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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y 12. 2023

‘미‧중 전쟁’, 강압과 굴기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해와 어울림, 제13화)

무력을 앞세운 서구에 허둥대던 중국

불신의 미국이 낳은 '항미원조'

쫓는 자, 쫓기는 자



무력을 앞세운 서구에 허둥대던 중국

역사적으로 동, 서양은 세계패권을 놓고 자주 격돌하였다. 1840년, 영국은 ‘아편전쟁’을 도발했다. 패배한 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불평등 조약을 강제로 체결당하고, 국제사회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1860년대 상하이에서는 공자의 사당이 영국군의 병영으로 전락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근세 들어, 동, 서양의 대표 주자는 단연코 중국과 미국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인연은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미국은 청일전쟁 이후부터 줄곧 중국을 배제하고 일본만을 자국의 이익과 직결되는 아시아의 맹주로서 대하였고, 일본으로 인해 중국의 이익이 무시되는 현장들을 애써 외면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청불 전쟁 등 서구와의 전쟁에서 연전연패하며 서구 열강의 따끔한 포탄 세례를 맛보았다. 중국인들이 폭죽의 재료로만 알았던 화약의 위력에 놀라 허둥대는 동안, 중국에 와 있는 서구인들은 치외법권을 누리며,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렸다. 부녀자 추행과 폭행은 기본이었고, 심지어, 선교사들조차 지역 농민들을 노예처럼 부렸다. 무력을 앞세운 선교가 섬김과 나눔보다 승리의 십자가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1899년, 이런 횡포에 참다못한 산동성의 무술단련 민간조직 ‘의화단’이 외세배척 운동을 일으키자, 수많은 군인, 농민들이 순식간에 합세했고, 청 황실도 이를 배후에서 지지했다. 결국, 성당과 교회는 불탔고, 선교사들은 죽거나 도주했다. 하지만,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러시아, 미국, 오스트리아, 일본 등 8개 국가는, "의화단과 청 제국에 대항하자"며, 3만여 명의 연합군을 결성하였다. 민족적 정의감으로 궐기했던 의화단이지만 부적이나 칼로는 근대적인 연합군 화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무기력한 청조는 또 무릎을 꿇었다.    

        

의화단 사건을 제압한 8개국 연합군과 ‘북경의 55일’ 영화 포스터

   

‘북경의 55일’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의화단 사건’에서 승리한 연합군은 베이징을 점령했다. 그런데, 점령군들은 의화단에 의해 죽은 백인의 보복을 한다면서, 3일 밤낮 황궁의 진기한 보물을 수없이 약탈하고, 살인, 방화, 강간을 자행하여 베이징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며 청나라를 재기 불능으로 만들었다. 이후에도, 황실 보존에만 급급하던 청조의 약점을 이용한 서구 제국주의의 이권 수탈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서구의 만행은 수많은 중국인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강한 외세’ 트라우마를 남겼다.


불신의 미국이 낳은 '항미원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민족 자결주의' 등 식민지 분쟁을 원만한 해결을 촉구하던 미국 '월슨' 대통령의 제안에 중국은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런 조항은 제국주의자 선진국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미국에 기대를 걸었던 중국인은, 독일이 가졌던 산둥반도 ‘조차지’를 일본이 갖는데 미국 정부가 동의하자, 미국에 대한 중국인의 호감은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으로 바꿔, 미국 배척 열기가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 


이런 분위기에 자신감을 가진 탓일까? 연합군의 일원으로 중국에서 각종 수혜를 누렸던 일본은, 일본군 몇 개 사단이면 중국을 장악할 수 있다며 결국, 1937년 중일 전쟁을 도발하여 중국 대륙을 유린하고 수백만 중국 민중을 희생시켰다. 청조 멸망 이후, 중국공산당 정권 수립까지 수십 년간 서구나 일본의 침략은 큰 재앙이었고, 전란에 시달린 중국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러던 일본이 미국에 기습공격을 가하자, 미국은 잠시 중국에 손을 내밀었지만, 일본이 패망하고 국공내전에서 공산주의자가 승리하자 다시 등을 돌렸다. 그런데, 승전국 ‘맥아더’의 일본 군정은 천황제 보호 등 패전국 일본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우는 미국과 '항미원조'를 내세운 중국은 다시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미원조' 라며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의 사망자 수

하지만, 이번에는 ‘마오쩌둥’의 신 중국은 “한반도가 중국에 이르는 관문이며,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중국을 침공한 사실"을 지적하며, 중국 정부는 미국의 한반도 점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북진하면서 한만 국경으로 다가오는 미국에 극도의 경계감을 드러내었다. 70여 년 전의 일이다. 중국인에게 ‘항미원조’는 애국주의를 넘어 ‘중화 민족주의의 자부심’에 가깝다.


