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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31. 2023

'인간 존중'과 배려심

글로벌 다양성 이해 (문화 차이, 제16화)

인 존중과 배려

'인간 존중'의 마음 


인 존중과 배려

미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만났던 대부분 미국인들은 피부색이나 계급에 무관하게 최소한의 기본 인성에, 건전하고 성숙한 의식으로 살도록 교육받은 사람들 같았다. 물론, 필자가 살았던 동네가, 군부대 안이거나 학교 근처라서 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미국사회가 범죄율도 높고, 좀 모자라거나 이상한 사람도 많다고 알고 있지만, 그와 달리,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 일반적인 가치관이나 관점은 우리 사회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한 가지 사례를 들면, 뒤따라 오는 타인을 위해 출입문을 잡아주는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일 들락거리는, 아파트나 사무실에서 자신을 위해서만 출입문을 열고 닫지, 절대(?) 둿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 같지 않다. “할 줄 몰라서 그런가?” 하고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잠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준 적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따라 나오던 사람들은,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잡아주겠다고 하지도 않았고,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 모두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지나쳤다. 한 마디로, 문을 잡아주는 것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보이는 예의' 정도로 알고 있으니, 상, 하 관계가 아닌 사람은 서로에게 해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3초의 배려, 둿 사람에게 문 잡아 주기(출처:조선일보) 

그런데, 그런 일을 경험하고도, 또 실수를 하였다. 일전에,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식당 내 커피머신에서 커피 두 잔을 빼서 양손에 들고 나오다가, 앞서가는 사람이 그냥 문을 닫고 가는 바람에 커피를 쏟고 약간의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필자의 주변 미국 사람들은 이런 경우 의례히 문을 잡아 주었으니, 누가 문을 좀 잡아 주리라 기대하고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하려 했는데, “웬 걸…,” 양손에 물건을 든 사람이 나오는 걸 뻔히 보면서도 매몰차게도 문을 확 닫고 나가버렸다. 


아는 사이나 상하관계가 아니니, “내가 너에게..., 왜?”라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배려하는 것을 배운 적도 없고, 체질화되지 않은 탓인지? ‘모르는 사이’라는 잘못(?) 외는 잘못이 없는데… 양손에 물건 들고 따라 나오는 사람 보면, “못 본척하기보다, 좀 배려해 주면 어떨까?” 3초 정도 신경 쓰면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 되는데... 그에 비해, 자신에 뒤이어 누군가 문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면, 자신이 양손에 물건을 든 경우에는 발로라도 문을 붙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미국인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실, 이는 글로벌 문화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생긴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OPEN’ 버튼을 눌러 주는데..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배려해 주면, 모두가 기분이 좋을 수 있는데... 도대체, 엘리베이터 문보다 더 위험한 건물의 출입문 도어는 왜 한사코 안 잡아주는지? 아마도, 호텔 '도어 맨'이라는 직업을 연상하였기 때문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런 건 체험적으로 몸에 배여야 하는 것 같다. 나가면서 뒤를 보고 따라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연 뒤, 뒷사람이 올 때까지 잡고 있다가, 둿 사람이 문을 잡을만한 위치에 오면 슬며시 인계하면 되는 일이다.    


출, 퇴근길 만원 버스

출, 퇴근길 만원 버스 안에서 눈에 안 보이는 갈등이 연출된다. 좌석의 통로 측에 앉은 사람은 “곧 내린다”며 굳이 통로 쪽을 고집하고, 이어 올라온 승객은 '안으로 들어가라'며 상대의 양보를 촉구한다. 하지만, 먼저 앉은 사람의 마음이다. 또 다른 모습은, 좁은 길에서 서로 교행 할 때도 비켜서지 않고 있다가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기도 한다. 대부분 외국인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이지만, 어깨를 툭 친 사람은 남의 불편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내 갈길만 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빠 죽겠는데, 옆을 둘러볼 여유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퇴행적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진정 성숙한 선진국이라면, 약자나 어려운 입장의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면 좋겠다. 


