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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y 22. 2023

'차이와 다름', 그리고 ‘다양성’ 수용

예민한 '인종차별' 이슈 - 국제화의 첫걸음

종교적 다양성 수용


예민한 '인종차별' 이슈 - 국제화의 첫걸음

'국제화'의 첫걸음은 생각이 다르고 잣대도 다른, 다양한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이를 통해, 다국적,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환경하에서 서로 다른 남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 '인종차별' 이슈는 항상 예민하였다. 아마도, 인종별로 태어날 때부터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가 서로 다른 걸 보면 각각의 DNA에 대한 차이가 있기는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용납하기 어렵다. 피부색이든, 교육 수준이든 뭐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차별은 끔찍한 범죄행위로 단속하지만, 모두가 관심을 쏟는 국제 이슈에서도 이런 모습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2020년,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영화 사상 최초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자 백인일색의 ‘오스카’ 상도 ‘다양성이 진일보’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우수 작품을 받은 작품을 연기한 한국인 배우 중 단 한 명도 주연상이나 조연상의 후보에 조차 오르지 못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니, 국제 영화계에서도 ‘정서적인 면’에서 여전히 백인우월과 인종적 편견이 남아있구나!라는 비판의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다양성을 주제로 시위하는 소수계 그룹(출처:CNN)

하지만, 정작 우리가 그럴만한 입장이 되는지(?)도 상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일부 우리나라 사람은 흑인 등 유색인종보다 백인에게 더 우호적인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처럼, 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전근대적인 인종차별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흑인은 이미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보다 훨씬 이전에 주류 사회에 동화되었다. 


아시아인은 소수 그룹이지만, 미국 흑인은 사실상 백인에 이은 주류 그룹이 되었다. 특히, 유색 인종차별로 유명했던 미국은 이미 60여 년 전, '소수집단 우대정책 (Affirmative action)'이라는 차별시정 정책을 도입하여, 대학입시는 물론, 군 장교의 진급에도 흑인, 여성 등 소수자의 비율을 고려하는 등 백인 남성이 역차별을 소송할 정도로 소수자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런데, 선진국이라는 이웃 일본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은 더욱 교묘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일본 여자 테니스 선수 중에 세계 메이저 대회 우승에 연속 도전하였던 선수가 있다.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엄마 사이에 태어나 외모도 아버지를 닮고 피부색도 구리 빛인 ‘오사카 나오미’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에서 태어 낳지만, 외국인에 배타적인 일본인들로 인하여 오랫동안 인종과 문화적 정체성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일본 테니스대표 '오사카 나오미' 선수(출처: 한국경제)

그녀는 2018년 호주 오픈 우승과, US 오픈에서 오랜 시간 ‘테니스 여제’로 군림해 온 ‘세리나 월리암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2019년, 그녀를 후원하는 일본 ‘닛산 식품’이, ‘컵라면’ 애니메이션 광고에서 ‘오사카’의 외모를 하얀 피부로 표현해 “마치, 백인처럼 보이게 했다”는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닛산 식품’은 '인종차별 의도는 없었다며, ‘다양성’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사과하고 그 영상을 삭제했다.    


그리고 2020년, 해외에서 활동 중인 오사카 선수가 도쿄올림픽 개회식의 성화 최종주자로 지명되자 일본은 인종 다양성 국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세계 랭킹 2위인 그가 단식 16강에서 탈락하자 금메달 획득을 기대했던 일본 국민의 오사카 선수에 대한 여론은 급반전하며, 인종차별 피해자가 되었다. 많은 일본인은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 '오사카' 선수가 왜 성화 점화 주자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라는 반응이었다.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일본인이라는 정의를 좁게 내리며, 외국인에 배타적인 정서가 강하다. 일본에서 '하프'라고 불리는 혼혈인은 일본에서 태어났더라도 온전한 일본인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종교적 다양성 수용

그런데, 외형적인 인종차별 보다도 정서적인 종교차이는 국교라는 집단의 모양으로 더욱 깊게 서로를 갈랐다. 어떤 종교든 사랑과 포용이라는 가치를 주장하지만, 정작 타 종교에 대해서는 이런 모습보다 경쟁적, 적대적 모습이다. 결국, 이런 가치는 자신들의 종교적 영역 내에서만 적용될 뿐이라는 매우 소아적인 모습을 보였다. 