이는, 시 주석의 2020년 10월 연설에 나온다. 항미원조는 미국 침략에 맞선 전쟁이며정의로운 군대의 정의의 행보라며 제국주의 침략자(미국)의 전쟁 불꽃이 문 앞까지 다가와 국가안보가 심각한 위협을 받자 북한의 요청에 따라 참전하여조 군대가 침략자를 때려눕혀 ‘신 중국’의 대국 지위를 세계에 과시했다”라고 정의하며, 고난을 뚫고 거둔 위대한 승리를 기억해 앞으로 나아가자며 결사항전의 전통 계승을 외쳤다.


쫓는 자, 쫓기는 자

1990년 초, 미국은 소련이 붕괴되자, 유일무이 초강대국으로서 안보 무용론마저 나올 정도로,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때 마침, 미국의 석유 의존도가 높은 중동에서 걸프전 사태에 이어 '911 테러'까지 발생하자,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과 ‘헌팅톤’의 ‘문명충돌론’의 통찰력으로 얻어진 새로운 안보의 눈길은 중동에서 그 답을 찾았다. 하지만, 헛수고였을까? 지난 20여 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외치다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천문학적 전쟁비용을 소모하고 수 천여 명의 군인이 사상을 당했다. 그렇지만, 그 사이 ‘셰일가스’의 발견으로 미국이 오히려, 중동의 산유국을 위협하는 산유국이 되었다. 이제, 미국이 중동에 매달려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런데, 어느덧 G2로 성장한 중국의 경제력은 눈부시다. 곧, 미국을 따라잡을 태세이다. 중화의 자존심과 의지는 물론, 경제적인 능력도 미국에 견줄만하다. 중국은 2013년부터 위대한 중화민국 부흥을 위해  '중국몽 (中國夢)'을 선언하고, '일대일로 (一帶一路)'라는 경제 영역 확대를 내세웠다. 이태리 등 유럽 일부 국가를 포함하여 참여국이 80여 개국에 달한다. 군사적으로도, 강한 군대로 강국을 건설하자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

'강군몽 (强軍夢)' 사상에 따라 자체적인 기술로 첨단 항공기와 항공모함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 함. 사출기 방식이 아닌 스키점프 방식이다. (출처: 중국 인민해방군)

2019년, 이런 중국의 움직임에 1949년에 창설된 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러시아에 이어 가상 적국으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창설 7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이로 인해, 중국과 NATO 간에 ‘신 냉전체제’가 도래하게 되었으며, 그 중심에 미국이 있었다. 미-소 냉전시대에는 이름조차 내밀지 못했던 중국은 이제 미-유럽 대 러시아-중국의 구도 재편에 중심이 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 군사적으로 중국의 공간이 점점 커지자 미국에 비상이 걸렸다.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은 정책 연설에서, 지난 20여 년간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 지적 재산권 침해 등을 방치한 결과 중국의 GDP 생산이 10배나 커진 것을 깊이 후회하면서 전임자들의 실책을 비판했다. 과거, 미국이 일본 엔화 절상을 유도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자국 GDP의 40%에 육박하는 나라에게는 족쇄를 씌운다. 20여 년 간 미국이 중동에 매달리는 사이, 중국은 어느덧 미국 GDP의 70% 이상을 돌파했다. 미국이 다급해졌다. 


이쯤 되면, 미국 정치가들은 누구든 중국을 공격해야 한다. 초강대국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경제적 라이벌'로 규정하고 각 분야별로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정권은 신냉전에 대비하여 주도권을 유지하고, 중국의 성장과 도발의 싹을 자르고자 우방국과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였다. 군사적으로도,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유발하자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관련국가들과 협력, 포위하였다. 그리고, 경제 분야에서도 ‘경제번영 네트워크(EPN)’를 주창하며, 주변국 동참으로 반중(反中블록’을 구축하여중국 포위망을 형성하자는 의도를 보였었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도 이를 답습한다. 


미국의 경제력은 독보적인 최강이고, 경제 대국 일본도 “잃어버린 수십 년”으로 GDP 기준 중국의 40%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의 GDP를 합치면 30조 달러로, 중국 15조 달러의 2배가 넘는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 뉴질랜드, 베트남 등을 포함하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체제, 항행의 자유를 공유하는 나라를 묶어 중국의 팽창을 막고,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한 공급망을 구성하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미국인은, 글로벌 ‘가치사슬’ 망에서 세계물자 생산량 28%를 차지하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힘과 영향력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로서, 미국민의 ⅔가 중국에 부정적 인식을 가졌으며, 열에 아홉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점점 커지는 중국의 힘과 영향력’을 큰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트럼프조차, 중국의 성장동력이 세계화와 자유무역이었음을 깨달으며, ‘세계화의 종언’을 선언하고, ‘보호무역’ 주의로 전환하였다.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며 중국을 압박하자,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서방국가들도 ‘반중 연합’을 형성하여 ‘중국 때리기’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미국의 동맹 중에서도 핵심 동맹들로서 다 함께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탄압, 코로나 19 책임론,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 등을 집중 거론하며 비난에 가세했다.