'인간 존중'의 마음

우리 사회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옳음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고함을 지르고 호통을 치는 일이 많다. 어느 날, 한국인 직원들 간에 약간의 불상사가 있었다. 약간 직책이 높고 나이 든 남자가 약간 나이 어린 여자에게 “네가 업무적으로 000을 잘못하는 바람에 나의 입장에 어렵게 되었다”며 야단과 호통을 치니까, “사실이 그렇지 않다”라고 대응하던 여자가 억울한(?) 마음에 그만 울어버렸다. 그런데, 소란이 벌어지자 하필이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목격하였고 급기야 그들의 상급자에게 보고가 되었다. 잠시의 흥분으로 나이 든 사람에게는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고함지르고, 호통치고, 악쓰는 일 - 상대를 무시하는 일

미국인들의 관점은 분명하다. “고함을 지르고 호통을 치는 일 (yelling, screaming, shouting)”은 상대에 대한 무시에 다름 아니다. 그 남자에게, “아무리 누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고함을 지르고 호통을 치는 일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일의 잘, 잘못 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 “같이 일을 하면서, 비록, 욕을 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다. 사람들의 희로애락은 개인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거의 유사할 터이다. 아무리, '장유유서' 유교적인 관습에 익숙한 우리 한국인들이라 할지라도 누구한테 야단맞고, 욕먹고서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이 바로 유엔이 요망하는 리더십이다. 유엔은 권위주의나, 상명하복 식의 리더십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냥 동등하게 상호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부여된 직책과 권한에 따라 팀워크를 이루며 업무를 수행하는 리더십을 원한다. 어차피, 세계 각국의 기여로 지원받은 인원들이다. 각각의 수준이나 능력이 너무 상이한 사람들이 ‘유엔 헌장’ 정신 하나로 뭉쳐 일을 해나가는 조직이다. 당연히,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유엔에서는 비록, 일이 늦게 추진되고,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인격적으로 상호 존중하고 규정대로 하였다면, 설령 문제가 생겨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이 같은, 유엔의 신종 관료주의(?)는 미국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지만, 국제기구에서는 효율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요란을 떨거나 남을 닦달거리며 일을 몰아쳐서 하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엔에서 말하는 국제화의 기준은 ‘인간존중’의 정신이다. 일보다 개개인에 대한 존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엔의 업무 스타일이다. 2018년 8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별세했다. 아프리카 세네갈출신인 그는 유엔의 평직원으로 시작하여 35년 만에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고, 많은 분쟁지 당사자를 타협으로 이끌어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장점은 모든 이에 대한 '공손함'과 '절제된 언어'의 사용이다. 그의 사례에서 보듯, 유엔은 ‘업무 효율성’보다 ‘인간 존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어디에서든 일을 할 때,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미국 영화 등을 보면 전투라는 긴급한 상황이 전개되면 허둥대는 신참들을 '욕설을 하며' 윽박지르는 부사관 등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런 사람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군들과 근무하며 느낀 사항은, 주요 훈련 등 비교적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욕설을 하거나 고함을 치는 일을 매우 꺼리는 것 같았다.   


왜 그럴까? 전투든 뭐든 그 팀만으로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 항상, 다음이 있고, 또, 다른 임무가 있는데 서로 간에 감정 대립이 생기면, 가면 갈수록 조직의 역동성은 저하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고 아랫사람을 핍박하거나, 위협해서 일을 처리하였다면, 그 결과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나중에라도 그 과정 상에서 발생하였던 '인간 무시'의 문제점을 더 크게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함부로 자기도취에 빠진 감정 표현을 감히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조직관리는 일시적인 흥분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관리자는 그 과정에 신경을 써야 하고, 인화와 팀워크를 이루는 ‘인간 존중’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의 사회적 시스템은,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구성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며, 어떤 방향으로 그들의 에너지를 유도할 것인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남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파티

이제, 시대가 바꿔었고, 가치관이 변화하였다. 어린아이도 존중받는 세상이다. 미군 사령부나 각 기지에서는 한국군에서 미군에 파견된 KATUSA (카투사) 병사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도 일상화되어 있다. 미군들은 어찌 보면 가장 계급이 낮은 카투사 병사들의 전입, 표창, 전역행사 주관은 물론, 생일잔치나, 한국의 명절 등 각종 행사에도 부서 전원이 참석하여 함께 축하하고, 선물도 주면서 격려해 준다. 뿐만 아니라,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파티 때는 사무실, 복도, 화장실 등을 관리하는 미화원 아주머니에게도 행사를 같이하자고 권하고 선물을 나눈다. 우리 사회도 이처럼, ‘임무보다는 인간 존중’이 우선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선진 사회로 도약해야 한다.


이처럼, 주위와 남을 배려하는 모습에 차이가 나는 것은, 국가 간 교육의 차이일까? 아니면, 전통이나 문화의 차이일까?...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개개인마다 '뭐가 나은 지?'를 생각하며, 큰소리 내지 않고, 노약자, 여자를 배려하고, 음주운전, 보복운전, 주취횡포, 침 뱉기, 쓰레기, 담배꽁초 투기... 등등을 하지 않고, 매사에 '인간 존중'과 기본 예의를 지킨다면, 우리 사회도 훨씬 살만하고 덩달아 국격(국격)도 올라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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