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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Apr 07. 2023

'공동운명주'(酒)와 대동단결

글로벌 다양성 이해 (문화 차이, 제22화)

공동운명주(共同運命酒)

대동단결(大同團結): 집단지향적 한국인 정서

인간관계와 합리주의


앞서, '우리가 남이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에도 이어서 군과 관련 이야기를 계속한다.


공동운명주(共同運命酒)

생사고락을 같이 하기에 군대만큼 ‘전우애’를 내세우며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집단도 보기 드물다. 오래전, 군에서 지휘관을 할 때의 일이다. 여단에서 무슨 행사가 끝난 뒤, 뒤풀이로 간부들을 위한 회식을 하였다. 누군가가 반짝 아이디어를 냈다. 각 대대의 단합된 모습을 알기 위해 ‘공동 운명주’를 마시는 게임을 하자고…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부대에 대한 ‘애대심’으로 뭐든 질 수 없다는 오기들이 강하였다. 


‘공동운명주’란 먼저, 커다란 세숫대야에 소주를 사람 인원수만큼 부은 후, 각 대대의 주요 간부들이 나와서 '대야'의 술을 마시는 게임이다. 사람마다 단숨에 들이켜야 하며 만약에 숨을 쉬기 위해 잠시 쉬게 되면 다음번 사람에게 차례가 넘겨진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맨 마지막 사람까지 마신 후에 남아 있는 술의 양에 따라 순위를 정하게 되는데, 주요 직책별로 부사관 3명과 지휘관 포함 장교 4명이 나섰다. 모두가 환호하고 부대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게임이 시작되었다. 


음주 회식 문화

자칫하면 병원에 실려갈 수도 있는 위험한 게임이고, 지금이라면 직장 내 ‘갑질’이라며 고발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 한들 저런 식으로 마시고 싶겠냐마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바람에 사양도 못하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호기롭게 나서야 했다. 하지만, 술 마시는 일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일부는 급하게 많이 마시려다 된 통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런 모습에 승패를 떠나 “쓸데없는 일”이라고 질책할지 모르겠으나, 그땐 그 무엇보다도 그런 승패가 중요하였다. 그게, ‘우리’ 부대의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술의 이름조차 '공동운명주'였으니, 출전한 부대원들은 '부대 명예를 드높인다'는 구호아래 죽기, 살기를 불사했다. 


미군은 어떨까? 미군 지휘관은 한국 지휘관처럼 ‘부대 운영비’ 등 사기 복지비가 별도로 없다. 어떤 행사가 있다면, 각자가 돈을 내어 공동체적 분위기에 함께 어울린다. 자연히, 먹을 만큼 먹으니 술 마시기 경쟁을 할 일도 없다. 그리고, '애대심'이 지향하는 바가 지휘관이 아니고, 맡은 바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거다. 그래도 사기는 높다. “으쌰! 으싸!”만이 전부는 아니다. 인식의 차이다. 


그런데, 이처럼 '연대'를 강조하던 유산은 사상적 ‘연좌제’ 외에,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예컨대, 과거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연대 보증’ 제도가 있었다. 일단, 친구나 친척을 위해 보증을 서면, 그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대신 갚아야 하니, 아무도 보증 서는 일을 내켜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는소리를 하는 친구나 친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보증을 섰다가,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드라마 등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어찌 이런 무리 수를 두었을까?’ 일본의 잔재라고는 하지만,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끼리' 문화의 한 장면이다. 이 제도가 우리를 한동안 속박하였던 것은 친구나 가족에 대한 무한 신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체면이나 의리 때문이거나, ‘우리’라는 공동운명체 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동단결(大同團結): 집단지향적 한국인 정서

근세 들어, 동족상잔의 참담한 전쟁까지 경험한 한국인의 정서는, 이런 ‘우리 공동체’ 위에서 더욱 '우리 식'으로 발전하였다. 휴전 상태가 계속 이어지자, 군에서는 언제, 어디서,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상황인식 하에 군인들을 항상 전투 위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교육, 훈련하였다. 징집으로 병역 의무를 져야 하는 모든 남성들은, 군 생활을 체험하는 동안, ‘평화 유지적 사고’보다 ‘전투적 사고’가 더 체질화되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할아버지-아버지-아들까지 60여 년 넘게 지속되었다. 이런 긴장된 모습은 5.16 군사 쿠데타 이래, 군사문화로서 정부와 사회 각계각층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1962.1.13 발표(출처: 연합뉴스)

군사 정부는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산업화’의 기치를 내걸고 사회 전반에 ‘다 함께 전진'하는 목표 지향적인 행동 요령을 강요하였다. ‘모두가 함께하는 고지 점령’은, 자연스레 군대는 물론, 가정의 훈육에서, 학교 선생님의 교육에서, 직장 상사의 지시나 사회의 규범에서도 정상적인 가치관으로 요구되었다. 눈부신 경제발전 과정에서 창출된 수많은 기업들은 ‘평생직장’의 개념으로 직원들을 보듬었고, 직원들은 조직에 대한 ‘주인 정신’으로 무장되었다. 당연히, 회사의 모든 물자를 ‘내 것’처럼 절약하고, 모든 일을 ‘내 일’처럼 하는 것이 시대정신이자 미덕이었다. 이런 식의 '주인의식'과 '목표달성'이라는 긴장된 생활방식이 오랜 시간 우리 모두에게 ‘의식화’ 되었다. 


