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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30. 2023

'프로' 정신과 각자도생(各自圖生)

글로벌 다양성 이해 (문화 차이, 제15화)

군대 이야기 - '프로' 정신과 '각자도생'

합리적인 개인주의와 '프로' 정신

각자도생 (各自圖生)



합리적인 개인주의와 '프로' 정신 

‘항재전장(恒在戰場)을 떠올리니, 필자가 전역 후 미 8군에서 같은 사무실에 있었던 W라는 미군 고급장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몹시 더웠던 어느 날, 연합훈련을 담당하는 우리 일행은 한국군과 훈련 협조를 위하여 한국군 부대를 방문하게 되어있었다. 출발시간쯤, 모두가 차에서 W를 기다리고 있는데… 엄청 더운 날씨에 누군가가 철모를 쓰고, (총만 없이) 완전군장을 한 채 다가왔다. 뜻밖에도 W였다. 


한미연합훈련 현장 작전회의

“이게 다 뭐냐?”라고 묻자, 그는 웃으며 “Fight Tonight!”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를 되뇐다. 사실, 미 8군의 미군들은 각자 군장을 꾸려 사무실에 갖다 놓는다. 어쨌든, 고지식하고 뜬금없었지만, 우리 일행 중 아무도 웃거나 면박을 주는 이는 없었다. 그게 원칙이니까… “이번 방문에 그런 거 필요 없다”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장을 트렁크에 싣고, 방문지에서도 방탄조끼와 철모를 쓰고 다녔다. 그의 고지식함은 한국군 생활에 익숙한 필자에게 다소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작, 정전 상태인 “한국 군인이 저런 자세를 가져야 되는데…?” 원칙을 알지만 그저 그렇게 편하게 살다 보니, “아무도 원칙을 지키지 않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필자는 과거 대위 시절, 한미연합 야전군 사령부에서 작전 상황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다. 작전 상황실의 근무체제는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으로 12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였다. 그곳에서 2년 정도 근무한 필자가 본 바로는 미군들은 밤샘 근무를 하는 동안 '절대로 졸지 않았다'. 타국 군인 필자를 의식해서였을까?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저들의 직업 군인 의식의 한 단면을 보았다. 


한국군과 미군은 매년 연합으로 ‘000’ 훈련을 한다. 어느 핸가, 동해안에서만 하던 훈련을 이전에 해 본 적이 없는 서해안에서 하기로 했다. 서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해안선이 복잡하여, 미 측은 대형 선박도 참여하기에 이 훈련을 철저히 준비하였다. 훈련장을 불시에 찾아보면, 준위-중사 급의 훈련준비 요원들은 만조, 간조의 수위와 갯벌 상태 등을 점검하기 위해 여름, 겨울, 봄 동안 한 번에 수 일씩, 한 번에 몇 시간씩 바닷물 속에 들어갔다. 또, 중, 대령급은 중간중간 협조회의로 각 분야 요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또 새로운 임무와 절차를 반복하며 훈련계획을 작성해 갔다. ‘이번 훈련은 정말 잘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미 8군은 전 장병 체력단련을 강조하며, 새벽부터 아침 식사까지 체력단련을 한다. 지휘관이 바뀌어도 계속하고, 계급 불문, 영외 거주자도 열외가 안 된다. 매일 아침, 춥든 덥든 새벽부터 훈련에 열중하는 미군들을 보면 “과연, 전쟁경험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한다. 폭염이나, 우천, 미세먼지 등 궂은 날씨라면 한 번쯤, 이런 저련 핑계를 대며 훈련을 쉬고 싶을 텐데... 모두가 묵묵히 수행한다. 어차피, 전쟁은 기상과 무관하니 훈련 수준 유지는 지휘관의 훈련목표이다. 체력단련은 달리기, 행군 등이지만, 때로는 방탄복에 완전군장까지 메고 수 마일 거리를 달린다. 전투체육이 곧 훈련이다. 주말에도 실내 체육관에서 체력단련을 하는 이들로 그득하다.


부대 깃발을 앞세우고 아침마다 달리기 하는 미군병사들

어느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병사들이 달린다. 방탄조끼에, 배낭을 메고 방독면을 쓰고 안전요원인 비무장 동료와 함께 달리는데, 힘이 든 지 땀을 뻘뻘 흘린다. 그런데, 훈련이 끝난 어느 병사의 배낭이 다른 병사와 달리 유독 커 보여, “기준 휴대품 외에 뭐가 필요해서 이렇게 크냐?”물으니, 씩 웃으면서,  “내가 전투에 나갈 때 필요한 것들”이라며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것들을 보여준다. 아프간 전 참전자답게 전투에 필요할 것을 생각하며 배낭을 꾸리고, 그리고 그것을 평소에 메고 달리는 연습. 이게 전쟁에 참전해 본 프로 직업 군인들의 진정한 자세가 아닐까? 


이뿐 아니다. 어느 날 평택기지 내 군 식당 (D/FAC: Dining Facility)에서, 방탄복에 완전무장으로, 기관총을 옆에 놓고 사수, 부사수가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아침 회의차 식당에 들른 필자가 “무슨 훈련하니?” 물었더니, “그냥, 부대의 일상적인 훈련…”이란다. 그럼에도, 식당에 공용화기까지 들고 들어와서 조별로 함께 먹는 모습을 보니 ‘항재전장(恒在戰場)’을 실감한다. 하긴 밥 먹는 식당이라고 군인 정신이 다를 이유는 없다.