'보스니아' 출신 미국 작가 ‘알렉산다르 헤몬’이라는 사람이 '나의 삶이라는 책'을 펴냈다. 유고연방에서 태어난 작가는, 미국 출장 중, 갑자기 내전이 일어나 미국에서 난민이 되었다. 졸지에, 이방인으로 느꼈던 수많은 ‘다름’의 문제를 서술한 책이다. 어릴 적 친했던 ‘터키인’ 친구를 회상하며, 미국의 풍경과 사람, 노래, 그리고 생계를 위해 살아가던 경험을 다룬다. 


보스니아 인종청소,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출처:CNN)

그 책의 배경은, 1990년대 소련의 붕괴 이후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6개의 국가로 분리될 때, 연방 붕괴의 혼란 속에 독립의 명분으로 각 인종과 종파들이 ‘차이’를 찾아 이어진 '편 가르기'다. 이 중 하나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비록 독립은 하였지만, 여섯 나라 중 ‘인종과 종교의 모자이크’라고 불릴 만큼 천주교, 그리스정교, 이슬람의 세 종교가 뒤섞인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종교라는 '정서적'요인으로 인하여 나와 다른 남을 살상하면서 수십 만여 명에 달하는 주민에 대한 인종청소가 진행되었고, 수백 만 명이 난민으로 탈출하며 큰 고통받았다. 


작가는 한 사회 안에 뿌리내린 ‘다름’이라는 견고한 담장을 허무는 힘은, 오로지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예민한 감수성에 있다며, 불안하고 힘든 삶에 적응하게 해 준 따뜻한 이웃을 이야기한다. 이런 '정서적 요인'에 관한 관점을 이해하면, 우리가 왜?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고 각자가 처한 다양한 환경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 이유를 더 잘 알 것 같다. 


필자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살았을 때와 달리, 중동이나 서남아시아 등 이슬람 지역에서 살았을 때는, 그 지리적 간격만큼이나 종교, 역사, 문화, 사회 등 각종 생활상이 많이 달랐다. 우리에게는 냉전 시대의 우방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서구와는 경제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하여, 비록, 지리적으로 멀지만, 이들의 문물에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과거 공산권인 동구권이나 비동맹을 표방하던 중동, 서남아 무슬림들과는 별로 교류가 없었다. 


특히, 우리가 거의 관심을 쓰지 않았던 이슬람 세계는 우리에게 전혀 생소하였다. 하지만, 익숙한 것에만 안주하기에는 우리의 지평이 너무 넓어져서, 무심했던 지역이나 소외되었던 지역 사람들의 의식이나 관습을 포함해서, 특히 이슬람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오늘날 세계정세를 주도하는 서구의 입장에서 보면, 이슬람은 경계 대상이다. 서구와 이슬람의 대립은 십자군 전쟁, 동로마제국 멸망, 무슬림의 비엔나 침공 등 수 백 년에 걸쳐 주도권 쟁취를 위한 다툼이 진행되었다. 근세 들어 서구가 이슬람을 식민지배하면서 다툼은 잠시 잦아들었지만, 최근에 미국은 지난 20여 년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이라크, 아프간에 공격을 감행하였고, 최근 이란과도 일촉즉발의 직전이다. 반인륜적 테러로 무슬림에 대한 서구의 잣대는 더욱 엄격해졌고, 무슬림의 대서구 반감도 비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서구는 또한, 무슬림과 대립 와중에서 동양과도 대립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 또한 확대일로이다. 테러로, 주도권 다툼으로 서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압박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이해 없이 자기만을 내세우는 ‘다양성’에 대한 혼동의 여파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다양성이나 ‘국제 감각’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며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포용하는데 주안을 둔다.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불필요한 시행착오 없이 더 잘 소통하고 동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때, 다른 문화와 인종을 포용하고 받아 들일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양성의 이해'는 '차이와 다름'을 통하여 우리가 속한 동양에 대한 이해와, 서구에 대한 편견을 다듬고, 우리가 몰랐던 이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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