덕분에, 우리 모두는 무슨 일을 하든 마치 전투를 하듯이 뭐든지 남보다 잘해야 하고, 내가 밤늦게 일을 하면 동료들도 같이 함께 해 줘야 하고, 내일까지 무엇을 끝내라고 지시를 받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반드시 해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체질화되었다. 주어진 목표달성을 위해서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라는 특성이 강한 군대나 학교에서, 목표달성에 처지거나 부족한 이들에게, 집단의 일그러진 모습이 집단구타나 왕따로 나타나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그들에게 '고지가 저긴데 예서 그만둘 수는 없었으니까...'


후츠파 정신?

그런데, 아랍 제국에 둘러싸인 이스라엘도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이른바 ‘후츠파 (Chutzpah) 정신’이라는 것인데, 강자들 속에 갇힌 아주 작은 나라라서 ‘함께 뭉쳐서’ 뭔가를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즉, 우리처럼, ‘나보다는 우리 (We over me)’라는 정신을 강조하는 문화였다. 


이스라엘 군에서도, 군 특성상, ‘마감일이 빠듯해도 그에 맞추어 해내야 하며, 아무리 많은 일도 빠르게 처리해 내야 한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 도우려고 노력하는 정신이 생기기 마련이었다는 것이다. 이 정신은 원래 ‘뻔뻔하고 당돌하다’는 뜻이지만, 나이와 계급에 무관하게 거침없이 토론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전장에서의 절박함과 다급함이 묻어 있다. ‘우리끼리’의 철학과 비슷한 구조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탈권위적이고, 혁신적인 문화라는 것이다.   


이것처럼, 일부 국가에서도 '우리' 관계처럼 서로 도우려는 모습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중국 사람들과 사업을 하려면 ‘꽌시 (關係)’가 필수적이라 한다. 사업상 모르는 사람은 그야말로 신뢰할 건더기가 없는 탓이다. 이들의 관계는 “우리가 남이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이태리에 가면, 외교관이 아닌 일반 외국인은 우리의 전, 월세 개념의 임차 주택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신원보증 자료가 없으니 집주인이 계약을 꺼리는 탓이다. 하지만, 믿을만한 누군가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추천하면 금방 해결된다고 한다. 


인간관계와 합리주의

그런데, 미국 같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는 '우리끼리'나 '꽌시'라는 '인간관계' 보다, 합리적인 개인주의가 더 발달하였다. 미국 같은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는 공과 사의 관계를 정립하지 않고, 엄격한 객관적인 기준 없이 서로 간의 '친소관계'(親疏關係)에 휘둘리면, 자칫 국가 전체의 경영이 통제 불능의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그렇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고, 오히려, 인종차별 금지, 뇌물 수수, 선물 문화 등에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이런 점은 엄격하게 교육하였다. 


산업화에 수출경제로 국제화나 세계화로 개방지향적이 된 한국이 점점 이 같은 미국 사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일까? ‘우리가 남이가?’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금이 가기 시작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평생 보장' 직장으로 사원 상호 간에 결속력이 강하다고 자타가 인정하던 S 그룹 같은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과거 정권의 혜택을 받은 핵심인사조차 적폐청산이라는 검찰의 각종 과거사 수사에 협조하고, 내부 제보자가 부쩍 늘어나, 서슴없이 자신이 일하던 직장의  동료나 상급자의 비리를 고발하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물론, 이런 모습은 복종하고 받들어준 만큼 챙겨주지 않은 윗사람이나 조직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다. 

 

가족, 마을, 민족 등 공동사회 Gemeinschaft

하지만 대부분,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와 달리 좀 더 공평과 공정의 잣대에 비중을 둔 가치관이나 교육방식으로 길러졌으니, 불분명한 것을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회사, 조합, 정당 등 이익 사회 Gesellschaft

공평과 공정에 대한 신세대의 가치관은 어느덧, 기성세대의 혈연, 지연, 학연 등 서열 문화를 기반으로 ‘우리’와 ‘의리’라는 결속력으로 '공동 이익'을 추구하던 'Gemainschaft' (공동사회, 집단 구성원 간의 인적관계를 중요시하는 비타산적인 폐쇄적 조직)적인 우리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집단지향적인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 대신, 산업화의 결과 생겨난 'Gesellschaft' (이익사회, 조직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이익과 책임을 분담하는 개방적, 이해타산적 조직)적인 합리적인 이해관계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변화에 대해 “옳다, 그르다”의 판단보다, 계급 고하를 떠나 누구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대해 어느 누군가는 “보듬어주고 뭉쳐 살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적자생존'의 사회적 가치관은 “변화하는 세상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역사는 수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끼리'의 가치관에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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