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웅 Apr 08. 2023

'우리끼리'의 다른 모습, 기수 문화 (期數 文化)  

글로벌 다양성 이해 (문화 차이, 제23화)

융합 문화의 시너지

또 다른 '우리끼리' - 군의 기수 문화 (期數 文化)

민간영역의 기수문화


이번 회의 주제는 ‘장유유서 (長幼有序)’와 더불어, 군대의 기수와 서열 이야기이다. 


융합 문화의 시너지

‘장유유서 (長幼有序)’는 유교의 삼강오륜 (三綱五倫) 중의 하나로 나이나 계층 간의 질서와 도리를 정의하였다. 농경문화 속의 '우리'라는 대가족 공동체에서 서열과 질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로, 나이 많은 어른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동기간의 우의를 다지는 것은, 교육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미풍양속이었다.  


이런 동양적 가치관에 비해,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달려온 이민으로 이루어진 사회다. 그러다 보니, 다민족, 다인종이 각각의 방식대로 어울리며 살아가는 소위 ‘멀팅 팟 (융합로, Melting Pot)’이다. 나이나, 성별, 출신, 종교 등에 차별을 두어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백인에 비해 인종적으로도 소수자인 흑인이나 경제적인 약자 등에게 일종의 특혜를 주는 ‘Affirmative Action (적극적 우대정책)’ 등을 도입하여 이들을 배려해 준다. 군대도 진급 등에 인종별 비율로 퀴터를 적용하여, 출신이나 기수 따위가 존재할 여지도 없는 셈이다. 


미국 육사는 졸업연도만 있을 뿐, '몇 기'니… '동기'니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한국전쟁 초기,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뒤 4개월 만에 유엔군 사령관으로 영전한 ‘리지웨이’는, 그의 미 8군 사령관 후임자인 ‘밴 플리트’보다 미국 육사의 후배였지만, 프로 군인들에게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만약에, 우리의 관점으로 그들에게, “너보다 후배인데 어떻게 너보다 진급을 빨리 했니…?” 하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되레, “진급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경험을 가진 자를 선발하여 활용하는 것”이라 답할 것이다. 누구든 경험한 분야가 공석인 자리에 적합하면 승진하는 것이지 왜, 진급에 '쓰임새'보다 출신별, 기수별, 지역별 안배를 고려하는지...?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피날레

출신 학교도 그렇다. 미국 육사 (웨스트포인트, 'West Point')는 국비로 교육시키고 미국 내 대학 서열로도 우수한 편이지만, 그 학교출신이라 해서 진급에 무슨 우대는 없다. 실제, 미국군 장성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은 ROTC (학군단) 출신이다. 물론, 미국 육사에서 4년 동안 받은 교육이 군 생활에 유리하고 이점이 있어 정상급 지휘관은 미 육사 출신의 비중이 높지만, 수료한 교육 기관과 실무현장에서 발휘되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군의 기수 문화 (期數 文化) - 또 다른 '우리끼리'

출신이나 기수를 따지는 것은, 구 일본 군대 문화의 유산이었다. 같은 출신은 '절차탁마'라며, 선, 후배 간의 '당겨주고, 밀어주기'는 이익 집단에 다름 아니다. 이는, 군부 집권의 주역인 구 일본군 출신들과, 이들에 의해 성장한 육사 출신들이 자신의 기준으로 매김 한 ‘육사 몇 기’니 하는 '관계'를 우리 사회에 강하게 내밀은 결과이지만, 이들은 동기생으로, 선, 후배답게 공, 사석에서 일사분란한 대오를 과시하며 '절차탁마'에 충실했다. 


그들의 일사분란함을 보여주는 예를 들면, 어느 기수의 누군가가 참모총장이 되면 그의 동기생들은 모두 현역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에게 현역에서 유일한 최고임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검찰에서도 유사하다. 사법연수원 몇 기가 검찰총장이 되면 그의 동기들은 모두가 현역에서 물러났다. 상명하복의 특성상 전통적으로 그래왔고, 후배들의 진출을 위해서라지만, 유능한 인재마저 그런 식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런데, 좌파로 정권이 바뀌자 제일 먼저 군의 상층부에 변화가 나타났다. 그동안 육사 출신이 도맡아 하던 합참의장 자리에, 해사-육군 3사-공사-육군 ROTC 출신 장성들이 번갈아 임명되었다. 특히, 육사 출신은 고려대상에서 아예 제외되었고. 육군 3사관 출신 장교가 창군 이래 처음 임명되었다. 참모총장도 비육사출신을 임명하였고... 언론은, 정권의 표현대로 ‘출신보다 능력 위주 인사’라고 발표했지만, 정권이 '마음먹고' 육사 출신을 배제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사실, 40여 년 전 졸업한 군사학교가 4년제든, 2년제든 무슨 상관일까? 그게 평생 동안, 그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자체가 난센스다. 사람은 주어진 위치에서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 다만, 공개경쟁 방식이 아니라, 특정 출신을 아예 배제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이라면 수긍하기 어렵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


