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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y 18. 2023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해와 어울림, 제16화)

세계화, 국제화

국제감각과 '열린 마음'



세계화, 국제화

한국의 성장, 세계에 나가서 해야 할 일

오래전 별세한, 한때 한국 최대의 재벌 그룹 중 한 명이었던, 어떤 사업가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그의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 사업가로서 많은 나라를 두루 돌아보고, 다양한 사람과 접촉하였을 그의 말이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무겁게 느껴진다. 그는 이미 세계화, 국제화를 피부로 느꼈다.


자국 우선주의가 난무하는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한국 같은 약소국의 나날은 늘 예민하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는 약소국은 국제 흐름을 잘 알고 대처하는 '국제 감각'이 생존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 국제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처음 ‘세계화’를 국가 시책으로 외쳤던 정부는 불과 30여 년 전, 김영삼 정권이었다. 우리의 국제적 역량에 비하면 한창 늦었지만, 그나마, 중국 대륙이 깨어나기 전이어서 다행이었다.


우리 정부가 강조하였던, '세계화'의 정의는 뭘까? ‘세계화 (Globalization)’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국가 간 교류가 증대하여 개인과 사회 집단이 갈수록 ‘하나의 세계’ 안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비슷한 의미인 ‘국제화 (Internationalization)’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 준칙, 제도, 관행을 수용하려는 경향이며, 이중, 가장 중시되는 가치로서 ‘보편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견 거창해 보이는 두 단어의 뜻을 굳이 구분하면, ‘국제화’가 국민, 국가 간의 교류가 양적으로 증대되는 현상으로, 그 첫걸음은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양하게 살아온 외국인의 관점이나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세계화’는 양적 교류 확대를 넘어 세계인의 사회생활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세계화... (출처: 한국경제신문)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한반도에 갇혀 살면서 ‘중국’과 ‘일본’하고만 교류해 왔던 우리 민족이다. 150여 년 전, 조선은 복잡한 외부 정치세력을 관리할 안목이나 능력마저 없이 자기 방어적 쇄국정책으로 버티다가, 서구 문물을 조기에 수용한 일본에 의해 참혹한 식민지배를 겪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외세에 의해 독립이 되자, 전쟁으로 미국이 다가왔고, 경제로, 수출로 세계가 눈앞에 다가왔다. 


긴 세월, 주변국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 얽매여 질고의 시절을 거치는 동안, 강대국 사이에 끼인 약소국 한국의 나날은 늘 예민하였다. 생존을 위해 '물질지상', '압축성장'의 부작용조차 마다하지 않고 ‘남’과 부대끼며 ‘의지의 한국인’을 롤모델로 내세웠다. 


그 결과, 수많은 도전의 와중에도, 한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고, 문화적으로도 한류 확산으로 한국에 열광하는 세계인이 급증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의 생활 방식이나 삶의 가치 기준이 어떻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식대로…’라는 생각으로 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다양한 국제 환경하에 내쳐진 우리 삶이 더욱 치열해졌다. 언제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에 따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제감각'은 반드시 알아야 할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같은 언어, 문화, 제도와 도덕적 규범까지 공유하였던, 한국인들은 설령, 외국인을 만나더라도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행동하는지? 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 자신이나 내 이웃이 하듯이 비슷하게 하겠거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전혀 다른 역사, 교육, 문화, 종교, 제도적 환경하에서 성장하며 전혀 다른 사고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나의 관점, 나의 잣대와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알다시피, 유럽 대륙은 반도인 한국과 달리, 지리적 특성이 보다 개방적이었다. 이런 여건 때문인지, 서구인의 지혜는 ‘나만의 방식에 집착하기보다 남과 함께 산다’는 개방적 자세이다. 그들은 이해와 관용으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철저하게 나와 다른 상대 그리고, 다양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존중하였다. 각자가 처한 이질적인 환경에서도 서로 인간관계를 맺을 때마다,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 비판적이기보다는 헌신적 자세로 서로의 호감을 사는 법을 우리보다 빨리 체득하였다. 