이처럼, 미군들은 말로만 아니라, “훈련 간 땀 한 방울은 전투 간 피 한 방울이다.”라며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 필자는 과거에, 훈련을 할 때마다 날씨를 걱정하였고, 또 군장(배낭)을 꾸리려면, 행군 능력 향상을 위해 훈련 자체보다 ‘어떻게 하면 군장 무게를 좀 더 줄일까?’에 온갖 신경을 써며 훈련 준비 과정을 더 염려했었다. 전시보다 평시에 대비한 셈인데... 지금 보면, “그러고도, 내가 군인이었나?!”라는 자책감이 들기도 하다.


미군들은 전문 직업인답게 부여된 일은 절대 대충, 대충 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다한다. 이들은 ‘내’ 중심이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 중심이며,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다 한다. 이런 마음자세가 ‘나’ 중심의 합리적인 개인을 만드는 비결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 탓으로 세계적인 강군이 되었을 것이다.   


각자도생 (各自圖生)

2015년 중반, ‘MERS (중동 호흡기질환 증후군)’라는 질병이 전국을 강타하였을 때, 질병관리 본부 등 보건 당국이 허둥거리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SNS상에 소위 ‘각자도생 (各者圖生)’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이는, 어느 전직 대통령의 말처럼, “우짜든지, 살아남아야지!”라는 뜻이다. 정부나 지휘관 등 윗사람이 무능하여, 아랫사람으로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삼삼오오로 무리를 만들어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아 나선다는 건데… 상급자의 무능에 대한 불신이 나은 산물이었다. 

 

속수무책과 혼란... '메르스' 성찰

세월호 침몰사건 발생 시, 상황을 가장 먼저 인지한 선장이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었다. 세월을 거슬러, 6.25 전쟁 초기에 한국군은 유독, 중공군에게 호되게 당했다. 한창 북진 중이던 1950년 11월, 국군 2군단의 6, 7, 8사단, 그리고 1951년 4, 5월의 3군단이나 예하 3, 9사단들은 중공군의 공세에 단 한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당시, 전장에서 비교적 상황을 빨리 판단할 수 있었던 지휘관들이 하나같이 먼저 살자고 꽁지를 내뺐다. 지휘관이 도망치면 남은 병사들이 누구의 통제하에 무슨 방법으로 살길을 찾겠는가? 세월호 선장의 비겁한 모습은 과거 전투에서의 지휘관 모습과 서로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이에 비해, 1951년 영국군의 ‘글로스터’ 대대가 ‘적성’ 일대에서 벌인 전투는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공군의 공세에 포위되어 끝까지 저항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대대장은, “나는 부상병과 여기에 남을 터이니 각 중대는 살길을 찾아 떠나라!”라고 지시한다.(백선엽의 6.25 징비록-142, 영국여단 전투 참조) 어디서 많이 보았던 장면 같지 않은가? 영국군의 모습은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할 때 보았던 그 배의 선장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휘관이 부대와, 선장이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는 모습... 영국은 그런 나라인가? 물론, 그들도 흩어져 도주하다 대부분 포로가 되었지만, 그 과정이나 지휘관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6.25 전쟁 이후, 한동안 유행어로 쓰이던 말로, “군대에 가면 적당히 요령을 잘 피워야 한다.”라는 게 있었다. 예전에, 자식이 군에 입대할 때, 어머님들이 꼭 해 주셨던 말이라고 한다. 사실, ‘요령 (要領)’이 뭔가? 구 일본군들이 ‘전투에서 꼭 숙지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서 요약한 것’이 요령인데… 어쩌다가 우리 군에서는 “적당히 알아서 잘 헤쳐 나가거라.”라는 뜻으로 변한 걸까? 군에서, '열심히 해 봐야...', '용감하게 해 봐야...', '적극적으로 해 봐야…' 등이 주는 결과는 더 손해를 보거나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불신이 낳은 이 엄청난 결과로는 절대 강군이 될 수 없다. 어떻게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까? 참,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보병사단이 한나절 전투에서 전방 3개 연대가 사라지고 사단 본부만 남는 황당한 상황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식을 전투병보다는 행정병으로 보내길 원할런지 모른다. 그 때문에 과거, 한국군에 사병으로 입대하는 병사들 가운데는 한동안 야전 기피, 행정 선호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죽도록 행군하는 것보다 밤을 새우면서 행정일을 보는 게 더 편하고(?), 양반스럽다(?) 기보다도, 여차하면 꽁지를 내빼는 지휘관에 대한 불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지휘관 옆에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했을 것이다.


최근 북한은 핵, 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로 전략적 비대칭성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면도 있지만, 우리 국군은 무기, 장비, 시설, 복지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여느 선진국에 못지않으며, 각종 무기체계도 적이 두려워할 만큼 잘 배비되어 있다. 특히, 폐쇄된 사회에서 경직된 조직내의 우직한 조직원만으로는, 개방된 체제에서 유연한 조직 속의 자유분방하고 자주적인 구성원들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직의 힘이란 '뭉칠 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법이다. 유연한 조직이 경직된 조직보다 뭉치기 쉽다. 그리고, 뭉치도록 만드는 그 응집력의 중심에는 지휘관이 있다. 체게적으로 훈련받고, 각종 악조건하에서 단련된 유능한 지휘관 앞에서 각자도생은 이제 옛 말이 되었다. 숱한 전쟁 역사는 지휘관의 의지와 결단 그리고 강한 정신력과 불퇴전의 의식은 자신과 부대는 물론, 국가와 민족의 운명까지도 바꾸어 놓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지휘관이든 누구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속한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강한 의지야 말로, 진정한 개인주의와 프로정신의 결정체일 것이다. 필자는 물론, 우리 국민 모두는 우리 군이 지휘관을 중심으로 똘똘뭉쳐, 어떠한 외부 침략도 물리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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