정권의 의중을 간파한 국방부도, 군 상층부와 더불어 초임 장교 임관에도 '출신 불문'에 대한 바람이 불었다. 장군 인사에 이어, 사관학교 출신에게 '출신 불문'을 제도화한다며, 그동안 각군 임관 과정별로 부여하던 군번 체계를 연도별로 일련번호로 부여하고, 임관식도 모든 출신을 모아, 한 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 수천여 명의 임관 장교를 계룡대에 집결시켜 '통합 임관식'으로 거행하였다. '출신 불문'이 그렇게 기세등등하였지만, 제도화되지도 못하고 정권이 바뀌자 슬그머니 다시 예전처럼 환원되었다. 문제가 많았던 탓이다. '통합 임관식'만 하더라도, 정권의 만족을 위해 수많은 인원을 한 날, 한 곳에 모아 행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경찰대학 졸업식 행사 지휘부

군은 계급문화와 상명하복이라는 특성상 초급간부는 기수별 진급이 어쩔 수 없지만, 영관급쯤 되면 출신별, 기수별 공석 할당제 보다, 능력 위주로 적임자를 뽑는 진급제도가 바람직하다. 사관학교와 유사한 경찰대학의 경우를 보면, 졸업하면 모두가 경위로 임용되는 것까지는 같으나, 그다음인 경감(소령급) 승진부터는 경력관리와 승진시험으로 결정된다. 그러다 보면, 경찰도 상명하복 조직이지만, 선, 후배가 뒤바뀐 경우가 많다. 예컨대, 경찰 총수인 '경찰청장’ (대장급)이 같은 경찰대학 출신 모 ‘경정’ (중령급)보다 경찰대학 5기(5년) 선배라 한다. 대장과 중령 사이에 5개 기수 차이라면...군인들이 들으면 기겁할 이야기다. 하지만, 각자의 역할과 위치에 충실하면 되지, 기수나 학번 만을 내세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일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 육사는 물론 각군 사관학교는 여전히 입교와 졸업을 기준으로 한 기수 문화가 매우 엄격하다. 그리고, 기수에 따른 예우를 죽을 때(?)까지 고집한다. 한 번 선배면 평생 선배이니, ‘재수’라도 하고 들어오면 평생 서럽다. 과거를 돌아보면, 대부분 선배들은, 어려운 군 생활 간에도 많은 격려와 모범을 보여 주셨지만, 아주 드물게 어떤 분은 출신이나 기수, 계급을 무슨 대단한 특권으로 여기며 노골적으로 ‘선배 행세(?)’를 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인성이 잘못된 몇 년 위 선배가, ‘자신에게 잘못 대하면 나중에 안 좋아'라는 위협성(?) 말로, 후배를 부리려는 모습은 꽤나 한심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런 사람처럼 “선배니까 공, 사를 불문하고 무조건 선배 대접을 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였던 사람을 보면, 잘못된 군대 문화나 전통의 희생양이라고 생각되어 안타깝기도 하다. 동시에, 필자도 같은 학교 출신인지라 후배 중 누군가에게 괜히 기수를 내세우며 으스대다가 은연중 그런 부류 중의 하나로 비치지 않았을까? 하는 찔리는 마음도 없잖아 있다. 


민간영역의 기수문화

그런데,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군이나 경찰 이외에도 우리 사회 전반에 이들과 비슷한 기수문화가 아주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군부 집권이나 징집제 군대 문화의 영향이었을까? 사회 각 분야도 선, 후배 구분을 따지는 출신별, 기수별 문화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특정 직종은 단지 어느 대학 출신인 것만으로, 또는 행정, 외무 고시는 임용 기수로, 사법고시 등은 합격한 후 연수원 기수를 기준으로,  '우리끼리 문화’를 만들고, 자기들끼리 상, 하, 좌, 우로 도우며 평생 동안 혜택을 누리고자 하였다. 


덕분에, 나이 어린 중, 고등학교 학생들도 선, 후배를 따지고, 법원, 검찰 간부는 물론, 대학교수, 공기업, 대기업, 언론사, 심지어는 연예인들 사이에 입사 기수문화가 엄연히 존재하였다. 비록, 오래전 이야기지만, 임용 기수를 기준하여 말투나 호칭은 물론, 앉는 자리와 일상의 사소한 행동까지 선배에 대한 예의로 규제하고, 혹, 반말이라도 나오면, “말이 짧다”며, 필요시 구타나 왕따를 가하였다는 말도 들렸다. 지금은 사라졌다지만, 군인도 아닌 연예인이나 아나운서 같은 직업에 기수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말투를 따졌던 것인지…? 


외교관 양성의 요람 국립외교원 전경

그럼에도, 이들이 기수에 복종하였던 것은 일종의 '우리끼리' 프리미엄을 염두에 둔 탓일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격언에서 보듯이, 이들이 "공채 몇 기냐?"를 따지는 동안 은연중 같은 운명 공동체가 되는 거니까. 특채나 계약직 등 타 출신과는 신분적 배경이 구분되는 셈이다. 당연히, 진급체계나 대우도 달라질 것이고...

 

예컨대, 외무부에 입부할 때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관 생활을 하는 외시출신들은 정년 전까지 대사를 2~3회 할 수 있었지만, 현지어 전문 어학요원으로 특채된 이들은 공사가 한계로서 절대로 대사가 될 수 없었다. 외국에서는, 과거에 어떤 경로로 외교관이 되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지어로 모든 일을 능수능란하게 일하는 게 더 중요함에도... 입부 당시의 출신에 따른 기득권이 평생 이어진다면, 개인에게 이익을 주는 것 말고, 국가 이익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공동운명주'(酒)와 대동단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