그래서일까? 외국에 나가서 사는 사람들은 ‘맘이 편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일부, 인종차별적 사건도 있지만, 다양한 인종이 섞여사는 곳은 타인종, 타 문화에 대해 비교적 포용적이다. 대부분 특별한 피해가 없으면,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편이니까...  그런데, '우리끼리'에 익숙한 우리는 이런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국제감각과 '열린 마음'

요즘 들어 해마다, 우리 국민 수 천만명이 해외 나들이를 다녀온다. 관련 비용만 연간 무려 40조 원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해외 체류나 여행 시에, 낯선 문화를 보고 배우기도 하겠지만, 모두가 '주마간산'식이다. 그저 현지 유학생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우리끼리' 몰려다니며, '우리 식’으로 생각하며 외국의 겉모습만 즐기는데 주력한다. 현지인과 어울리는 게 ‘세계화’의 시작인데, 정작 현지인의 삶과 일상에는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많은 여행경험이 있다고 해도 뭐 하나...? 관광이라도 혼자, 외국에 나가는 것도 버거운데, 외국인까지 만나야...? 설령, 외국인을 만난다 해도 외국인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여전히 미숙하다. 


그렇지만, '세계화'의 분위기도 바뀌었고, '현지인과 접촉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커졌다. 이제는, 개인의 입장에서 그런 게 쉽지가 않기에, “그럼, 세계화, 국제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문제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일부, 운 좋게(?) 그런 환경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저, 노력하고 직접 부딪쳐 보는 것 이외에 지름길은 없다. 그렇지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꾸준히 노력하기만 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


예컨대, '국제감각'을 익히는 일은 자신의 전문분야 이외에, 어학도 익혀야 하고, 인터넷이나 관련되는 책도 활용하고, 배낭여행도 하고… 등등인데 각자 노력하는 만큼 '경험적'으로 습득될 수 있다. 다만, “… 어떻게 하든 국제사회에 대한 시각을 넓혀야 한다”는 마음으로, 항상 저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더 잘 헤쳐나갈 수 있다. 배우면 이길 수 있는 일을, 모르면 당하게 마련이다.

 

이화여대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출처: 한국경제신문)

최근, 한국 대학에 유학 중인 중국인 학생들이 7만여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그렇지만, 몇 년 전 우리 언론은, 많은 중국인 여성 관광객들이 서울 E 여대를 찾는다고 보도하였던 적이 있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캠퍼스 산책 등 대학생활을 패러디하여 유튜브 등 동영상에 올린다는데 그 사례가 너무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기사였다. 


당시, 해당 학교로서는 여러모로 힘들겠지만, 필자는 오히려 그들의 열정과 그 학교에 대한 사랑을 이해한다. 우리가 자부심을 느낄 만큼, 그들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해 온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중국만 하더라도 다인종 다문화에 대한 경험이 우리보다 많아서일까?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들의 개방적인 ‘열린 마음 (Open Mind)’에 새삼 놀라는 마음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국제화’나 ‘국제감각’의 시각을 좀 더 확대하면 어떨는지? 필자도 미국에서 근무할 때, 아이들과 함께 미국 내 '아이비' 대학들을 관광 삼아 찾아다녔다. 아무리 관광이라지만 관심이 없으면 갈 수가 없는 일이다.


이들처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시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해외 경험, 외국어 수준, 개방적 사고, 외부세계에 대한 이해, 배려심 갖춘 행동, 다양성 추구, 세계융합 마인드, 전략적 사고, 주도적 적응성 등 광범위한 경험으로부터 국제감각과 다양성 이해에 주안을 두어야 한다. 사실, 각 문화 간의 ‘차이와 다름’을 다양성을 이해하고,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서로서로 다름을 알고 나면, ‘글로벌 마인드’에 대한 개인의 지평을 더욱 넓힐 수 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세계인들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적인 리더십 발휘는 그다음 단계이다, 각자 스스로 노력하고 투자한 만큼 해당 분야에서 성과를 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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