 정직과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이다. 진실성은, 남이 보든, 안보든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우직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책임감과 합리적인 직장 윤리

요즘 들어, 우리는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우며 정시 퇴근을 종용하며, 근무시간 단축하고 최저임금을 올린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제도보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근로자의 업무 집중성, 업무강도일 것이다. 야당이나 노조 관련 단체에서는 독일의 근로시간 단축을 예로 들면서, 근로시간을 줄여달라고 주장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회사에 머물며 ‘일하거나, 놀기’도 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을 순수히 업무에 집중하도록 근무자세를 바꾸는 것이 대국민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직장에서 근무하는 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미 한 세대 전부터 중진국이었으니, 여전히 중진국은 아닐 테고… 일류 국가의 문턱에 와 있는 걸까? 


자동차 조립 공장

일본에서는 지인에게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곧바로 답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근무시간 중 개인적인 통화나 잡담을 금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H 자동차’는 사측과 노조 간에 근무시간 중에 ‘와이파이’ 사용을 허용하는 여부로 뜨거웠다. 사측은 ‘품질 저하’를 우려하며 근무 시간 중에는 ‘Wi-Fi사용 불허’라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언제든 폰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회사 근무 시간 중에 친구나 가족과 언제든지 카톡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겠다는 한국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고 한다. 


또한, 일본인들은 노트북에 업무용 외는 절대로 개인 파일을 저장해 두지 않아, 노트북을 집에 들고 갈 일도 없고, 아예 휴대폰을 개인용과 업무용으로 분리해서 2대를 들고 다닌다고 한다. 당연히 퇴근 후에 직장 상사의 카톡도 없을 것이다… 일과 개인의 철저한 분리다. 이처럼, 무조건 ‘카톡’ 하지 말라고 하소연하는 것보다, 물리적으로 분리시키는 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민원실 전경(출처: 뉴스1)

우리 사회의 관공서 등에 가보면 대부분 공무원은 매우 바쁘다. ‘멀티 태스킹’의 대가(?) 답게 분주하게 자기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책임감 없이 기본적 업무에 충실치 않으면 업무의 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스템은 그물망의 코처럼 촘촘하게 엮인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작동하는데, 일부 무관심하거나 느슨한 인사가 한편에 있다면 조직의 효율성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참고로, 해외 파견지에서 만난, 이집트나 파키스탄의 공직자들은 대부분 시간을 개인적 일이나, 방문자와 차를 마시는 일에 소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집트 정부가 이런 현상을 파악하려 외부기관에 연구 의뢰하였더니, 하루 8시간 일과 중 정작 공무에는 단 72분 정도만 집중하였다고 한다. 이른바, “근무시간 도둑질”이 만연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권한이 많은 만큼 책임보다는 '사람의 도리(?)'에 충실하였던 것일까? 


시차와 무관한 화상회의

이에 비해, 미국사람과 근무하면, 자신들의 일만 하고, 사담은 별로 없다. 간혹, 농담이나 사담을 하더라도, 길게 하기보다 그저 웃자고 잠시 하는 정도이다. 주식이나 골프 이야기를 할 만도 한데… 이들은 그런 이야기는 아예 하질 않는다. 물론, 전화나, 근무시간 중의 대화도 거의 업무 관련이다. 개인 생활은 개인적으로 하는 거고, 직장은 업무를 하는 곳이다. 미 8군에 근무하는 미군도 대령이든, 장군이든 밤낮이 없어 보인다. 병사들이나 초급 간부들은 여유를 즐기지만... 본토와 무슨 화상회의라도 하려면 시차 때문에 꼭두새벽에 나와야 한다. 


과거, 육군 본부에 근무하던 많은 장교들은 밤늦게 퇴근하였다. 최전방 군인들이 어렵게 휴가를 얻어 상담하러 찾아왔던 탓이다. 일이 일이다 보니, 대부분 낮시간을 이들과 상담하는데 보내고 나면, 저녁 이후에 다시 출근하여 지시받은 일과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있을 때, 당시 ‘지휘참모대학 총장 겸 제병협동 사령관’인 ‘밀러’ 중장의 관사 만찬에 초청되었다. 그는 관사 2층 한편에 있는 별도 집무실을 보여주었다. 그가 비대면 보고서를 일일이 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숙소에 마련된 집무실은 조금 낯설었다. 군인들은 “급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바로 연락하라”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전쟁에는 밤낮이 없다.


그런데, 유교적 사고방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일부 공직 사회에서는, 비상시조차 ‘높은 사람 주무시는 것 방해하지 말자’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몇 년 전, 세월호 사건 발생 때, 모 전직 대통령 비서진들이 대통령의 수면시간에는 긴급보고를 막았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은 “비상시에 책임지고 일을 잘 처리하라”는 뜻이지, "계급이 높으니 비상시에 더 편하라(?)"는 건 아니다. 높은 공직자일수록 상시, 비상시 불문하고 더 큰 책임감으로 자신의 일에 전념해야 한다. 프랑스 귀족들에게 권력과 명성에 갈맞는 사회적 책임을 지게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처럼, 계급은 권한보다 차라리 책임의 무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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