영국이 위구르족 인권탄압과 홍콩 보안법 감행, 방송금지 등 이슈를 제기하자 중국은 영국 기업들을 제재대상으로 공식적으로 거론하였고, 영국도 항공모함을 인도 태평양 지역에 파견하겠다”라고 맞받았다. 캐나다는 중국의 코로나 확산 책임을 거듭 제기하며 중국과 공방을 벌였고, 호주도 중국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며 화웨이 장비를 퇴출시켰다. 중국은 캐나다에 외교적으로, 호주에는 쇠고기, 철광석 등에 경제보복 조치로 대응했다.


이 같은, 미국의 동맹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나 ‘설리번’ 안보보좌관은, 미국 국민과 친구들을 위해 국제질서 원칙을 지키겠다”라고 천명했다. 아예, 대놓고 ‘대중국 민주주의 동맹’으로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여기에는, ‘경제적 다자주의’ 외에 ‘정치, 군사적 다자주의’가 더욱 구체적으로 녹아 있다. 하지만,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선 중국에 경제적으로만 대응하기 어렵다. 


미국이 미국기업의 탈 중국을 지원하고, 민간기술 군사용 전환우려로 기술수출을 통제하며, 한, 일, 대만 등과 칩 4 등 반도체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을 제재하자, 탈세계화, 디커플링, 각자도생의 용어가 난무하였다. 이쯤 되면, 체제 위상과 안정성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중국도 반발하고 맞대응해야 한다.


작금의 미-중 무역분쟁은, 과거의 미-중 전쟁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미국의 대중 우세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능력도 세계 최강이다. 기선제압으로 무역 싸움을 걸었던 미국은, 중국에게 “기술을 훔치고 일자리를 뺏는” 무역 불공정성을 제거하라며, 중국이 훔쳐간 ‘부당한 이익’을 내놓으라 한다. 요구에 불응하면, 전체 수입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고, 개별 기업을 안보 관련 이유로 거래차단기업 목록에 올리는 등 보복한다. 미-중 싸움이 과거의 ‘열전 (熱戰)’에서 ‘경제봉쇄, 기술봉쇄’의 모습으로 달라졌지만, 양측이 추구하는 “국가이익”의 본질이야 같을 터이다. 따라서, 트럼프나 바이든이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런 정치적 목적이 이루어지기까지 미국의 대중 공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고, 중국 또한 물러서지 않는다. 


미국의 공세에 중국은 상호존중과 평등한 합의를 주장하지만, 미국은 ‘평등’은 없다는 입장이고, 시진핑도 중국의 ‘굴욕’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제 1인 천하의 반열에 오른 시진핑의 유연성은,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싸운 마오쩌뚱의 모습과 대비되며 조마조마하다. 그는, 미국의 '자기중심적인 도전'에 대해, 기본적으로 “미국은 음흉하고 악랄하다”라고 보며, 중국 인민들의 “단합으로 난국을 함께 헤쳐나가자”는 호소를 잊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숱하게 짓밟히면서 얻은 교훈이다. 하지만, 누가 승리할지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대만해협 중간선에 초근접한 중국 군용기(출처: 중국인민해방군)

객관적으로, 중국이 아무리 ‘개방개혁’을 외쳐도, 공산당 일당독재라는 편협성으로 투명성과 신뢰성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중국은 전통적으로 타인 포용보다, 자기 문화 과시에 바빴다. ‘’ 중심으로 타문화와 체제에 대한 몰이해로는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이 아무리 커져도, 세계를 주도하기 어렵다. 실례로, 야심만만하게 추진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서도 현지 국가들과 중국 사이에 여러 파열음이 들리고, '대만 통일'이라는 '힘에 의한 정세 변경' 시도에는 전 세계가 경계 일색이다.  


미-중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은 그 각도가 다르다. 미국은 우리의 ‘장기’처럼 ‘왕’을 잡는 ‘체스(Chess)’게임 방식으로, 중국은 ‘바둑’ 게임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체스’는 종횡무진 체스 판을 누비는 무소불위의 절대자(왕)가 죽으면 게임은 끝난다. 이른바, “체크 메이드 (Check Made)”가 되면 끝이 나지만, 바둑은 ‘땅따먹기 게임’이다. 게임할 동안 판세는 예측가능하나, 승부 확정은 바둑판 위의 확보 면적 (집)과 사석( 죽은 돌)의 숫자를 가지고, 계가(計家)를 해봐야 결정된다. 


아직은 미국이 앞서 있지만, 중국의 추월도 만만치 않다. 이런 장기적인 싸움에서는 조바심을 내는 쪽이 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강하게 보이는 미국이 “쫓기는 자”의 모습이지만, 자칫, '대만 사태'가 틀어지면, 오히려, 중국이 “쫓는 자”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세계의 역사는 ‘정글의 법칙’이다. 밀림의 왕자 사자도 부상당하면 ‘하이에나’들에게 먹힌다. 그래서, 강자일수록 처신에는 신중해야 한다. '스에즈 모멘텀'에서 보듯 ‘세력 확산’ 다툼은 한번 틀어지면 그 물꼬를 되돌리기 어렵다. 세계 최강 주도권 다툼에 미국이 영국 등 동맹들을 다독이더라도, 호시탐탐 일격을 노리며 고분고분하지 않은 중국을 어떻게 다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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